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신촌을 향하는 내 걸음은
수능을 치르고 19.8살이 됐을 때 가장 먼저 한 건 <응답하라 1994>를 시청하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 제대로 접한 게 신촌의 풍경이었다. 본격적으로 대학 새내기가 되어서야 알게 된 노래가 서영은의 <좋아 좋아>였다. 한 손엔 노란색 장미 세 송이를 들고, 룰루랄라 신촌을 향하며, 너에게만은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대학생을 꿈꿨나 보다.
신촌을 본격적으로 자주 드나들게 된 것은 취업 준비를 할 때쯤이었다. 언론고시생이라면 으레 겪어갈 스터디룸을 다양하게 전전했다. 스터디가 끝나고 신촌역 명물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때론 소주 한 잔도 나누면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다가 또 낙관했다. 그때 신촌의 상권은 이미 크게 죽어 있었기에 더욱 나에게 가득 아련함으로 자리 잡았다. 사라지는 가게들, 발랄한 사람 대신 읽히지 않은 전단지로만 가득한 거리를 군소 언론사에 다니면서도 ‘언제 진짜 기자가 될 수 있지’ 생각하며 걷던 우중충하고 어두운 기억. 그래서 사랑하는 나의 장소.
7월, 신촌역은 나의 강간 장소가 됐다.
어떤 기억은 잘 만든 드라마처럼 시간의 흐름이 동작 하나까지 퍼즐처럼 줄줄이 딸려온다. 흰 옷을 입고 있던 나는 그날 신촌역 투썸플레이스를 걸었다. 그곳에는 이따금 찾아가던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며 ‘겨울이면 저기를 가자고 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그늘에 잠시 앉아 땀을 닦으며 핸드폰으로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어디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일어섰다. 여기까지는 사건 진술서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한글 파일로 빼곡히 정리되어 변호사에게 넘겨졌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장소가 달라지게 되는 것. ‘나 거기 좋아해’ 대신 사건 장소가 된다는 것. 보도를 통해 마주하던 강간을 보며 강간에 대한 잘못된 상식, 가해자 중심의 사고, 그런 것을 하나 둘 배우며 비판해 왔지만 사랑했던 장소를 미워하게 되며 그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오롯이 안아야 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천주교성폭력상담센터에서 말했다. 나의 장소를 그대로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상담사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다. 센터에서 연결해 준 정신과는 우연하게도 또 신촌역에 있었다. 상담사는 그게 괜찮냐고 물었다. 세심하게 짚어 주는 부분이 감사했다. 괜찮다고 하고 그곳을 방문했다. 예상외로 마음이 차분했다. 약을 받고 거리를 걸으며 건너편을 내다봤다. 그곳의 내가 흰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회사가 신촌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 주 있던 이직 시험에 탈락했다. 나는 다시 신촌역 투썸플레이스에 서서 떡볶이 포장마차집을 바라보게 될까. 그때도 노란 세 송이 장미를 들며 룰루랄라 신촌을 향하게 될까. 흰 옷을 입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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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신촌이었지만 여의도와 시청, 광화문, 홍대입구로 회사를 다니며 다시 한눈에 들어온 장소가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다. 언젠가 함박눈이 내렸을 때, “선배 저 볼 일이 있어요”하며 그대로 걸음을 돌려 덕수궁 돌담길로 향했다. 기와 아래로 떨어진 눈이 너무 아름다워 잊히지 않았다. 서울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하는 도시 서울에 푹 안기다 보면 어느 부분에는 가시가 돋친 듯 콕콕거리며 아팠는데, 바로 그곳이 신촌역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