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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Aug 04. 2022

나의 남편

어쩌면 자랑, 확실히 사랑



“나는 이제 토미(남편이 나를 부르는 애칭)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같아.”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던가,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가.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즈음이었던 것같다.



결혼생각이 없던 사람이 첫눈에 내게 반하고,

서로 알게된 지 3일 만에 사귀기 시작해서,

그 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것까지,

모두 나를 만났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 끝에 내게 했던 말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같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까?



(아마 남편이 질색하겠지만) 20대 때의 연애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끝은 언제나 당연하게도 이별이었다. 그리고 그 이별의 이유 역시 당연한 한 가지였다.



이 사람이 변했다.



나는 어마무시한 겁쟁이였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겁을 냈더랬다.

연애를 막 시작할 무렵 새로운(!)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줄라치면 손사레치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왜냐,

지금이야 좋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데려다주겠다 하지만

익숙해질 때쯤 혹시 일이 생겨서 나를 못 데려다주는 날이면 갑자기 내 귀갓길이 하염없이 쓸쓸해질 (수도 있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고,

언제나 처음처럼 좋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고,

결국엔 헤어질 건데 마음아파할 추억하나 더 만들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작부터 이별을 보고 가는 연애가 그리 오래갈 리 없었다.

상대가 언제 변하는가를 추적관찰하는 연애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연애를 했다고 자부했는데,

지금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보니 꽤나 성가시고 까다로운 연애상대였겠구나 싶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방어기제가 심하게 발동했는지 지금도 다는 모를 일이다.



여튼, 그런 연애들 끝에 남편을 만났다.

처음 만날 당시 연애를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다 연하라니 더더욱 나와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결혼식장을 잡았다니, 세상일 참 모르는 거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보았다.

지금도 종종 하는 말처럼,

나는 지금의 내 남편이라서, 남편은 나라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따금씩 나를 놀래키는 남편의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결혼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것.

그리고 내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것.



그와 있으면 나는 굳이 다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나보다 더 세세하게 나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이야기할 때는 서로 맥주 한 잔하면서 사랑을 다독일 때라고 하면 눈꼴시려우려나.



때로는 사소하게 반복되는 서로의 버릇들이,

혹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또 혹은 우리가 마땅히 감내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우리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신경이 곤두서기도 하고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를 제일로 알고 모든 일의 최우선순위에 두며 나를 위해 내 주변까지 살뜰히 챙기는 그 마음씀씀이는 당최 닳아질 줄을 모른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미련한 욕심은 왜 그칠 줄을 모르는지.

아이를 낳고 나도 함께 커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에 조금 여유를 담아보자 하면서도 어째 갈수록 더 남편에게만은 깐깐해져간다.



이제 만 3년을 채워가는 결혼생활.

마냥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기만 할 것같던 우리 사이에도 약간의 부침은 더러 있었더랬다.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은 그 마음만 알아주면 충분하다고도 말했었다.



내가 욕심을 부릴 곳은 남편이 아니라

그의 진심을 제대로 보려는 내 마음이어야겠구나,

멋쩍은 실소가 새어나온다.



앞으로를 누가 감히 내다볼 수 있을 것이며, 그럴 필요는 또 뭐있을까.

그저 스스로 그런 마음이 들어 내게 진심어린 눈빛으로 건넸던 한 마디와 그 한마디로 이미 뿌리내려버린 믿음이 있는 것을.



나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보답할 길은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안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남편과 두 손 꼭잡고 그 길 위를 휘적휘적 신나게 걸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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