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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 Oct 17. 2022

육아인의 불행계량법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체로 행복하다'라는 답을 할 때가 있다.

'대체로'라는 단어는 행복이 아닌 순간은 언제인가 라는 또다른 질문을 불러낸다.

나의 행복을 모래성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 단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단위: 하루 중 차지하는 시간. h로 표기)

1. 아이들과의 실랑이(계량을 위해 '내 뜻대로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옷을 입는 등의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제외한다): 약 1~2h


- 아이들과의 실랑이는 정해진 시간이 없이 일과 중 수시로 짧게 혹은 길게 발생한다.

- 어제는 마냥 즐겁기만 했던 산책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산책 내내 어르고 달래느라 녹초가 되기도 한다.

- 아이들의 생각은 보통 나와 달라서 의견을 조율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놀랍게도 그 과정이 늘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 총합은 1~2h 정도로 추산되나, 컨디션에 따라 이 재료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같은 양일지라도 거의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하루 종일 시달렸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2. 남편과의 실랑이: 평균적으로 약 1/2~6h(성질에 따라 가감, 생략 가능)


- 더없이 살갑고 다정하기만 했던 연인은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아이들 머리 위로 소리없는 포탄을 수도 없이 주고받는다. 서로의 최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서운함. 서로의 다름을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 여유의 부재.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 그 순간이 오면 남편과의 실랑이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이것은 나의 행복을 의심케하는 강력한 향신료가 된다.

- 이 향신료는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가장 자주 쓰이는데, (드물지만) 어떤 하루에는 생략되기도 한다. 스치듯 지나갈 때도 있고, (역시 아주 드물게) 하루를 넘어서기도 한다. 지속되는 시간이 길수록 치명률도 높아진다.

- 이 재료의 위험성은 다른 관계까지 숙주로 삼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남편과의 실랑이가 발생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아이들이다. 불편한 관계에서는 몹시 해로운 악취가 뿜어져나오는데,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아이들은 이 악취마저 거르지 않고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 그 위험성에 비해 이 악취를 제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랑이가 발생하려는 순간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당신 말도 맞아."라는 주문을 외우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궁합이 좋은 재료: '우리는 다를 줄 알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밀려드는 서글픔.



3. 불행을 향한 의지: 계량 불가(성질에 따라 생략 가능)


- 일종의 육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루 구석구석에 은근하게, 그러나 빠짐없이 영향을 끼친다.

- 이 재료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 대표적으로, 갖고 있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기, 남과 비교하기(나보다 상황이 낫다고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못하다고 느껴지는 사람과의 비교를 포함한다. 후자는 비뚤어진 우월감을 발생시키므로 더 위험할 수 있다.), 어제만 또는 내일만 생각하기, (역설적이게도) 행복해지는 것에 집착하기 등이 있다.

- 이것은 사람에 따라 주재료가 될 수도 있다.

- 불행을 향한 의지는 행복을 향한 그것보다 훨씬 힘이 강하면서도 은밀하고 그 모습이 다양해서, 사람들은 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기에게도 이런 의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일쑤이다.

- 이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위의 두 재료가 무의미해지기도 하고, 그 효과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매일의 계량이 달라지는 탓에 모래성은 단단해졌다가 곧 허물어질 듯 위태로워지기를 반복한다.

정확한 계량도구 없이 그 날의 날씨, 아이와 나와 남편의 컨디션,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상황들에 맞추어 모양을 달리하는 하루들.

내 뜻대로 멋진 하루를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은 되려 그 하루를 망치고야 만다.



행복이라는 말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점점 더 그 실체는 희미해진다.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손으로 잡아볼 수도 없다.



내 하루를 행복이라는 그릇에 불행을 더해가는 요리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 선택에 따라 조금 더할 수도, 많이 더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생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하루를 요리해가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제법 능숙한 주방장이 되어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각자의 계량으로 적당한 불행을 더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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