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사람들

짧지만 오래 남았다

by 기록하는최작가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이었다. 가지마다 터질 듯 피어난 꽃잎들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고, 그 흩날림조차 하나의 풍경이 되는 계절.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섰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철 피었다가 사라지는 그 짧은 아름다움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었다.

지역에서 준비한 벚꽃 축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입구부터 분주한 기운이 느껴졌다. 안내요원들이 동선을 정리하고, 경호업체 직원들은 인파를 조심스럽게 통제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내는 가벼운 발소리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소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진동 같았다.


노점마다 다양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 위로 봄날의 공기가 얇게 내려앉았다. 달콤한 냄새와 짭조름한 냄새가 뒤섞이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 모든 풍경은 분명히 즐겁고 활기찼지만, 동시에 어딘가 치열한 자리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그 안에서 자리를 찾는 일조차 하나의 작은 전쟁처럼 느껴졌다.


의자는 준비되어 있었지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이미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감을 찾는 짐승처럼, 시선은 끊임없이 빈자리를 탐색했다. 앞쪽으로 몇 걸음, 다시 뒤쪽으로 몇 걸음. 아이의 손을 잡고, 아내의 눈빛을 확인하며, 우리는 그 좁은 틈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 과정이 묘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살아가며 늘 해오던 방식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찾는 일, 틈을 발견하는 일, 그 작은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일. 결국 우리는 네 식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냈다. 크지도,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그날의 우리에게는 충분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는 순간, 비로소 축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무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이들의 웃음, 반려견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설렘, 노래자랑에 참가한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 까지. 그 모든 장면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내고,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는 그 소박한 무대 위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대 위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네 명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의 복장은 단정한 턱시도였다.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한 옷차림, 무대 위에 서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 누구라도 그들을 보며 한 가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성악가다. 아마도 곧, 깊고 묵직한 목소리가 무대를 채울 것이라 생각했다.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은 조용히 무너졌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성악가’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웅장한 첫 음이 울려 퍼질 것이라는 기대 대신, 그들은 자신들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가사를 위트 있게 바꾸고, 표정을 과장하며, 몸짓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때로는 일부러 어색하게, 때로는 뻔뻔할 정도로 유쾌하게 연출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훌륭했다. 단단한 발성, 흔들림 없는 음정, 그 모든 기본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완벽함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에 균열을 내듯, 자신들을 망가뜨렸다. 그 균열 사이로 웃음이 흘러나왔고, 그 웃음은 곧 무대 전체를 채웠다.


사람들은 웃었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 앞에서, 마음을 내려놓은 채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같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편이 된 듯했다. 그들의 무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하나의 작은 이야기였고, 하나의 장면이었으며, 어쩌면 짧은 인생의 축약 같았다. 진지함과 유쾌함이 뒤섞이고, 완벽함과 허술함이 공존하는 자리. 그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느꼈다. 무대가 끝났을 때, 박수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그 웃음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무대를 내려간 뒤에도, 그 장면은 한동안 마음속에 머물렀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쉽게 스쳐 지나간다. 예상 가능한 것들, 이미 알고 있는 방식, 익숙한 흐름. 그것들은 편안하지만,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시선을 멈춘다. 그날의 성악가들이 만약 단정한 자세로, 완벽한 발성만을 보여주고 내려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박수는 금세 잊혔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잘하는 사람들’로 남았을 뿐, ‘기억되는 사람들’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을지. 그 고민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들의 웃음 뒤에는, 분명히 고요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무대를 보며, 나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있는 행동들. 그것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어서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종종 ‘당연함’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들을 넘겨버린다. 늘 하던 방식, 늘 가던 길, 늘 쓰던 말. 그것들은 생각을 덜어주고, 에너지를 아껴준다. 그러나 그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변화는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다. ‘이게 정말 최선일까.’라는 질문 하나. 그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방향을 상상하게 된다. 그날의 무대처럼,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어색하더라도,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삶을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벚꽃은 결국 떨어진다.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나도, 그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매년 그 꽃을 기다린다. 왜일까. 아마도 그 짧은 순간 속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의 무대도 그랬다.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흩날리는 꽃잎 하나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손으로 털어내려다, 잠시 그대로 두었다. 그 가벼운 무게를 느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삶은,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해내느냐보다 얼마나 다르게 시도해보았느냐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다름은 언제나, 누군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아주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