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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홍 Jan 14. 2016

[#3] 플랜트 공사의 대망(大亡)에 대한 감상문

-관련 기사 두 편을 읽고 든 생각-

회계처리 관점에서 수주산업에서 제일 중요한 두 요소는 도급금액과 실행예산이다. 도급금액은 회사의 매출이 되는 것이고 실행예산은 회사의 원가가 된다. 간단히 도급금액에서 실행예산을 빼면 예상이익이 나오게 되고 이 이익금액을 공사의 진행속도에 따라 회계기간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수주산업에 대한 회계처리의 큰 틀이다. 공사가 끝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실제 발생한 이익으로 맞춰지게 된다. 


수주산업의 대표선수를 들자면 건설회사와 조선소이다. 이러한 업종의 가장 핵심역량은 단연코 공사원가를 추정하는 역량이다. 예정공사원가, 실행예산, 견적 원가가 다 같은 말이다. 공사원가의 추정이 중요한 이유는 입찰을 위한 견적을 내는데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실행예산에 일정률의 이익을 가산하여 도급금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사 수주를 위해서나 회사의 이익을 관리하기 위해서 예상 원가를 추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회사의 이익은 (도급금액 - 원가) 이기 때문에 도급금액과 원가가 수주산업에서 관리해야 할 두 가지 축이 된다.  


하지만 도급금액은 회사에서 엄격하게 관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외부요인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넉넉한 마진을 붙여서 입찰에 성공했다면 여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입찰에서 넉넉한 마진은 낙찰의 원인이 된다. 낮은 도급금액으로 공사를 수주했을 때 도급금액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공사 대금의 추가 청구가 있다. 최초에 도급금액을 낮게 가져가서 입찰을 따낸다. 그 후 설계변경을 통해 도급금액을 키워서 회사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몇몇의 시공업체의 견적을 받아서 공사단가가 가장 낮은 업체를 공사업체로 선정했다. 공사를 시작하고 나니 그 업체에서 나를 살살 꼬드기기 시작한다. 견적서에는 그냥 싱크대에 가스레인지를 놓기로 했는데 공사 중에 이왕 하시는 것 사모님 건강도 생각하시고 안전성이 높은 인덕션으로 시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같이 팔랑귀라면 '사모님 건강'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설계변경에 순순히 동의해줬겠지만, 사모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집주인을 만난다면 이 전략도 도루묵이 되겠다. 아파트 재건축이나 빌딩 공사에서도 설계변경으로 인해 소송까지 가는 것을 보면 공사업체에서 자주 쓰는 전략이라면 전략이 되겠다. 


수주산업의 두 가지 축에서 더 중요한 것은 원가관리라고 할 수 있다. 건축주나 발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납기와 품질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겠지만 공사업체의 경우 납기 준수와 원가절감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예상 원가를 짜 놓은 것을 실행예산이라 부른다면 실행예산을 산출하는 것이 회사의 핵심역량이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실행예산에는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해양플랜트 공사에서 리스크라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바다에 갑자기 태풍이 몰려온다든지, 콘크리트 치러온 중국사람들이 춘절이라서 다 집에 간다고 하든지, 아니면 갑자기 전쟁이 발발하여 다 놓고 돌아와야 한다든지 등등  수백수천 가지의 리스크가 있다. 이런 것들이 실행예산에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바다에 해양플랜트를 설치해야 하는데 볼라벤 같은 강력한 태풍이 발생하여 피해를 입을 확률이 20%이고 피해액이 100만 원이라면 그 기댓값인 20만 원이 실행예산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해양플랜트에서 월드 베스트라 불리는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기업들은 이 같은 리스크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업체들의 경우 해양플랜트와 관련하여 쌓인 노하우는 아직까지 그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면 우리나라 조선소에서는 암묵지에 있는 지식이 형식지로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공사를 시작해보니  이런저런 리스크들이 표면 위로 드러났을 것이고 이에 따라 실행예산이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달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숫자가 돼버렸을 것이다. 회사도 깨져나가는 실행예산을 보며 100원에 수주한 공사가 130원 150원이 투입되어야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을 했을 것이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원가절감을 위한 TFT도 만들어보고, 긍정성 편향에 기대어 그냥 잘 되겠지 하고 우주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사가 잘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경영자의 임기도 남았고 조금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회계사가 감사를 시작하게 된다. 회계사가 회사의 원가 담당자에게 실행예산 파일과 진행률 파일을 요구한다. 회사는 시나리오 별로 실행예산표가 있겠지만 회사의 목표이익에 맞춘 실행예산표와 진행률 파일을 회계사에 제공하게 된다. 회계사는 이미 재고 실사 때 본 건조 중인 배의 위용에서 받은 큰 감동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실행예산 엑셀을 보고 다시 한번 큰 감동의 물결을 느끼게 된다. 이지성 작가가 고전을 원서로 읽으라고 했는데, 이건 뭐 그리스어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해석하지 못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색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 


"차장님 혹시 실행예산에 태풍이? 혹시 콘크리트 치는 사람들이 집에 간다고는 안 하는지? 전쟁이? 등등의 기댓값은 반영되었나요?"
"아, 아직~ 회계사님이 한 번 계산 좀 해줘 보시겠어요?"
"아~ 차장님 그건 회사에서 계산하셔서 저에게 주셔야 하는 건데요~ㅎㅎㅎ"
"차장님 혹시 저번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태풍 때문에 뽑혀 나간 타워크레인 보수 비용과 일정 지연분은 실행예산에 반영이 되었는지요?"
"아~ 그걸 어떻게 아셨죠?. "
"뉴스에서 그쪽 바다에 강력한 태풍이 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정도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증빙도 받아다 보고 실제 현장도 가보고 해야 제대로 된 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겠으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기사에서는 수주산업 회계처리와 관련하여 회계제도를 정비한다고 하는데 회계제도가 정수기도 아니고, 들어가는 물이 흙탕물이면 나오는 물도 흙탕물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흙탕물을 투입하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회계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쳐봐야 맑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82067101


http://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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