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발견했을 때 비로소 진짜 의미를 갖는다
명령에 무릎 꿇는 태도만으로는 더 이상 어떤 미래도 이룰 수 없다. 억지로 움직이는 몸에는 생기가 없고, 두려움 속에서 내딛는 발걸음에는 방향이 없다. 과거에는 복종이 효율이었고, 묻지 않는 충성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고, 생각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
기계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주어진 지시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고, 멈추고, 다시 반복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단순한 반항이나 불복종이 아니다. ‘왜’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표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고, 본질을 향해 걸어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진짜 일이 시작된다.
어떤 일을 대할 때, 그저 “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임하는 것과,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한 뒤에 임하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같은 일도 목적을 이해하고 나면 집중력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다르며, 결과물의 깊이까지 달라진다. 이유를 알고 하는 일에는 생명이 깃든다.
이해에서 비롯된 행동은 언제나 자발적이다. 자발성은 강요보다 오래가고, 더 깊고 넓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에서 창의가 피어나고, 진짜 효율이 생긴다. 일에 대한 주인의식은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다. 그것은 일이 나를 통과해 세상과 연결된다는 감각, 그리고 그 일에 나의 생각과 의지가 담긴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더 이상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일에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는다. 질문 없는 일에는 발전도 없고, 설득 없는 노력에는 지속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납득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이해와 확신을 바탕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일이다. 명령이 아닌 이해, 복종이 아닌 자발성, 지시가 아닌 공감.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일하는 방식이고,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