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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Feb 08. 2022

나는 왜 유아전집이 사고싶을까

특별한 보통엄마가 되고싶은 욕심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수없이 다짐했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아이는 이미 스스로 온전한 존재이다. 내가 무엇을 하려하지 말자 - 그 연장선상에서 '평균적인' 아이의 발달이라느니, 놓치면 안될 타이밍이라느니, 이것만은 필수라느니 하는 말들에 휘둘리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남과 비교하지 말자.



육아는 내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더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유난을 떨지도,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아이가 크기 위해 단단히 뿌리내릴 정도의 땅이기만 하면 될 뿐이며, 또한 그런 엄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이가 17개월에 접어든 지금, 내게는 거실에 놓인 책장-무려 아이를 위해 구입한!-에 어떤 책을 더 채워넣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매일같이 아이들 책과 관련한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다들 어떤 책들을 읽히고 있는지 염탐한다. 그 곳에는 하루에도 유아서적에 관한 수십개의 글이 올라온다.



"ㅇㅇ개월 우리 아기의 책장을 공유합니다."

"두돌 아이, 어떤 책을 더 들여야할까요?"

"A전집 vs B전집, 뭐가 더 좋을까요?"

등등.



서로 진심을 다해 어떤 식으로 아이에게 책을 '노출'했는지, 어떻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는지, 어떤 책이 쪽박/중박/대박이었는지를 세세하게 공유한다. 일명 '책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이 곳을 발견한 나 자신을 칭찬하며 지금 우리 아이의 월령에 가장 많이 추천하는 전집을 두어개 구입했더랬다. 기쁘게도 아이가 그 책들을 좋아했고, 그 성취감은 다음에 들일 전집도 잘 골라봐야겠다는 의욕에 불을 지폈다.



그러면서도 내 나름의 기준은 세우려고 노력했다.

하나. 좋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들이지 말고, 분야별로 한 질씩만 들일 것. (참고로 유아전집에는 창작동화, 생활동화, 자연관찰 등이 있다. 더 세세하게도 있을테지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둘. 욕심이 나는 책이라도 아이에게 빠르다 싶으면 먼저 들이지 말고 때를 기다리자.

넘쳐나는 전집후기들에도 책장에 빈칸을 남겨둘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있던 이 두 가지 기준 덕분이었다.



몇 안 남은 그 빈칸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안도의 숨을 내쉬던 며칠 전 밤이었다.

잊고있던 다짐들이 불쑥 목소리를 냈다.

그래, 기준이 있는 것은 좋은데 그건 누굴 위한 기준이냐?

분야를 나누는 것도 어른의 눈, 욕심이 나는 것도 엄마의 눈, 어떤 책을 읽기에 빠르고 느리다는 것 역시 아이 본인이 아닌 다른 이의 판단.

백번 양보해서 아직은 아이가 하기 어려운 일이니 최소한의 개입은 해주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최소한이라는 기준이 늘어진 고무줄마냥 흐느적거리기 일쑤이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나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사는-그야말로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개입 외에는 어떤 인위도 최소한으로 하자 다짐하던 나로서는 꽤 충격적인 성찰의 순간이었다.

막연히 책을 많이 접하게 해주자 싶어 무작정 남의 육아를 들여보다보니 생긴 시행착오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싶고, 좋을수록 더 주고싶은 순수한 사랑이 발로가 되었겠다. 그러나 그마저도 욕심인 것이다. 그 순수함이라는 것을 빌미로 더 많은 것을 해주고싶어질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울 때에도 안아주는 것.

억지로 이해하려하기보다 그저 바라봐주는 것.

무엇보다 아이는 이미 온전한 존재임을 항상 기억할 것.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지침들이 온 사방에 넘실대고, 그 파도에 질식할 것같은 때가 종종 있다. 그 속에서 제각기 기준에 따라 부지런히 알맹이들을 골라모으는 엄마들을 보며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이 역시 더 훌륭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되려 나와 내 아이에게는 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세 가지에 집중하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와 함께하는 다른 다짐 하나 더-다음 전집은 아이와 함께 가서 직접 보고 골라야지.

아무리 그래도 역시는 역시, 책은 책이니까?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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