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Bones and All)>과 <로우(RAW)>를 보고
두 영화의 큰 틀은 같다. 식인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욕망과 식인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통제, 폭력적이고 기분 나쁜 남성들 틈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것.
메런과 리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우>의 주인공 쥐스틴은 채식주의자로 살다 수의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개꼰대’ 문화가 있는 그 학과는 통과 의례로 신입생들을 네발로 기게 시키고 동물의 장기를 먹게 하고, 온몸에 피를 뿌린다. 쥐스틴의 선배이자 친언니인 알렉스는 기꺼이 그 기괴한 의식에 동참한다. 환영회의 짧은 육식 이후로 주인공은 끝없는 허기를 느낀다. 고기를 훔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어먹기도 하는 등... 기행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되는데 한 사건이 벌어진다. 알렉스가 쥐스틴의 성기털을 왁싱해주다가 사고로 손가락을 잘리고 기절하게 되는데 저스틴은 우대갈비 뜯듯이 언니 손가락을 야무지게 먹고 그걸 본 알렉스는 운다. 추후 알렉스는 동생에게 자신처럼 식인을 하라 하지만 쥐스틴은 일단 참고 참고 또 참는다. 같은 학교 학생인 아드리안(게이라고 함)을 보며 쥐스틴은 강렬한 욕구(식욕과 성욕 모두)를 느낀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팔을 물어뜯으며 참아낸다. 이 이후 알렉스와 저스틴은 어떤 일로 사람들 앞에서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고, 알렉스는 아드리앙을 죽이고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런 언니를 여전히 사랑하는 쥐스틴. 그리고 부모님의 과거가 밝혀지는 게 로우의 줄거리이다.
<본즈 앤 올>의 주인공 메런은 아버지의 통제 아래 더없이 좁은 관계만을 맺어오다 우연히 친구의 손가락을 먹게 되고 도망길에 오른다. 그녀가 성인이 되자 아버지는 카세트테이프 하나와 엄마에 대한 기록을 남긴 후 부리나케 도망간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몇몇 살인과 식인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 뒤처리를 해왔던 것. 그리고 그것에 질려 떠난 것이다. 얘기조차 들어보지 못한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에 기분 나쁜 늙은이 설리반을 만나고 메런은 자신이 '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부류’는 떨어져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설리반은 자신을 3인칭인 ‘설리’라고 부르는 레전드 미친놈인데 죽인 인간들 머리카락을 엮어 해와 달 동화에 나오는 동아줄 마냥 긴 밧줄을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 메런은 그를 피해 이동하던 중 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이고 먹은 과거가 있는 인물. 메런은 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처음으로 만나게 된 어머니는 자신의 두 손을 먹어 치운 상태로 자기 자신을 가둬둔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죽이기 위해 살아있었다. 어머니는 메런에게 죽으라 말하지만 메런은 죽지 않고 돌고 돌아 리와 함께 일상을 만들어 나가다 어떤 파국에 이르르는 게 주된 줄거리.
식인이라는 극한 행위를 통해 두 영화 속 인물들은 소속감을 얻기도 하고 때론 절대 사회에 스며들 수 없는 괴리감에 절망하기도 한다.
먹거나 아니면 평생 도망쳐야 한다.
이 사실로 인해 식인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습게도 폭력을 행하고 식인하는 남성들은 꽤 자신감 넘치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같은 행위를 해도 움츠러드는 것은 오직 여성과 소수자뿐이다. 그 때문에 폭력적인 남성 쪽이 아닌 아드리앙과 리는 주인공의 소수자성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고, 게이 혹은 바이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또한 쥐스틴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드리앙과 메릴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를 이해하는 리는 영화 후반부에 결국 둘 다 죽는다.
쥐스틴 [출처: 넷플릭스]
쥐스틴의 어머니는 채식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식인을 향한 번뇌와 싸우고 언니는 감옥에 갇혔다. 메릴의 어머니는 감옥 같은 병원에 자신을 가두고 아무와도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선대)은 갇혀있다. 하지만 새 세대인 쥐스틴과 메릴은 조금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통제받지도 않고, 사랑하는 이를 먹어서 하나가 될지언정 여자들은 일단 홀로 남아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
"넌 방법을 찾을 거다." - <로우>
"나아지길 바란다." - <본즈 앤 올>
이해받지 못하는 욕망을 지닌 두 여성에게 사회 혹은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널 감당할 수 없어... 평범하게 살아보자... 욕망을 뒤에 두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평범이란 무엇인가? 평범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있나? 회피는 어떻게 해서든지 쫓아와 자신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들이 평범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의 삶과 선택은 오직 그들의 몫이다.
알렉스와 쥐스틴 [출처: 넷플릭스]
또한 미칠 것 같은 허기를 느끼지 않는데 식인을 하는 이도 있었다. 메런은 여행 속에서 '이터'도 아닌데 이터와 함께 다니며 식인하는 경찰을 만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존재에 큰 역겨움을 느낀다. 참고로 영화 속 메런은 흑인이고 그 경찰은 백인이다. (대체로 악역으로 나오는 남자들이 백인이더라고요? ㅇㅈ합니다) 쥐스틴은 교내에서 억지로 성관계를 행하려 하는 남자의 입술을 뜯어 그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의 입술을 먹으면서 몸에 묻은 색색의 페인트를 샤워로 싹 씻어낸다.
메런은 리의 도움을 받아 몇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따라온 설리반을 죽이고 그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통을 끊는다. 스토킹하고, 칼을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그런 남성들에게 주인공들은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식인과 싸움 이후 피칠갑이 되어도 그들은 그걸 씻어낼 수 있고 일상을 향유할 수 있다.
쥐스틴과 메런은 죄책감을 아는 여자고, 때문에 인간성을 끝까지 간직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복합적이다. 정신적, 육체적, 안정, 죄책감, 책임감 등 다양한 요소가 합해져 있다. 때론 인간을 먹으면서 인간을 사랑하는 캐릭터들처럼 모순적이기도 한 게 사랑이다. 아드리앙을 죽였지만 쥐스틴은 알렉스를 여전히 사랑한다. 리는 메런으로 인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녀로 인해 해방된다.
이터인 제이크는 리한테 '주도권'을 언급하며 사랑이 자유를 줄 수도 있다고 가르치려 든다. 학교 사람들은 쥐스틴을 조롱하고 복종하라 말한다. 어떤 주도권을 뺏고 가져오고 주고 넘기고 하는 건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리는 제이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드리앙과 알렉스는 쥐스틴의 말을 들어준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살과 피와 뼈를 내어준다. 기묘한 믿음으로 이 여성들의 더없이 쓸쓸한 성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알렉스의 길도 엄마의 길도 가지 않는 쥐스틴과 빼앗는 것에서 그치는 식인이 아닌 사랑을 담은 행위로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는 메릴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꽤나 자유롭다. 모든 자유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금기를 동반하기 때문에. 하지만 자유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게 해주는 삶의 중요한 요소다. 어쩌면 그들에게 자유는 일부임과 동시에 홀로서기를 위한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두 영화는 죽음과 작별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