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패임

사고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by 기록하는최작가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앞선 시간이다. 몸이 먼저 깨어났는지, 마음이 먼저 깨어났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제 잠을 많이 잔 것도 아니건만, 기분이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잠자리에서 뒹굴며 느끼는 개운함은 몸에서 올라오는 작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몇 날 며칠, 음식이 목에 걸린 것처럼 괴롭혔던 편도염 증상은 이미 사라졌고, 그 덕분인지 잠의 질이 조금 높아진 모양이다. 몸이, 마음이, 서로를 보듬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알람인가 싶어 봤더니, 낯선 번호였다. 아직 아침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오는 전화라니, 뭔가 예사롭지 않다. 스팸일까, 혹은 단지 중요한 연락일까. 마음속에서 무수한 가능성이 교차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000차주분이신가요?”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다급함이 느껴진다. 얼마나 급하면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속으로 짐작하면서도, 아파트 단지 특성상 이중주차가 잦으니 차량을 옮겨 달라는 부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이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제가… 차를 박았습니다.”
한 번 더 들었지만, 역시 분명한 사고라는 말이었다. 새 차를 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사고라니.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물었다. 되돌아오는 음성은 떨리는 사과였다. 죄송하다는 말이, 숨결 속에 간신히 담겨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속삭였다. 사실,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예상과 달랐다. 속상하고 가슴 아픈 것이 당연한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다. 단지 상황을 받아들이고, 미안해하는 상대를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만 선명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발걸음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계단을 내려서며, 사고 차량과의 마주침을 상상했다. 1층에 도착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상대방의 눈빛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가 가리키는 차량의 사고 부위를 바라보았다. 손가락 두세 개가 들어갈 정도의 패임. 분명 아픈 상처였지만, 내 마음은 놀라거나 격앙되지 않았다. 그저 ‘차가 사고 났구나’라는 정도의 단순한 관찰만 남았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보험처리만 해주시면 됩니다.”
내 말은 간결했고, 담담했다. 상대방은 안도와 죄책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그를 돌려보냈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 스스로가 조금 대견했다. 가슴이 아프지 않은 나 자신이, 이상할 만큼 안정적이었다.

차량이라는 존재에 대한 내 인식이 변했음을 깨달았다. 과거에는 보물 1호였던 차가, 이제는 이동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금속과 페인트, 휠과 유리, 그 모든 것이 결국 한낱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내 마음에 부여된 의미가 더 이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때는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 보면 한낱 점 하나에 불과하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후회, 그 모든 감정이 잠시 스쳐가는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차량도, 내 인생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는 잠시 스치는 조각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커튼을 걷었다. 새벽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햇살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그 속에 냉정한 시간의 흐름이 섞여 있었다. 사고 차량을 바라보며 느낀 무심함과, 내 안에서 솟아오른 차분한 자기확신이 뒤섞였다.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이 의미 없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는 이름의 작은 깨달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가로등이 마지막 빛을 흘리고 있었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상쾌하다. 먼 산의 실루엣은 아직 어둠 속에 가려 있지만, 곧 빛이 닿을 것임을 안다. 오늘의 사고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내 마음은 그 점을 확대하지 않는다. 시간은 고요히 흐르고, 나는 그 위를 유영한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인간은 종종 중요한 것이라 믿는 것들에 집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집착은 허망하게 느껴진다. 부와 명예, 사랑과 증오, 심지어 삶과 죽음까지도. 그것들은 모두 순간의 흔적일 뿐, 전체 인생의 파노라마 속에서는 점 하나의 색채에 불과하다. 내 차의 패임 하나, 내가 느낀 무심함 하나, 그 속에 담긴 깨달음 하나. 이 모든 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내 존재의 일부가 된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내렸다. 물 끓는 소리, 향기, 손끝에 전해지는 잔열. 사고와 관련된 생각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나는 그저 현재의 감각 속에 존재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처음의 나와, 사고를 경험한 지금의 나는 다르다. 감정이란, 때로는 외부 사건보다 내 안의 관점이 더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량 사고로 시작된 하루. 그러나 마음속에는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함과 관조가 남았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내 마음을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거울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그저 바라볼 수도 있다. 오늘, 나는 바라보는 쪽을 선택했다.
손끝으로 커피 잔을 감싸며, 나는 그 사실에 감사했다. 감사하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진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순간이며, 순간 속에서 느끼는 감각과 사유가 진짜 내 것이다. 차량의 패임은 이미 하루의 기억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 작은 패임조차, 나에게 삶의 깨달음을 준 존재가 되었다.

인생의 소중함은 거창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순간의 태도다. 나는 오늘 사고 차량 앞에서, 무심함 속에 담긴 인간의 성숙을 맛보았다. 미안해하는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 스스로의 감정을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게 지켜보는 것, 그리고 모든 사건을 점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과거에는 차 하나, 사건 하나에도 마음을 사로잡혔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순간이며, 순간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사고 난 차량은 그저 지나가는 구름, 내 마음은 맑게 갠 하늘처럼 잔잔하다.

다시 한 번 커피를 홀짝인다. 순간의 온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삶은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무심히 스쳐가는 것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오늘, 나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차량의 패임은 더 이상 아픈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그리고 인생의 점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