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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홍 Mar 16. 2016

[#17] 회계로 본 알파고

- 연구개발비용 회계처리의 이해

[들어가며]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예상한 10년 뒤 없어질 직업 중 최상위권에 위치한 회계사!

현존 가장 진보한 AI와의 싸움에서 한판의 승리를 거둔 인간계 대표 이세돌 9단이 한 회계사에게 인류를 구원할 한 가지 tip을 제공하는데.

밥 줄을 놓고 벌어지는 회계사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투자와 비용]


투자와 비용의 차이를 알고 계신가요?

월급은 꼬박꼬박 받는데 왜 돈이 안 모이는지, 매출도 꽤 나오는데 왜 통장엔 현금이 없는지, 고민이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투자와 비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회사원이 매일 새벽 6시에 듣는 월스트리트 잉글리시에 지불하는 돈이 투자인가요? 아니면 비용인가요?

개인의 입장이라면 자기계발을 위해 영어학원에 지출하는 비용은 투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다 쓸 데가 있겠지요. 기회도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회계에서 본다면 월스트리트잉글리시 영어학원에 지출하는 돈의 구분 기준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영어 실력 때문에 좋은 자리를 제안받아 연봉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투자입니다. 하지만 영어실력 키워서 길 묻는 외국인에게 길 알려주는데 밖에 쓸 때가 없다면 이럴 때는 비용으로 처리하게 되죠. 결국 영어실력의 향상으로 미래에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연구개발비 자산인가? 비용인가?]


회계기준에서는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지가 투자와 비용의 구분 기준이라고 했지만, 사실 기업에서 지출하는 돈이 비용인지 투자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회계사들의 고민거리죠.


실무에서 투자와 비용의 구분이 어려운 대표적인 항목이 연구개발로 지출한 비용입니다. 회사에서 투자로 봤다면 개발비라는 계정과목으로 재무상태표(BS) 상의 무형자산으로 계상합니다. 비용으로 계상했다면 경상개발비나 연구개발비라는 계정과목으로 손익계산서(IS)에 판관비 항목으로 회계 처리합니다. 주석을 확인하면 비용으로 계상한 연구개발비 금액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는 K-IFRS와 일반기업회계기준이 거의 동일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일반기업회계기준도 국제회계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K-IFRS에서는 자산과 비용을 구분하는 방법을 연구단계와 개발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단계에서 발생한 비용은 당기비용으로 처리하고, 개발단계에게 발생한 비용은 자산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죠. 사실 일개 회계사가 연구단계인지 개발단계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회계기준에 비해 비용과 자산의 구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회계기준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이례적이지요. 그만큼 구분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K-IFRS에서 연구단계와 개발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서 제1038호 ‘무형자산’

연구활동의 예는 다음과 같다.

⑴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활동
⑵ 연구결과나 기타 지식을 탐색, 평가, 최종 선택, 응용하는 활동
⑶ 재료, 장치, 제품, 공정, 시스템이나 용역에 대한 여러 가지 대체안을 탐색하는 활동
⑷ 새롭거나 개선된 재료, 장치, 제품, 공정, 시스템이나 용역에 대한 여러 가지 대체안을 제안, 설계, 평가, 최종 선택하는 활동

개발단계 중 다음의 사항을 모두 제시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개발 활동(또는 내부 프로젝트의 개발단계)에서 발생한 무형자산을 인식한다(KIFRS 1038.57). 이러한 조건에 따라 기업이 발생한 연구개발비를 비용이 아닌 자산화하는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1) 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하기 위해 그 자산을 완성할 수 있는 기술적 실현가능성
(2) 무형자산을 완성하여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기업의 의도
(3) 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4) 무형자산이 미래 경제적 효익을 창출하는 방법. 그중에서도 특히 무형자산의 산출물이나 무형자산 자체를 거래하는 시장이 존재함을 제시할 수 있거나 또는 무형자산을 내부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면 그 유용성을 제시할 수 있다.
(5) 무형자산의 개발을 완료하고 그것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재정적 자원 등의 입수 가능성
(6)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무형자산 관련 지출을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는 능력


개발비 회계처리는 감독당국인 금감원에서도 항상 중점 감리 사항으로 지정하기 때문에 감사인들도 항상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깐깐하게 보는 항목이지요. 그래서 회계감사 현장에서 회사와 의견 충돌이 많이 일어납니다.  




[연구개발비 자산화에 대한 우려 ]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업종이 IT기업과 제약업종일 텐데요. 우리나라 제약업종이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지나치게 개발비를 많이 인식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개발비 자산 지나쳐]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가총액 9조 8700억 원에 달하는 셀트리온의 지난 2·4분기 개발비 자산 잔액은 5988억 1400만 원으로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2%에 달한다. 2012년 19.9%에 이어 2013년 23.8%, 2014년 24.1% 등 꾸준히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시총 4조 4500억 원의 한미약품은 2·4분기 개발비 자산 잔액이 773억 7500만 원으로 총자산 대비 비중은 6.8% 수준이다. 또 제넥신은 23%, 인트론바이오는 28%, 파미셀은 40%에 이른다.

글로벌 제약사들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1위 제약사인 존슨 앤 존슨의 지난해 개발비 자산은 28억 4200만 달러로 총자산(1311억 1900만 달러) 대비 2.2% 수준이다. 2위 노바티스도 2.3%(28억 4300만 달러)이고, 4위 화이자는 0.2%(3억 87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제약업종 '개발비' 자산 처리 몸집 늘리기.. 회계 개선 필요, 2015.09.17, 파이낸셜뉴스]


예를 들어 신약개발 시 임상 1~3단계를 완료한 후 정부 승인을 거쳐야 제품화할 수 있다고 한다면, 업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국내 기업은  임상실험 3단계에서부터 개발비를 자산화하고, 해외업체는 한 단계 더 늦은 정부 승인 단계부터 자산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제약업체가 해외업체에 비해 자산화되는 연구개발비가 많은 것입니다.


개발비 자산화에 대한 우려의 근원은 분식회계입니다. 비용 항목을 자산으로 계상한다면 당기순이익을 높이고 각종 재무비율을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불확실한데 자산으로 계상하였다는 것은 실적의 왜곡으로 투자자 및 채권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딥마인드에 대한 회계감사]


알파고를 만든 회사인 딥마인드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제가 딥마인드의 외부감사인이 되어 감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런던으로 날아갑니다.

(출처 :https://companycheck.co.uk/company/07386350/DEEPMIND-TECHNOLOGIES-LIMITED/financial-accounts)


딥마인드의 FY15년도 재무제표는 아직 공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참 지금 제가 감사 중인 거죠?

작년에 공시된 자료를 살펴보니 빨간 박스 친 부분,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으로 계상된 금액이 '0'입니다. 알파고 만드느라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딥마인드의 영국 감사인 EY(Ernst & Young-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가 엄정한 감사를 수행했군요.


그러나 FY15년도 재무제표 감사인으로 한국의 어리바리한 이 회계사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딥마인드 측에서 알파고 개발비용을 무형자산(Intangible Asset)으로 계상한 재무제표를 제시하였습니다. 회계감사가 기본적으로 숫자와 증빙서류로 이루어지지만 아직 아날로그적인 면도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질문과 답변입니다. 영어로 회계감사를 'Audit', 감사인을 'Auditor'라고 하는데, 이 단어들의 어원이 'To hear'의 뜻을 담은 라틴어 'audire'라고 합니다. 결국 좋은 감사인(Auditor)이란 잘 듣고 판단하는 사람이네요. 잘 들으려면 질문을 잘 해야 하니 결국 일 잘하는 회계사는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시 딥마인드 감사장으로 돌아가서..

이세돌 선수의 3연패의 소식이 전해진 후 이 회계사가 딥마인드의 하사비스 사장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Mr Lee: 이거 알파고로 돈 벌 수 있어요?

하사비스 사장님: 음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곳저곳에 응용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어요. 알파고가 'Sedol Lee' 이기는 것 봤죠?

Mr Lee: 음음.. (속으로: 바둑게임 만들어서 서버만 운영해도 돈이 되겠는데.. 오늘은 설득당할 것 같으니 다음날을 기약하자.) 월요일에 다시 뵙죠.


그러나 지난 일요일 경기를 보고 온 이 회계사가 갑자기 NHK 기자에 빙의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Mr Lee : 알파고가 항상(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큰 수(큰 그림)를 놓아왔고, 실수도 실수가 아니라고 계속 나왔었는데, 어제는 진짜 실수인 것 같은데요. 만약 인공지능이 의학과 같은 일에 적용되어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더 큰 그림을 본 것이라고 믿고, 혼란스럽지만 그 결정에 따를 수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사비스 사장님 : 알파고는 프로토타입에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직 베타 단계도, 심지어 알파 단계도 아닙니다. 알파고라는 프로그램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단점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저희가 이런 경기들을 치르는 거죠. 게임 그러니까 바둑에 있어서 그러한 단점을 아는 방법은 이렇게 훌륭한 기량을 가진, 전 세계 바둑기사 들에 이렇게 훌륭한 기력을 가지신 분이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세돌 9단과 같은 훌륭한 분과 이러한 다양한 대국을 펼칠 수 있는 것이고요. 바둑이라는 게임은 아름다운 게임입니다.

Mr Lee: 프로토타입!! 리얼리??. 하하하, K-IFRS 1038호 무형자산 중 연구활동 4번에 해당되네요."

이 회계사는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수정 분개를 끊습니다.

(차)경상연구개발비(비용)  **   (대)개발비(자산)   ***


하사비스와의 사투 끝에 알파고가 재무재표라는 공식문서에 숫자로 찍히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회계사는 딥마인드의 모회사인 알파벳(구글)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구글 감사인에게 메일을 씁니다.

Dear 알파벳 오디터

Hi~ 나는 너의 연결 자회사 중 하나인 딥마인드 감사인이야.

알파벳이 딥마인드 인수하면서 큰 돈을 줬잖아? 그러니 알파벳 재무제표에 영업권(*)으로 달린 금액을 모두 감액하는 게 어떠냐? 빨리 세르게이님을 압박해서 손 떼게 만들어. 어서~

(*) 영업권 : 인수당한 회사의 순자산공정가액이 500원인데 1,000원을 주고 사면 인수한 회사에서는 500원을 비싸게 주고 산 것이므로 영업권으로 계상하게 됩니다. 자회사가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제구실을 못하면 감액 처리합니다.  

이로서 이 회계사는 딥마인드의 돈줄을 막아 인공지능의 개발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이 앞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습니다.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위 딥마인드 사례는 회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만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결론]


연구개발비는 기업의 성장을 위해 지출해야 할 필수적인 비용입니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안 하는 기업이 미래 성장동력이 있을 리 없겠지요. 회사 입장에서는 연구개발비용이 미래 현금창출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기업 외부에 있는 투자자나 채권자들을 위해서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재무제표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도 개발비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주식투자를 위한 재무제표 분석을 할 때 개발비는 제외하고 각종 재무비율을 산출해 보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주가가 재무제표와 상관관계가 있는가?라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이긴 합니다. 대국기간 동안 구글의 주가가 58조원 올랐다고 합니다.

실제로 재무제표 감사가 아니라 M&A를 위한 듀딜리전스(DD, 기업실사) 작업을 할 때는 개발비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산으로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회사재무제표에 개발비가 계상되어 있다면 재무제표 주석을 확인해서 회사가 무엇을 개발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시고 과연 그 기술로 현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판단해보세요. 주석에 기재가 되어 있지 않다면 회사의 사업보고서나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본인의 실력이 되는 것은 남이 만들어준 자료에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줄 요약) 연구개발비는 개발이 가시화되어 회사에 돈을 벌어올 수 있을 때 자산으로 계상하고 나머지는 모두 당기 비용으로 처리한다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덧) 인간의 품격를 보여 준 이세돌 9단 만세!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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