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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오 Sep 03. 2021

나에게 '구두'는 어떤 존재일까

클래식 구두 편집샵, 알렉스 슈즈


나는 2012년에 선물 받은 구두를 지금까지 신고 있다. 벌써 10년 가까이 함께했다. 군데군데 상처도 많고 뒷굽도 꽤 닳았다. 하지만 구두 크림을 발라 몇 번 손질하면 생기가 넘친다. 이 구두에는 나의 20대가 기록되었고, 30대는 기록되는 중이다. 평범했던 구두는 나와 함께 세월을 받으면서, 자서전 한 권이 되어 간다. 다른 신발들보다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존재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앞으로 10년은 더 신을 듯하다.






SS_대표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남일_네 안녕하세요. 저는 클래식 구두 편집샵 '알렉스 슈즈'를 운영하는 김남일입니다.


SS_구두만 판매하는 편집샵이 국내에는 흔치 않은데요. 


남일_맞습니다. 제가 남성 복식 중에서 구두를 특히 좋아해요. 복식을 완성하는 느낌이랄까요. 멋스럽게 입은 옷에 어떤 구두를 신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달라지거든요. 그만큼 중요하죠. 옷만큼 역할이 큰 아이템이라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웃음).


알렉스 슈즈의 김남일 대표. ⓒ다


SS_구두가 기원전 때부터 시작한 만큼 역사가 깊잖아요. 그만큼 구두 종류도, 다루는 방법도 다양하더라고요. 구두를 제대로 신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남일_그렇습니다. 평범해 보여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깊이가 있어요. 구두마다 어울리는 옷도 다르고, 구두 앞코 모양이나 소재에 따라 사이즈 감이 차이나요. 심지어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모델마다 사이즈가 달라요. 구두에 생긴 흠집과 망가진 정도를 보고 복원 방법도 다르게 적용하죠. 구두도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잘 다룰 수 있답니다.


SS_그걸 다 어떻게 공부하신 거예요(웃음)


남일_좋아하니까 저도 모르게 푹 빠져 살았네요(웃음). 제가 클래식 구두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었어요. 그때는 한국에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죠. 클래식 복식 커뮤니티도 시작 단계에 불과했고요. 그래서 외국 서적을 많이 참고했어요. 아마존에서 관련 원서를 주문하거나 해외 패션 잡지를 구매할 수 있는 지인한테 부탁했죠. 번역이 어려울 때는 아는 사람한테 물어물어 가며 읽었어요.




SS_저도 예전에 인터넷에서 '구두 관리법(슈케어)'을 읽고 제 구두를 닦아봤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글만 봐서는 구두 가죽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가늠할 수 없었어요.


남일_지금이야 유튜브가 있어서 더 자세히 보고 따라 할 수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게 전무했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부딪혀가면서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서적에서 배운 내용을 안 신는 구두를 가지고 연습했거든요. 근데 구두가 저렴한 아이템은 아니잖아요(웃음). 제 구두로 하기엔 한계도 있고요.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동묘에 갔는데, 구두를 포댓자루에 묶어서 파는 분들이 있었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그걸 전부 사 와서 가죽 염색도 빼 보고, 다시 입혀 보고 하면서 슈케어를 익혔습니다.


SS_많은 분이 대표님의 슈케어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었네요.


남일_쑥스럽네요(웃음).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던 시절 혼자서 다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케어해드린 구두를 보고 좋아하시는 고객님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저는 항상 말씀드려요. 부담 없이 슈케어 받으러 오시라고요. 저는 그분들과 재즈도 듣고 커피 한잔하면서 구두를 닦는 시간이 좋아요.


슈케어 - 천연 벌꿀이나 보습 성분으로 이루어진 크림(슈크림)으로 구두를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슈크림을 구두에 발라서 닦으면 구두 가죽 표면에 생긴 상처, 갈라짐, 색 빠짐 등을 복원할 수 있다.


SS_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손님이 생기길 마련이죠. 대표님도 그런 손님이 있으실까요.


남일_전에 저희 매장에서 구두를 구매하신 고객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때 한창 결혼 준비를 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자녀를 데리고 오신 거예요.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본인 결혼식 때 신었던 구두를 이 아이가 결혼할 때 꼭 신고 싶다고 하셨어요.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SS_가슴이 뭉클해지네요. 그 자녀분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남일_저는 가끔 상상해요. 그 자녀분께서 고객님의 구두를 물려받고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말이죠. 만약 그렇다면 아버지의 세월을 기록한 구두를 신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는 거잖아요. 생각만 해도 기뻐요.


구두의 역할은, 신는 이의 인생을 기록하는 것이다. ⓒ다


SS_그럼 대표님께서 애착하시는 구두는 무엇인가요?


남일_알렉스 슈즈는 영국의 '헤링슈(Herring Shoe)'를 수입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에 헤링슈를 알게 된 후 구매했던 정장 구두가 있는데요. 이 구두를 신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비싼 구두는 아니지만, 저의 첫 시작을 알리는 구두라서 그런 듯해요.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되는 구두예요. 이제는 망가질까 봐 신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어요(웃음).




알렉스 슈즈의 '알렉스'는 김남일 대표의 세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는데, 김남일 대표도 그들 중 한 명이다. 혹자는 브랜드명에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촌스럽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름 석 자에 담긴 열정은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알렉스 슈즈에는 그의 열정이, 깊게 베어져 있다.






SS_대표님께선 어떤 점이 알렉스 슈즈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일_'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구두'를 고객님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저의 자부심이자 철학이에요.


SS_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구두.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으실까요?


남일_가죽 구두는 관리만 주기적으로 하면 오래 신을 수 있어요. 자식을 넘어 손자까지 신을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랍니다. 저는 많은 분이 구두를 오래 신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잠깐 신고 버리는 게 아니라, 애착을 갖고 신는 것이죠. 나와 함께 주름이 늘어나는 구두를 즐기면서요. 이런 연유로 오시는 분들에게 구두 추천은 물론 '구두 관리법'도 알려드립니다.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구두는 나와 오랜 세월을 보낼 수 있다. ⓒ다


SS_구두 관리법까지 알려주신다고요?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


남일_제가 꼭 지키려는 원칙 중 하나예요. 저는 고객님들이 구두를 구매하시면 슈케어를 직접 경험해 보시게끔 해요. 저랑 같이 구두에 영양 크림을 발라보고 브러시로도 닦아보면서 구두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고객님이 바쁘실 때는 속성 케어법이라도 알려드려요(웃음). 이렇게 하면 본인 구두를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지나 다시 오실 때 그 구두는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지만, 여전히 말끔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SS_대단하시네요. 슈케어까지 꼼꼼하게 지도해주는 편집샵은 찾기 어렵거든요.


남일_취업 면접이나 결혼식을 앞둔 분들이 자주 오세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일들이잖아요.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구두인 만큼 긴 시간 간직하셨으면 좋겠어요.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구두에 매일을 기록해 나가는 삶. 참 멋지지 않나요(웃음). 고객님의 구두가 제 구두라고 생각하고 성심성의껏 슈케어 레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SS_이런 모습들이 알렉스 슈즈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일_그런 걸까요(웃음). 작가님이 물으셨잖아요. 브랜드 철학이 있냐고요. 이 질문에 오래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늘 하는 것이 저의 철학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고객이 구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오래 신으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인 듯해요.




SS_앞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남일_항상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최근에 클래식 복식 시장이 주춤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전 세계적으로 캐주얼 패션을 선호하기 때문인데요. 예전처럼 정장이나 구두를 신을 일이 많이 없어졌죠. 기존에 정장을 입으셨던 직장인분들도 이제는 편하게 입고 출퇴근하시잖아요. 이에 맞춰서 신발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SS_저도 예전에 클래식 복식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덜하긴 하네요. 그렇다면 말씀하신 새로운 신발 라인업은 무엇인가요?


남일_클래식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했어요. 결국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뜻처럼 변함없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게 무엇이든 클래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구두만 클래식에 해당하지는 않겠다 싶어서, 최근에 유행에 상관없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캐주얼한 스니커즈를 들여왔어요. 영국의 전통적인 트레이닝슈즈를 복각한 운동화예요. 역시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잘 관리하면 오래 신을 수 있답니다. 이것 역시 클래식 슈즈의 한 형태라고 해석했어요.

 

가죽 신발은 슈크림에 몸을 담가 여독을 푼다. 그리고 다시 걸어간다. ⓒ다


SS_인상 깊은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신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클래식이다'. 공감합니다.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 된 신발이 많으니까요. 컨버스의 '척 테일러'나 아디다스의 '스탠 스미스'가 그렇죠.


남일_바로 그거예요. 수십 년간 사랑받은 신발이라면 그것 역시 클래식 슈즈이죠. 그동안 제 취향이 담긴 아이템 위주로 매장을 채웠는데, 이런 접근 방식이 오히려 제 시야를 좁게 하더라고요. 시장이 변했고, 신발에 대한 고객의 생각도 변했어요. 저 또한 변해야죠(웃음). 알렉스 슈즈만의 시선으로 클래식과 캐주얼을 해석하면서 고객님들이 더 만족할 만한 제품 계속 선보이겠습니다.






당신에게 구두는 어떤 존재인가. 특별한 날에만 신는 신발인가 아니면 일상을 함께하는 신발인가. 무엇이든 그 구두는 당신만의 삶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물건보다 당신을 기억하는 물건일 것이다. 알렉스 슈즈는 단순히 가죽 구두를 판매하지 않는다. 당신이 더욱 행복한 삶을 기록하길 바라며,


알렉스 슈즈는, '당신과 같이 걸어갈' 동반자를 소개한다.






'알렉스 슈즈'의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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