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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홍 Jan 14. 2016

[#4] 대우조선 분식회계 관련 잡상

-15년 7월 말 작성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가 요즘 좀 이슈가 되던데. 포탈  댓글들을 살펴보니 마치 분식회계를 회계사가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건 아니다 싶어 몇 자 적게 되었다.  분식회계란 영어로 Window dressing settlement, 한자로 粉飾會計 라고 하는데 이젠 국민 상식 수준의 단어가 됐으니 굳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아쉬우니 간단히 말하자면 장부를 조작해서 자산을  뻥튀기시키든, 이익을  뻥튀기시키든 숫자를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을 분식회계라 하겠다. 역분식이라고 일부러 못나 보이게 만드는 작업도 분식회계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럼 분식회계는 누가 하는 것인가? 


재무제표의 작성 책임은 경제와 관련한 최상위법인 상법에서부터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까지 공통되게 회사의 경영자에게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례로 전자공시시스템(http://dart.fss.or.kr/)에 공시되어 있는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클릭해보면 감사보고서에는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와 회사의 재무제표, 주석이 세트로 공시되어 있다. 이중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를 누르면 한 페이지짜리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가 링크되는데 이 한 페이지를 회계사가 작성하는 것이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재무제표 및 주석은 회사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의 기재 내용을 보면 "경영진은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이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공정하게 표시할 책임이 있으며, 부정이나 오류로 인한 중요한 왜곡 표시가 없는 재무제표를 작성하는데 필요하다고 결정한 내부통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분식회계의 책임은 회사 경영자에게 있다고 하겠다. 요즘 유체이탈 화법이 유행이라서 경영자는 지시한 적도 없는데 회계팀 직원의 개인적인 일탈로 인해 분식회계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적다.



그럼 분식회계는 왜 할까?


겉으로 드러낸 현상만을 통해 이유를 들어보자면 자금의 원활한 융통이라고 하겠다. 재무제표 실적이 나빠지면 신용등급이 나빠질 것이고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추가 차입이 어려워지게 되고 심지어는 차입금 상환 요청이 들어오게 된다. 또한 주가가 하락하게 되니 투자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될 것이다. 신규 수주라든지 매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피상적인 이유일 뿐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약간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분식회계를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기원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적인 확률보다 자신의 상황을 더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긍정적 편향 Optimistic bias'이라 부른다. 특히 여기에 '우수성 편향'이 추가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행운을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90% 이상의 운전자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 한다고 믿고, 대학교수의 70%가량은 자신이 상위 25% 수준의 강의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고 한다. 회사의 경영자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특징인 긍정적 편향에 경영자에 오르게 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수성 편향'이 아주 높게 형성된다. 따라서 경영자는 '지금의 어려움만 조금 견뎌내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다' 또는 '몇 가지의 상황이 개선되면 매출이 대폭 증가하여 부실을 쉽게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착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 분식을 하더라도 금방 털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세계경영을 외치며 41조 원이라는 숫자를 분식으로 만들어낸 김우중 회장도 아마 조만간 회사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경영자들이 분식회계를 적발당하는 경우에 어떤 형벌을 받는 지에 있다. 범죄에 대한 형벌과 관련하여는 두 가지의 이론이 있다. 우리나라 고조선의 8 조법과 함무라비 법전 시절부터 내려온  '응보형주의'가 한 가지이다.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형벌을 내리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목적형주의'인데 형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장래의 범죄의 예방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일반예방 이론' 일컬어지는 다른 사람에 경각심을 일으켜 범죄를 예방하는 목적을 달성하거나, '특별 예방 이론'으로 불리는 해당 범죄자를 교화하여 다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국내의 형벌로는 분식회계를 단죄하지도 예방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SK글로벌에서 1조 5천억이 분식회계로 적발되었을 때 최태원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두산 박용성 회장이 횡령과 분식회계 2800억을  적발당한 경우에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나마도 짧은 형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특별사면을 명 받았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얼마 전 또 구속되어서 요즘 사면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우리와 반대로 미국은 2001년 엔론 분식회계 때 스킬링 대표에게 징역 24년에 벌금 4000만 달러를 선고했다. 요즘 이 양반이 항소를 통해 10년 감형을 받아서 징역 14년이 되었다는데 벌금은 내고 징역도 현재까지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분식회계가 적발되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조금만 고생하면 보다 큰 이익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최태원 회장 같은 사람들이야 잘릴 걱정 안 하고 회사 다니겠지만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라고 해봐야 월급쟁이 인생, 악착같이 살아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개룡남 아니겠는가? 자리가 욕심을 만들고 돈이 욕심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중국 사회를 운영해가는 법칙 중에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말이 있다. 이번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도 신임 경영자의 양심선언에 의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신임 경영자가 문제를 삼지 않았다면 대우조선이 거의 회복불능의 빈사상태에 이르렀을 때야 분식회계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보통 회사가 막장에 이르지 않고는 분식회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신임 경영자는 왜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일까? 아마도 회계의 기본 원리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익이나 투수나 당겨 쓰면 탈 난다.


야구계에서는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단련이 된다는 이론과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닳게 된다는 이론이 대립하고 있다. 사실 야구를 많이 봐 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후자의 논리에 더 손을 들어줄 것이다. 지금 부상으로 어깨 수술을 받은 류현진 선수나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선수처럼 유명한 선수를 제외하고서도 한 해 투혼을 불사른 후 구위가 눈에 띄게 하락한 많은 선수들을 보아왔다. 특히 야구 판에서 혹사라 불리는 투수 당겨 쓰기는 투수의 내구성 저하에 큰 원인으로 작용하므로 아무리 명장 김성근 감독도 투수 당겨 쓰기를 한다면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회계는 보통 1년 단위로 끊어서 실적을 보고하기 때문에 미리 이익을 당겨 쓴다면  그다음 언젠가는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재무제표라는 것이 복식부기로 처리된 자료들을 집계된 표에 불과해서 복식부기의 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복식부기의 우수성 중 하나로 오류의 자동조정 기능을 든다. 사실 오류의 자동조정이라는 것이 분식회계를 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Danger'라는 단어가 빨간 엑스 표시와 함께 떠줘야 하는 것인데 컴퓨터가 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동조정 오류란 이익의 기간 귀속과 관련하여 올해 미래의 이익을 미리 당겨 썼으면 내년에는 그만큼 이익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올해 있지도 않은 재고자산으로 순이익을 늘려봐야 내년도에는 그 재고자산의 영향으로 순이익이 감소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번 대우조선의 양심선언도 그런 맥락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사장으로 와보니 전임 사장이 이익 당겨 잡아놔서 그게 고스란히 나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게 되니 어찌 눈감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특히 오너 회사도 아니고 임자 없는 회사에서 괜히 독박 쓰게 생겼는데 누가 사장으로 와도 양심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유독 건설과 조선업에서 분식회계가 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건설업이나 조선업, 플랜트 산업의 경우 특수한 회계처리 기준이 있다. 바로 진행기준을 적용하여 회계처리를 하는 것인데, 진행기준은 회계의 대원칙 중 하나인 '수익비용 대응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회계처리방법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우수한 회계기준이지만 이 기준을 악용하기가 다른 업종보다 쉽다는 것에 있다.  진행기준 회계처리의 핵심 세 가지는 도급금액과 총공사 예정원가(실행원가)의 산정, 공사 진행률의 산정이다. 이중 분식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팩터가 공사 진행률의 산정이다. 공사 진행률의 산정은 총공사 예정원가(실행예산)를 분모에 놓고, 당기에 실제 발생한 원가를 분자로 놓으면 간단히 계산된다. 매년 회사의 매출액이 도급금액에 공사 진행률을 곱해서  산출되므로, 건설회사의 이익은 공사 진행률에 따라 결정된다. 도급금액이야 외부 업체와 계약한 금액이기 때문에 외부에 확인하기도 쉽고 검증하기가 간단하다. 하지만 이 공사 진행률이라는 놈은 공사 예정원가(실행예산)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좀 복잡한 문제가 된다. 문제는 복잡한 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누구도 쉽게 검증할 수 없으므로 실행예산을 회사에서 쉽게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사 진행률을 조작하는 것은 야구에서 투수 당겨쓰기와 다를 바가 없다. 회사가 도급 공사에서 얻을 총이익은 '도급금액 - 실행예산'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총이익이 상수로 정해져 있는데 이것을 한두 해 당였으면  그다음 연도의 이익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한두 번, 한두 개의 공사의 이익은 당겼을 수 있지만, 요즘처럼 해당 업종의 경기가 죽으면 논둑 터지듯 한꺼번에 회사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손실이 밀려온다.


이번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는 진행률 조작은 아닌 것 같다. 도급 공사계약에서 도급금액보다 총공사 예정원가가 커지면 공사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 회계기준 상 공사 손실 예상금액은 최초 손실이 예상된 연도에 모두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공사손실 금액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 것이 이번 분식회계의 핵심이다. 사실 대우조선에서  회계처리하지 않았다고 하는 공사손실 금액도 추정된 실행예산을 바탕으로 계산된 금액이므로 신임 경영자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경영진이 바뀐 후라면 전임 경영진의 추정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신임 경영자의 경우 이익 당겨쓰기와 반대로 손실을 최대한 일찍 반영하면 추후 재임 기간 중 이익금액을 늘리거나 최소한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행예산이라는 것이 물가상승률이라든지 투입 원재료의 가격 상황이라든지 고려해야 할 것이 수백 가지이기 때문에 작성자도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행예산을 검토하는 입장에서도 조그만 빌딩 하나 짓는 것이야 사람이 일일이 추적 가능하지만 대규모 건축이나 수 조원의 플랜트 계약의 실행예산 검토는 파일 자체가  암호문인 데다가 인쇄물로 받아보면 거의 두꺼운 전공서적의 두께를 자랑하기 때문에 인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이익이나 손실을 당겨쓰거나 나중에 쓸 수 있다는 것이 건설이나 조선업종에서 분식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이다. 또 비자금 같은 것은 것들도 실행예산의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 놓기가 매우 쉬우므로 건설사 하나 갖는 것이 사장님들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웅진도 건설사 하나 잘 못 먹었다 탈 나서 캐시카우 코웨이까지 탈탈 털리기는 했지만.


그럼 돈 받고 회계 감사한 니들은 뭐했냐? 회계사 네놈들이  문제다!라는 의견들도 속속들이 보인다.




회계감사란 무엇인가?


경제학적으로 회계감사가 공공재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회계감사를 통해 주주, 종업원, 기타 투자자, 정부, 채권자 등의 불특정 다수의 후생을  향상하기 때문이다. 회계감사를 공공재로 본다면 사회 전체의 후생이 향상되는 부분만큼을 회계감사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게 좀 애매하다. 사회 전체의 후생 향상 분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은행은 담보 없으면 돈을 안 빌려 주려고 하고 투자자들도 평소에는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받았는지, 배당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이처럼 사회적인 후생 향상 분에 대한 인식이 없으므로 지금처럼 저렴한 감사비용이 가능할 것이다. 저렴한 감사비용에 대해서 한 예를 들어보면 1500세대 아파트 회계감사를 100만 원에 수행하는 회계사가 있으니 말 다했다. 그 단지 앞에 있는 부동산중개소에서 아파트 한 채 전세만 중개해도 거의 2~3백만 원은 받는 판에 아파트 전체의 회계감사를 100만 원에 수행을 하고 있으니 회계감사라는 것이 아파트 한 채 전세 중개한 것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다. 원래 수수료라는 것이 그 서비스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 값에도 일을 하는 회계사가 있으니 할 말은 없다.


회계감사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것은 주주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원활히 작동하는 사회일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 오너 경영이라는 것이 매우 특수한 경우이다.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영진에 대한 감독이 필수적이다. 주주는 경영진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재산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경영진의 실적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경영진도 회사의 경영성과에 따라 보상액이 결정되므로 회계 조작의 유인이 커지게 된다. 이때 주주의 경영진에 대한 감독의 관점에서 회계감사는 매우 중요한 절차가 된다. 회계감사를 철저히 수행할수록 경영자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고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주 자본주의는 미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대부분의 회사가 오너경영 체제라서 대주주가 곧 회사의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경영진을 감시할 필요가 없으니 회계감사의 효용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감사를 철저히  할수록 주주이자 경영자인 본인에게 불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또한 내 회사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외부에서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경영활동의 걸림돌로 생각되기도 한다. 정부도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얼마 전 외부 회계 감사 대상 법인의 자산기준을 상향 조정하면서 중소기업의 손톱 밑의 가시를 제거한 것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계감사라는 것이 변호사의 승소율이나 세무 불복에서의 승소처럼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감사를 잘했던 못했던 감사의견은 적정 아니면 한정, 의견거절, 부적정 네 가지가 전부이기 때문에 그냥 싸게 하면 장땡이다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감사 잘하는 놈이 와 봐야 회사에 귀찮기만 하다는 의식도 팽배해져 있고. 또한 자유수임제 제도 하에서는 감사인을 회사의 경영진이 선임하게 되므로 돈 내는 회사는 갑, 돈 받는 회계법인은 을의 위치로 고정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갑을 문화가 어떠한 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을로 가서 공정한 회계감사를 진행하고 나면 내년에 다시 본다는 기약이 없어진다. 


이쯤에서 그럼 공정한 감사를 위해 배정제를 확대해서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청년 회계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 배정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감사는 자유수임제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배정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자유수임제가 보다 우월한 방법이고 또한 자유수임 제하에서 회계법인 간 서로 경쟁해야 감사품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논거를 들고 있다. 이상적으로 맞는 말이기는 하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창의성을 발휘하면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이라는 착각과 비슷하다. 그것은 주주자본주의가 성숙한 서구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서구사회에서도 종종 사고 치는 놈들도 나오긴 한다. 우리나라처럼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도 마치 회사를 본인의 소유물처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배정제의 확대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대우조선 얘기로 돌아가서, 나의 경험상 대우조선을 감사할 시점에는 공사손실이 예상되지 않는 파일이 회계사에게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회사에서 감사대상 회계기간 말에 합리적으로 추정해 보았더니 플랜트 공사의 예상 공사원가가 도급금액보다 작았다면 공사손실을  계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공사 손실이  예상되었어도 회계사에게 제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금감원에서 감리도 꼼꼼하게 할 것이고 산업은행에서 실사도 들어갔으니 회계감사가  잘못되었으면 그에 따른 징계를 받게 되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대우조선의 감사인을 비난하는 것은 그냥 희생양 찾기의 하나의 방법 밖에는 아니라고 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매년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함께 정치·경제·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순위를 발표하는데 IMD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60개국 중 26위를 차지했지만 회계투명성 분야는 59위를 기록해 가까스로 꼴찌를 면했다. 한국 기업들의 회계정보 신뢰성이 전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가 대만(20위), 일본(33위), 태국(34위), 필리핀(40위), 중국(55위) 등보다 낮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국제회계기준을 아무리 도입해 봐야 회계 투명성이 올라갈 일이 없다. 분식회계는 회계기준이 투명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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