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르는 아침의 문턱

입지 못한 시간들이 걸린 곳

by 기록하는최작가

출근길 아침, 나는 옷장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는다. 망설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끝난다. 전투복이라는 정해진 옷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어떻게 보일지, 어떤 인상을 남길지에 대한 사소한 불안들이 그 옷을 입는 순간, 자연스럽게 내려앉는다. 마치 이미 정해진 문장을 읽듯, 나는 그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한다. 선택이 줄어든 자리에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평온이 깃든다. 사람은 때때로 자유보다 단순함 속에서 더 깊은 안정을 느낀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흔들리던 마음이, 선택할 것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비로소 잔잔해진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나뿐 아니라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각자의 이름과 사연,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사람들이지만, 전투복이라는 하나의 언어 안에서 우리는 빠르게 닮아간다. 어깨에 얹힌 계급과 이름표를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같은 형상으로 서 있다. 그 안에서 개인의 색은 흐릿해지고, 대신 ‘함께’라는 감각이 또렷해진다. 다름은 사라지기보다는 잠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묘한 안정감이다. 누구도 튀지 않고, 누구도 과하게 드러나지 않는 상태. 단조로움이 주는 평온, 반복이 만들어내는 질서.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받아들인다.


어쩌면 전투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속해 있다는,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조용한 합의. 그 약속 속에서 사람은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낸다. 설명이 줄어든 자리에는 오히려 더 깊은 신뢰가 스며든다. 옷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그 감각은, 생각해보면 꽤 낯설고도 따뜻한 일이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그 질서는 사라진다. 더 이상 정해진 옷이 없는 날, 나는 다시 옷장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앞에서, 뜻밖의 낯섦을 느낀다. 분명히 많은 옷들이 걸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입고 싶은 옷은 없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들인데, 마음은 쉽게 닿지 않는다. 옷장 안에는 셔츠와 바지, 계절을 지나온 여러 옷들이 나란히 걸려 있지만, 그것들은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의 조각처럼 보인다.


무심히 입던 셔츠가 있다. 한때는 자주 손이 갔던 바지도 있다. 이유 없이 좋아했던 옷들,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었던 옷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옷들 앞에서 머뭇거린다. 어쩌면 옷장은 단순한 보관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쌓인 작은 미로인지도 모른다. ‘다음에 입어야지’ 하고 미뤄둔 옷들, ‘언젠가’라는 말 속에 묻어둔 선택들이 그 안에 겹겹이 쌓여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남겨두지만, 정작 그 미래는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 버린다.


옷장이라는 미로 속을 천천히 걷는다. 손끝으로 옷을 스치며,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이 옷을 입던 날의 기분, 그때의 공기, 그날의 표정.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지나간 시간에 속해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고, 그 옷은 더 이상 지금의 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입지 않는 옷은 사실, 입지 않기로 이미 마음을 정한 옷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조용히 쌓여, 우리의 취향과 태도를 만든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되었다. 내 옷장은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부터 검은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선택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졌고, 검은색은 어디에나 무난하게 어울린다는 이유로 손이 자주 갔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점점 더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그렇게 쌓인 검은색들은 어느새 나의 기본값이 되었다.


검은색은 안전하다. 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어느 자리에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전함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의식한 결과일 수도 있다. 무난함을 선택한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작은 자기 검열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섞여 있다. 이 선택은 정말 나의 취향일까,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일까. 검은색을 입는 것이 편해서일까, 아니면 무난하게 보이고 싶어서일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조금은 쓴웃음을 짓는다. 우리는 때때로 아주 사소한 것 속에서조차, 자신을 숨기거나 드러내는 선택을 반복한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가장 예민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옷을 입는지도 모른다.


옷장은 그래서 거울과 닮아 있다. 단순히 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비춘다. 어떤 날은 단정하게 정리된 옷들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어떤 날은 그 많은 옷들 사이에서 오히려 공허함을 느낀다. 단정함과 절제는 분명 하나의 태도다. 그러나 그 태도마저도, 때로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옷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옷을 입느냐는, 분명 나를 조금씩 드러낸다. 무엇을 입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는가. 그것이 더 오래 남는 기억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검은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한다. 반복되는 선택, 익숙한 감각. 그 속에서 나는 묻는다. 나를 보호하는 것은 이 옷일까, 아니면 이 옷을 입으며 얻는 마음의 안정일까. 단순함이 주는 평온일까, 아니면 반복 속에서 길들여진 감정일까.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옷장 앞에 선다. 그리고 또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 앞에서 나는 늘 조금씩 나를 마주한다. 입고 싶은 옷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 옷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아닐까.


검은색 옷으로 채워진 하루와, 색을 고민하는 주말 사이에서, 조금씩 깨닫는다. 삶은 거창한 선택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반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소함 속에, 나의 태도와 방향이 스며든다는 것을. 오늘 나는 어떤 마음을 입을 것인가. 안전한 색으로 하루를 덮을 것인가, 아니면 아직 꺼내지 않은 선택 속에서 낯선 나를 만나볼 것인가. 옷은 결국 몸을 감싸는 천일 뿐이지만, 마음은 하루를 감싸는 공기다.


옷장 앞에 서 있는 이 짧은 시간이,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나를 만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선택을 미루며 서성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하루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아마도 나는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잠시 멈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옷을 고르며, 나를 고를 것이다. 그 작은 망설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나를 찾아가는 중일 테니까.


오늘도, 옷장을 닫으며 생각한다.

아직 입지 않은 하루가, 그 안에 조용히 걸려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