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서 벗어나는 법

무관심

by 기록하는최작가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일은, 마치 별이 없는 밤하늘을 찾는 일만큼이나 드물어졌다. 빛은 사방에서 번쩍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꺼이 그 흐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눈에 닿고, 그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글 아래에 조용히 쌓여가는 숫자들이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공감의 개수, 댓글의 수, 팔로워의 증가. 그것들은 더 이상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나를 평가하는 언어였고, 보이지 않는 무게였으며, 때로는 달콤한 보상이었다.

새로운 글을 올리고 나면 기다렸다. 알림이 울리고, 누군가 나의 문장에 손을 얹고 고개를 끄덕이기를. 작은 하트 하나가 찍힐 때마다 심장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댓글이 달리면, 그 짧은 문장 하나에도 과장된 의미를 부여했다. 마치 게임 속에서 레벨이 오르는 순간처럼, 혹은 운동장에서 승리를 거머쥔 선수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쾌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짧았지만 강렬했고, 그래서 더 자주 원하게 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언제나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공감이 적게 달린 날, 댓글이 하나도 없는 날에는 세상이 조금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았고, 내가 쓴 문장들이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숫자들이 마치 나의 가치를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뒤처진 사람처럼 보였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이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맛본 그 희열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반복하는 존재다. 나는 그 짧은 쾌락을 다시 느끼기 위해, 또 한 번 글을 올리고, 또 한 번 숫자를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어느 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문장을 다듬기 전에 제목을 고민했고, 내용의 깊이보다 반응의 크기를 계산했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장을 고르고,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 표현을 덧붙였다. 마치 낚시꾼이 더 많은 물고기를 끌어들이기 위해 미끼를 갈아끼우듯이, 나는 나의 글에 점점 더 많은 ‘장치’를 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졌을까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나’였다.
글은 여전히 길어졌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얕아졌다. 문장은 화려해졌지만, 그 문장을 떠받치고 있어야 할 사유는 점점 가벼워졌다. 나는 껍데기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지만, 그 안을 채우는 일에는 점점 소홀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떤 글이 더 많은 반응을 얻는지, 어떤 표현이 더 쉽게 소비되는지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착이 시작된다.

집착은 거창한 욕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보상에서 시작된다. 한 번의 인정, 한 번의 공감, 한 번의 반응. 그것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이 된다. 그리고 그 사슬은 외부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조여진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하찮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나의 존재가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고, 그 숫자가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착각에 가까웠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재단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스스로를 숫자 위에 올려놓고, 거기서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었을 뿐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자연스럽게 배우고 만다. 무엇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 무엇이 더 쉽게 소비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지.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해간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놓치고 있었던 방법이 있었다. 바로 ‘무관심’이었다.
공감의 수에 무관심해지는 것. 댓글의 유무에 흔들리지 않는 것.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쓰고 싶은 문장에 집중하는 것. 그것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다. 마치 시끄러운 시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소리를 차단한 것처럼,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문장들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의 대화이기 전에 자신과의 대화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은 쉽게 닳아버리지만,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쓰는 글은 오래 남는다. 그것은 느리게 읽히고,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오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스며든다.

이제 조금 다른 마음으로 글을 써보자.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공감이 하나도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 글이 단 한 사람에게도 닿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닿아 있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글을 쓰는 그 시간, 문장을 고르고 생각을 다듬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온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숫자를 사랑한다. 더 많은 것, 더 빠른 것, 더 눈에 띄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그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호흡으로 문장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이다.

종종 우리는 착각한다. 의미 있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러나 진짜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숨어 있다. 누군가의 반응이 아니라, 내가 들인 노력의 시간.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흘려보낸 생각의 흐름에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숫자는, 공감의 개수도, 댓글의 수도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냈는가’에 대한 숫자다. 몇 번을 고민했고, 몇 번을 고쳐 썼으며, 몇 번을 스스로에게 질문했는지. 그 보이지 않는 횟수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진짜 기록이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쓴다. 누군가를 의식하기보다,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이 문장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조용히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