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고독을 마주하는 시간

by 기록하는최작가

남자에게 ‘주말부부’라는 말은, 마치 오래된 전설 속 한 줄 문장처럼 들려왔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허락되는 삶. 그만큼 남자는,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실은 쉽게 부서지는 고독의 존재다. 남자는 늘 자기만의 울타리를 꿈꾼다. 바람을 막고, 시선을 막고, 타인의 온도를 적당히 차단하는 그 울타리 안에서만 비로소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자신의 세계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며, 그것을 ‘힐링’이라 부른다.

결혼 10년 차, 나는 그 전설 같은 삶의 입구에 서게 되었다. 주말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웃으며 물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농담이었지만, 그 말은 묘하게 진심처럼 들렸다. 나 역시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퇴근 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것이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챙겨야 할 사람도, 돌아보아야 할 표정도 없이, 오롯이 나만을 위해 흘러가는 시간.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까지 불을 켜놓고 책을 읽어도 좋았고, 아무 이유 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 있어도 괜찮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조차, 하나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시간을 즐기리라, 아주 단단하게 다짐했다.


처음은, 분명 좋았다. 고요는 달콤했고, 침묵은 편안했다. 집 안에는 나의 숨소리만이 가볍게 맴돌았고, 시계 초침 소리조차 음악처럼 들렸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혼자의 자유’가 내 손 안에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간 방처럼, 낯설지만 설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삶은, 아주 작은 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긴 것은 ‘식사’였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먹는 식사는 이상하게도 반쪽짜리처럼 느껴졌다. 밥을 입에 넣고도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한번 보자”는 말로 모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웃고 떠들며 시간을 채웠다. 혼자 먹기 아쉬운 식사를 함께 나누며, 그 공백을 메워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누군가를 만나고, 매번 밖에서 사 먹으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만남은, 어느 순간부터 의무처럼 느껴졌고,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비어 있는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늘 차려져 있던 밥상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내의 시간과 손길, 그리고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동안 그것을 너무 쉽게 지나쳐왔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 그저 거기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착각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공허’였다. 그리고, 고독이 찾아왔다. 고독은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삶의 가장자리부터 스며들었다. 매일같이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채워보려 애썼지만, 곧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갔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점점 멈춰갔다. 그 모습은 마치 병실에 누워 눈만 깜빡이는 환자와도 같았다. 살아는 있지만, 살아가는 감각이 희미해진 상태다.


사람들은 말한다.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독은,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산’과도 같았다.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그 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정상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하지만 막상 발을 옮기려 하면, 이유 모를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밖으로 가는 것.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웃지 않아도 될 순간에 웃고, 반갑지 않아도 반가운 척을 했다. 그렇게 얕은 인맥을 만들며,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그것은 일종의 ‘피난’이었다. 고독이라는 이름의 산을 오르지 않고, 그 주변을 맴돌며 다른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굳이 힘들게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 산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고독과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다. 때로는 자신이 얼마나 빈약한 사람인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인지 직면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시선을 돌린다. 더 많은 사람 속으로, 더 많은 소음 속으로, 더 많은 관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진짜 자신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어쩌면 고독이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문인지도 모른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망설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을 열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당신은 고독의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견디지 못해, 얕은 관계 속으로 도망치고 있는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정작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여러분이 전자가 되기를 바란다.

고독과 마주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사람. 그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더 깊어질 수 있다. 고독을 견딘 사람만이, 진짜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라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긴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아직 그 산을 완전히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받아들이려한다. 한 걸음씩,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