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왜 죽음이 되었나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기리며

by 유리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볼드모트와 주택담보대출을 뜻하는 영단어 모기지(mortgage)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죽음을 뜻하는 mort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볼드모트는 부활한 후 죽음을 먹으며 살아가는 자이지만 모기지와 죽음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어원을 조금 더 분석해 보자. 돈을 갚을 경우 채권자의 담보권이 죽고, 갚지 못할 경우 채무자의 권리가 영원히 죽는다. 여기에 약속을 뜻하는 gage가 합쳐져 모기지는 ‘죽음의 약속’ 정도로 볼 수 있다.


집을 담보 삼는 걸 죽음에 비유하다니. 아주 오래전부터 집은 목숨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을 짚어볼 수 있다.

‘홈 스윗 홈’, ‘즐거운 나의 집’과 같이 집을 영혼의 안식처로 여기는 단어는 수도 없다. 현대사회에서 집은 좀 더 다양한 줄기로 뻗었다. 특히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집이란 노후자금, 혹자는 구할 수 없는 것으로 통칭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캐릭터가 처한 환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도구는 단연 집이다. 누구는 으리으리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어느 인물은 고시원 단칸방에, 심리적 불안정을 겪고 있는 캐릭터는 방을 쓰레기장처럼 만들어 놓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집은 목숨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목숨이란 무엇인가. 운수가 좋으면 잘 가꿀 수 있는 것이지만 좋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천 미추홀구의 ‘건설왕’ 피해자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남동공단 등지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2019년 6천80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마련했다가 2021년 8월 재계약 때는 임대인의 요구로 전세금을 9천만원으로 올려줬다.

연합뉴스의 기사를 읽던 중 '인천 남동공단 등지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라는 말이 유독 아팠다. 남동공단 등지에서 10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간, 몇 년간 차곡차곡 일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도 퇴근 후 푹신한 침대에서 곤히 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을 바랐을까. 유독 눈에 들어온 기사 제목이 있었다. '집은 감옥이 되고 무덤이 됐다'. 보증금 6800만 원의 오피스텔이 몇 년 뒤 무덤이 될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감옥은 잘못한 사람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닌가. 인천 남동공단에서 일하던 청년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집이라는 감옥에 갇혔던 걸까.


언젠가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집에 있었다'라는 말 자체가 동사라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취미활동을 하지 않아도 집에 있는 것 그 자체가 행위라고. 집이란 건 그런 것이다. 나의 가장 현실인 공간. 그러면서 '예전 집보다 이런 점이 낫네' '옛날에 살던 집은 그렇지 않았는데'와 같은 생각을 꾸준히 하게 되는 나의 과거. 노후자금, 언젠가 오를 집값을 기대하게 하는 미래이기도 하다. 그런 집이 20대, 30대들에게 죽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집 때문에 현실은 악몽이 되고, 과거의 행복은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것이며, 미래는 사라져 버렸다.


피해 사례를 들은 변호사들도 환수받기는 어렵다고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라던데, 나라는 방파제가 되어 주지 못했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은 "사실상 정부가 방관한 거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지원책은 하늘에 별 따기고, 곧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 청춘들은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I가 기사도 대신 써 주는 최첨단 미래 사회에서 사회적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간 청춘들을 바라보니 ‘끔찍한 사건이네’ 하고 넘길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절망감이 느껴졌다. 역대 가장 무시무시한 악역이라는 볼드모트는 비할 데가 되지 않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소멸을 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