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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Mar 31. 2024

8. 여행1 : Manhattan, NYC, NY

August 2021

(커버이미지 :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유람선을 타고 가서 섬에 내리면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단상 아래에 관람을 위해 줄을 지어 서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여행을 시작하다. Manhattan, NYC


뉴욕주(NYS, 왼쪽)와 뉴욕시티(NYC, 오른쪽). NYC는 다섯 개의 보로(Borough)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이라는 이름은 미국 50개 주 중 하나인 뉴욕 주(New York State, NY 혹은 NYS라고 표기)와 그 안에 있는 세계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이 되는 거대도시, 뉴욕시티(New York City)를 동시에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뉴욕"이라고 하면 대부분 뉴욕시티(NYC)를 떠올리게 된다. (심지어 미국인들도 그렇다.)

그래서 뉴욕 주(NYS)에 사는 사람들은 뉴욕시티를 그냥 "뉴욕"이라 부르지 않고 꼭 NYC라고 구분하고 이와는 반대로 뉴욕시티의 북쪽 뉴욕 주 나머지 모든 지역을 업스테이트 (Upstate New York)라고 부른다. (NYS = Upstate NY + NYC + Long Island)

뉴욕시티는 5개의 보로(Borough)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 뉴욕시티의 진정한 중심인 맨해튼(Manhattan)으로 여름휴가를 보내러 간다.

맨해튼은 역사적으로 뉴욕시티가 시작된 곳(17세기 초 네덜란드 식민지로 시작)이고, 모두가 생각하는 뉴욕시티의 이미지는 맨해튼의 모습으로, 뉴욕시티 안에서도 진짜 중심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편을 보낼 때 "New York, New York"이라고 뉴욕을 두 번 적으면 뉴욕시티 안에서도 오로지 맨해튼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선, 우리는 세은이가 적어 준 여행 희망지중 맨해튼에 있는 곳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정을 짰다.

센트럴 파크 남쪽 위주로, 숙박은 미드타운(Midtown)에 하고,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 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로워 맨해튼(Lower Manhattan)에 있는 911 추모공원과 자유의 여신상 등을 넣으면 2박 3일 동안 보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숙소를 너무 저렴한 곳으로 하면 오며 가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숙박비가 조금  들더라도 중심지에 있는 유명 호텔로 가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뉴욕시티 같은 대도시는 호텔을 예약해도 주차는 별도의 비용을 내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조차 비용을 아껴보려고 호텔에서 멀지 않은 사설 주차장에 하루 $45, 3일 치 예약을 했다.

마지막으로 출발하기 전날 저녁엔, 우리가 갈 여행지에 대한 간단한 ppt 자료를 만들어서 아내와 세은이에게 여행 일정과 장소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작은 캐리어 한 개에 짐을 꾸리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첫날 : 타임스 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집에서 맨해튼까지는 고속도로(I-87)를 남쪽으로 따라가면 3시간 거리다. 주재원 선배들은, 이 정도 거리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짧은 거리라고들 했다. 자고 오는 곳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미국 생활 초보인 데다 여행도 처음이니까, 가까운(?) 곳인 뉴욕시티에서 자고 오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멀리 가면 되겠지.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에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한참 달린다. 세은이를 마중하기 위해 갔던 길이지만 아직은 그렇게 익숙한 길은 아니다.

고속도로는 도심 지역 외에는 대부분 2차선 도로로 되어있고 중앙분리대는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차선 서너 개 정도 폭의 빈 땅인 중앙분리영역(Median Strip)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중앙분리영역 일정 간격으로 경찰차나 구급차가 유턴을 할 수 있도록 진출입로를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운전하면서 아주 가끔 경찰차가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특히 나무 밑에 숨어서) 양쪽으로 지나는 차를 쳐다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과속이라도 하면 바로 쫓아올 것 같다.

그래서 긴급차량 유턴 안내 표지판은 마치 경찰 주의 표지판처럼 느껴진다. 미국까지 와서 경찰관이랑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조심해야겠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Service Area)를 잠시 들렀는데, 이곳 휴게소는 한국과는 아주 딴판으로 아주 간단한 요기정도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맥도널드, 피자 매장, 편의점 정도가 휴게소에 있는 매장의 전부이고 우리는 간단히 햄버거 하나씩 먹고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 보면 뉴저지 릿지필드(Ridgefield, NJ) 한인타운 주변을 지나게 되고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게 되면 뉴욕시티 맨해튼이다.

맨해튼 시내는 대부분의 길이 바둑판 형태로 되어있고 일방통행 위주라서 운전하기에 상당히 어색하다.

도로 구조의 어색함 때문에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예약 시간에 늦지 않게 맨해튼 숙소 근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 건물은 운전자가 아무 때나 자유롭게 차를 넣고 빼는 게 아니고, 관리인에게 차를 맡겨서 주차를 하고 이용 시간이 다 되면 다시 와서 관리인이 차를 빼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일단 출차를 하게 되면 예약 시간이 남아있어도 다시 주차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차는 2박 3일 내내 주차장에 넣어두고 도보 및 지하철로만 다니려고 한다.


타임스 스퀘어 (Times Square)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서는, 호텔방에서 우리 모두 무사함을 기원하며 끌어안고 다 같이 박수를 쳤다.

드디어 미국 여행의 시작, 우리 가족 역사상 최초 뉴욕시티 거리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타임스 스퀘어로 간다. 타임스 스퀘어는 남북 방향 7번가와 대각 방향 길인 브로드웨이(Broad Way)가 만나는 곳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크지 않은 광장이다.

언론사 뉴욕 타임스의 본사가 있었다고 해서 타임스 스퀘어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이전하여 지금은 없음.)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맨해튼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건물이 밀집되어 즐비하고 그중엔 100년 이상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도 굉장히 많았다.

걸어가는 길 옆에는 각종 기념품 점과 유명한 상점들이 즐비하고 광장에 가까이 갈수록 연극 혹은 뮤지컬 공연을 하는 극장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어느새 타임스 스퀘어에 도착해 보니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고, 사방을 둘러싼 고층 건물들과 그 건물을 다 뒤덮고 있는 엄청 큰 광고 간판 등이 우리가 영화나 인터넷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있었다.

알려진 대로 삼성, 엘지 같은 한국 기업 간판도 있었고 우리나라 캐릭터 샵인 "라인 프렌즈"의 매장도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광장의 중앙에는, 브로드웨이에 공연거리를 조성한 조지 코핸(George M. Cohan)의 동상, 그 뒤로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많은 미국인을 구한 프랜시스 더피(Francis P. Duffy)의 동상, 제일 뒤엔 사람들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계단형 좌석이 있었다.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춤을 추면서 광장 중앙 안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공연이 시작되는 건가 하며 어리둥절해하며 서있는데 내 옆 사람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뭐 하는 건지 아세요?"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내가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앞으로 뛰어나가더니 춤추는 사람들 속으로 합류해서는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우와, 배우들이 사람들 사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광장은 순식간에 공연장이 되어서 10여 분간 춤과 노래가 가득한 곳이 되었고, 노래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한동안 서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우리는 세은이의 여행 위시 리스트 중 하나였던 디즈니 랜드 대신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디즈니 스토어에 들러 구경도 하고 미국에 있는 동안 꼭 디즈니 랜드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실 세은이가 가기 싫다고 했어도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지. 엄마 아빠도 가고 싶단다.

타임스 스퀘어를 나와서 스테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Wolfgang Steak House)에서 늦은 점심 식사도 아주 만족스럽게 했다. 가정에서는 만들 수 없는 맛이다. 사서 먹는 이유가 있다.


(왼쪽) 타임스 스퀘어의 프랜시스 더피의 동상과 거리 공연하는 사람들. (오른쪽)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안에 있는 킹콩 포토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뉴욕시티 여행을 오후부터 시작한 탓에, 첫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여행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이 102층짜리 건물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1930년대에 지어져서 그 이후 약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여전히 뉴욕의 스카이 라인을 장식하며 수많은 영화에도 등장해 왔다.

워낙 높고 유명한 건물이어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당연히 한 번에 찍히지가 않는다. 그래도 세은이를 넣고 찍는다. 우리는 이것도 재밌다고 깔깔댄다.


나는 86층 전망대를 미리 예약했는데 시간대가 저녁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BTS와 같은 유명인의 사진과 사인도 잔뜩 걸려있다.

전망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엔 건물의 역사와 건축 과정을 보여 주는 전시 공간이 있고 당시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동상이 여기저기 설치 되어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포스터 전시 공간도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킹콩(King Kong, 1933)"이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미녀를 납치한 채 올라가서 비행기와 싸우던 장면은 너무 유명해서 옛날 흑백영화지만 요즘 아이들도 그 장면을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 같다.

킹콩과 재밌는 사진도 찍고 나머지 전시 코너도 모두 보고 나서 3층에서 86층 전망대로 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올라가는 몇 분의 짧은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의 사방에 설치된 화면에서는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착공 단계부터 빠르게 보여주는 데 마지막에 완공된 사진이 나타나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멋진 연출로 전망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86층 전망대는 건물 제일 꼭대기인 안테나 타워 보다 15층 정도 아래에 있고 우리는 건물 외부로 나가서 산책도 하고 뉴욕시티 풍경을 망원경(무료, 아마 입장료에 포함이겠지)으로 보기도 했다.

우리가 앞으로 꼭 가 봐야 할 곳인 자유의 여신상, 록커펠러 빌딩, 센트럴 파크, 브루클린 다리 등등 뉴욕시티의 명소들을 열심히 찾아서 세은이에게 알려주었다.

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뉴욕시티의 풍경을 실컷 보고 기념품을 몇 개 사서 내려온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인타운 입구에 있는 "BCD 북창동 순두부"는 미국에서 성공해서 거꾸로 서울 마포에 "지점"을 낸 독특한 이력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처럼 한식을 든든하게 먹고, 마치 강남 뒷골목 같은 느낌의 한인타운 거리를 구경하는 것으로 성공적인 뉴욕시티 첫날 일정을 마쳤다.


둘째 날 : 뉴욕 지하철, 911 추모공원, 월스트리트, 자유의 여신상


둘째 날은 맨해튼의 남쪽 지역인 금융지구와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일정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뉴욕시티의 지하철(1904)은 서울(1974) 보다 무려 70년이나 앞섰기 때문에 엄청난 역사가 있는 곳이지만, 현재 기준으로 보면 서울보다 불편하고 쾌적하지 못하게 느껴진다.

한번 타는 요금도 $3.25로 비싼 편인데, 자판기에서 산 마그네틱 타입의 얇은 메트로 카드를 개찰기 위에 있는 홈에 수직으로 세워서 한번 긁으면 입구가 열린다. 옛날 스타일이다.

요즘 사람인 아내와 세은이는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카드를 긁고 나서 서둘러 들어가려다 입구가 열리지 않은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긁는 것이 완료되기 전에 개찰구로 몸이 들어서면 입구가 열리지 않음)

실제 역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카드를 긁을 때마다 개찰구에서 요금이 지불되기 때문에, 실수로 입구가 열리지 않게 되면 또 카드를 긁어야 하고 요금을 또 지불하게 되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역무원이 만약 옆에 있었다면 그냥 열어달라고 말해볼 수는 있었겠지만...)

그리고 많이 알려진 것처럼, 역 안엔 쥐 및 악취 같은 청결 문제, 좁은 승강장에 추락 방지 시설이 없는 안전 문제, 열차나 역사의 낙후된 모습, 와이파이는커녕 전화가 안되기도 하는 등이 서울 지하철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뉴욕 지하철은 이미 100년이 넘은 오래된 시설이니 개선 작업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의 신문물(?)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뉴욕 지하철에 쉽게 실망할 수 도 있겠다. 실제로 미국 오기 전에 그런 글도 많이 봤다.

하지만 모든 것엔 다 이유가 있고 단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짧은 경험만으로 "한국보다 별로네" 혹은 "미국 애들은 이해가 안됨"라는 등 쉽게 비교하고 쉽게 결론내서는 절대 새로운 걸 배울 수 없다.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우선 받아들인 뒤,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공부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나중에라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자가 아니고 이민자니까.

아마도, 뉴욕시티 사람들도 당연히 내가 느낀 불편함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현재 사정에 맞게 해결 방안을 찾아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동시에 세은이와 아내가 무사히 타고 내릴 수 있게 내가 신경 써야 했다. 일단 당장은 사고가 생기면 안 되니...


911 추모공원


지하철에서 내려서 조금 걷고 911 추모공원(911 Memorial)에 도착했다. 911은 전 세계에 아주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2001년 9월 11일에 무장단체 알카에다(Al Qaeda)가 납치한 민간 항공기 중 2대를, 그 당시 뉴욕시티를 대표하는 쌍둥이 건물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World Trade Center) 두 동에 각각 충돌하게 한 테러를 저질렀다.

충돌 후 두 건물 모두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약 3,0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에서 뉴스로 들었지만 나 역시도 그 충격이 잊히지가 않는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뉴스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잔해와 실종자들을 수습하고 나서, 건물이 있던 자리엔 새로운 건물을 짓지 않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911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쌍둥이 건물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 각각에, 같은 면적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인공 폭포(North & South Pool)가 있고 그 둘레를 따라서 덮은 철판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폭포의 바닥이 아래로 뚫려 있어서 물이 채워지지 않게 디자인했는데,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큰 물소리가 마치 희생자 가족들이 그동안 흘렸을 눈물처럼 느껴져서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세은이도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이곳에서는 유달리 얌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누군가의 이름 옆엔 꽃이 꽂혀있고 여전히 실종자를 찾고 있는 전단지도 있다.

바로 옆에는 그 후에 다시 지은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인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오래전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진) 911 추모공원 북쪽 타워 풀에서 찍은 사진. 누군가가 희생자의 이름 위에 하얀 장미를 꽂아놓았다.
(왼쪽) 돌진하는 황소상. 황소의 뒤쪽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오른쪽) 뉴욕 증권거래소를 올려다보고 있는 겁 없는 소녀상과 세은이


월스트리트 : 돌진하는 황소상과 겁 없는 소녀상


우리는 911 추모공원에서 나와 남쪽에 있는 월 스트리트(Wall street) 쪽으로 걸어갔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월 스트리트 등이 있는 맨해튼 제일 남쪽 지역을 특별히 금융지구(Financial District)라고 부르는데, 모두가 다 알다시피 이곳에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회사와 기관들이 몰려 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시작한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맨해튼 남쪽 지역(New Amsterdam)에 정착하면서 원주민과 다른 이주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았었다.

그 당시 성벽을 따라서 길이 생겼었는데, 성벽이 없어지고, 그러고 나서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 "성벽 길"을 월 스트리트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맨해튼 남쪽은 유럽과 연결되는 대서양, 아메리카 대륙으로 통하는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무역과 금융 활동이 이뤄지게 되어 월 스트리트는 자연스럽게 금융 사업이 번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금융지구에서 우선 찾아간 곳은 세은이의 위시 리스트에 있는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다.

증권 시장 표현 중에 Bull market (황소가 뿔로 "올려"치는 것에서 유래. 호황, 상승장)과 Bear market (곰이 앞발로 "내려"치는 것에서 유래. 불황, 하락장)이 있는데, 이 황소상은 미국 증권시장이 큰 불황(Black Monday 1987)을 겪고 난 직후 다시 호황을 맞이하기를 기원하며 제작된 것이다.

황소상은 작은 공원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동상의 앞과 뒤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간단하게 사진을 찍고 이 황소상과 연결된 다음 이야기를 찾아서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이동했다.

증권거래소 앞엔 작은 동상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이 동상을 찾아왔다. "겁 없는 소녀 (Fearless Girl)"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것인데, 남성 우월적인 금융 현장에서 여성 권리 신장 캠페인을 위해 2017년에 1년간 임시로 설치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동상의 원래 위치는 황소상의 바로 앞이었다. 그러니까 소녀가 돌진하는 황소를 가로막는 모습으로 제작된 것이고 제작 의도에 정확히 부합하는 위치와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황소상의 작가는 이런 구도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소녀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캠페인 기간이 끝나고도 계속 설치되기를 바랐는데, 여러 이유로 원래 자리에는 있을 수 없었고 그나마 그 의도를 살릴 수 있는 증권거래소 길 건너편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소녀상은 턱을 세우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서 마치 증권거래소에 도전하는 듯한 모습으로 있는데, 우리도 옆에 서서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세은이가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앞으로 자신의 세상을 헤쳐가기를 바랐다.


자유의 여신상


증권거래소 앞 길을 따라 남쪽으로 끝까지 걸어가면 맨해튼 섬의 끝이 보이고 바다와 맞닿은 곳에, 17세기 포병대가 주둔해 있었던 배터리 공원(Battery Park, 포대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참고 : 벤자민 프랭클린이 전기 실험에서 축전지를 정렬된 포대처럼 배치하여 "축전지 포대"라고 명명하게 된 것에서 현재의 전기 배터리 어원이 있다.)

이 공원엔 맨해튼 앞바다의 여러 섬들과 뉴욕시티의 5개 보로 중 하나인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로 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는데,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있는 리버티 섬(Liberty Island)으로 가는 배를 타러 왔다.

리버티 섬은 배터리 공원에서 맨눈으로도 보이는 가까운 섬이라서 배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배를 미리 예약할 때 입장 옵션도 정하게 되어있는데, 자유의 여신상 내부(발밑 단상 또는 왕관 전망대) 입장 예약도 옵션에 있었지만 코비드 때문에 제약 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신상 밖에서만 구경하기로 했다.

마치 공항 같은 삼엄한 검색대를 지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오래전 입국 심사장으로 쓰였던 엘리스 섬(Ellis Island)을 지나서 얼마 안 지나 리버티섬에 도착하게 된다.

배에서 내리면 자유의 여신상 뒤편으로 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는 더위를 피할 겸 일단 여기부터 들어갔다.

박물관엔 거대한 동상이 왜 여기에 있는지, 그 당시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영국과의 관계, 꿈을 찾아온 이민자들의 삶 등 다양한 정보를 전시하고 있어서 꽤나 공부가 되었다.


애초에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모금하여 10년에 걸쳐 프랑스 현지에서 제작(F. Bartholdi와 G. Eiffel, 1876) 되었다고 한다.

완성 이후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배에 실어 뉴욕으로 보내진 뒤 리버티섬에서 재 조립되어 세워진 것이 바로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다.

한편 동상을 세울 받침대(47m. 15층 아파트 높이)는 미국 시민들이 모금하여 만들었는데, 프랑스의 동상 제작비용 25만 달러, 미국의 받침대 비용 27만 달러로 서로 비슷한 지출이었다 하니 두 나라의 우애의 상징이 맞는 것도 같다.

건설 이후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수많은 이민자들을 반겨주는 뉴욕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현재에 와서는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동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물관엔 자유의 여신상의 제작 과정 및 역사뿐만 아니라 동상을 만들 때 썼던 구리가 산화하여 붉은색에서 현재의 푸른색이 되었다는 이야기, 미국인들이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 센강에 작은 크기의 여신상을 다시 선물해 준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을 보고 나와서, 섬 주변을 따라 걸으면서 공원 산책하듯 자유의 여신상을 둘러보았다.

작은 섬이라 금세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는데 바다 건너 보이는 맨해튼 풍경은 꽤나 멋있었다.

뉴욕시티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전, 선착장 기념품 상점에서 세은이는 오리너구리 인형을 샀다.

여신상과 똑같은 왕관을 쓴 이 인형을 세은이는 "덕이 (Duckie)"라고 이름 지었는데, 도대체 이 섬과 오리너구리가 무슨 상관이람? 어린이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다.

게다가 오리너구리는 Platypus여서 Duck과는 상관없는데... 아무튼 덕이를 새 식구로 입양한 세은이였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배터리 공원으로 돌아와서 때마침 하고 있던 거리 공연을 구경하다가, 한인타운을 또다시 돌아와서 뉴욕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둘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왼쪽) 리버티섬 선착장에서 본 자유의 여신상. (가운데) 리버티섬 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박물관. (오른쪽) 세은이의 첫 인형 "덕이"


셋째 날 : 메이시스 백화점 그리고 Hurricane Henry


오늘은 뉴욕시티 여행의 마지막 날. 큰 일정 없이 소소한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날이지만 바깥 날씨 상황은 큰일 없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 한밤중에 자다가 허리케인이 뉴욕시티로 오고 있으니 침수에 주의하라는 긴급문자를 받았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비가 상당히 많이 오고 있었다.

주차장의 차가 가장 걱정되었는데 밖에 아주 못 다닐 만큼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차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메이시스 백화점 본점 (Macy's @Herald Square)


미국 전역에 있는 큰 백화점 브랜드의 본점이기 때문에 오래된 곳이지만 고급스러운 곳이라는 점이라 구경하고 싶어 했던 아내의 바람이 있었다.

그라고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다는 점이, 든든한 힌식의 유혹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했다.

사실 우리는 뉴욕시티에 있는 3일 내내 한인타운에 갔는데, 미국으로 이사 온 후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많이 그리워했던 것 같다.

아침에 한인타운 먼저 들러서 설렁탕 한 그릇씩 든든히 먹고 메이시스 본점으로 향했다.


이번 뉴욕시티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미국 전역에 있는 유명 백화점 브랜드인 메이시스(Macy's)의 본점을 가 보기로 했다.

이 매장은 지어진지 120년이나 되었고 미국에서 제일 크고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큰 백화점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은 우리나라 부산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다.)

메이시스의 플래그쉽 매장이어서 구경하기에 눈치 주거나 하지는 않으려나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명품 브랜드부터 저렴한 브랜드까지 다 있고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가서 쇼핑할 수 있었다.

각 매장마다 떨이 판매를 말하는 "Clearance"도 있고 이월상품을 따로 모아서 파는 "Macy's Backstage"도 있어서 이런 물건들을 찾아다니며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쇼핑 외에도 메이시스 본점에서 찾아볼 만한 게 있었는데, 하나는 100년이 넘은 나무 에스컬레이터였고 또 하나는 영화 빅(Big, 1988)에서 나왔던 발로 밟아서 연주하는 초대형 피아노 건반이다.

메이시스의 나무 에스컬레이터는 실제로 타보니 삐그덕하는 나무 소리가 나기는 해도 동작하는데 보통의 에스컬레이터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100년이나 된 물건 같지 않고 바로 지금 만들어서 쓰고 있는 2021년의 물건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동작하고 있어서 굳이 이걸 보러 왔다는 게 민망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유지보수를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현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발로 밟아서 연주하는 "Big Piano"는 원래 메이시스 백화점이 아닌 다른 장난감 매장(FAO Schwarz)에 있던 것이고 영화도 그곳에서 촬영되었던 것이다.

장난감 매장이 파산하면서 이 피아노만 메이시스 본점으로 옮겨온 것인데 지하 매장 구석에 있어서 그런지 찾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아마도 나 같은 옛날 어른들은 영화에 대한 추억의 물건이지만, 세은이 같은 어린이들은 이미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 많이 경험해 봐서 그런지 그다지 흥미 없어 보였다. 내 소중한 추억이 세월 따라 흘러간다.


(왼쪽) 메이시스 본점 에 설치된 100년이 넘는 나무 에스컬레이터 (오른쪽) 파리바게뜨 MSG점에서 찍은 비 오는 7번가 풍경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백화점을 나섰는데 길을 걸어가다가 반가운 간판 "파리 바게뜨"가 보여서 잠시 들렀다.

뉴욕시티의 중심 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유명한 실내 경기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 MSG) 바로 앞에 한국 브랜드의 빵집이 있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매장에 들어가 보니 뉴욕 사람들 취향의 빵이 대부분이었긴 해도 한국 감성의 단팥빵이나 슈크림빵도 있어서 아주 반가워하며 사다 먹었다.

손님도 많이 있었는데 이것이 정녕 미국 내의 한국 문화 현재 위상인가 싶어서 살짝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무사히 도착해야 여행이 끝나는 것


호텔에 들러서 짐을 찾고 주차장에 있던 우리 차가 침수되지 않고 무사함을 확인했다.

아직 밤 운전은 걱정이 많다. 날 밝을 때 집으로 출발해서 늦지 않게 집에 가야 한다.

준비한 모든 일정은 끝났지만, 실제 여정은 집에 도착해야만 끝난다. 오롯이 운전을 맡은 나의 몫이다.

돌아가는 길은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변도로를 따라서 갔는데, 이미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강의 수위가 도로를 덮칠 만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여행할 땐 즐거웠던 맨해튼이지만 집으로 가는 이 순간엔 빨리 벗어나야 하는 곳이다. 특히 강을 빨리 건너버려야 안전할 것 같다.

비도 점점 많이 오기 시작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순간도 몇 번 있는데 다행히도 우리 차의 전방 센서가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다행히 뉴욕시티 지역을 어두워지기 전에 벗어나서 내륙으로 들어섰고, 이후 북쪽 지역은 비교적 비가 상당히 잦아들어 무사히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비는 미국 동북부에 발생한 허리케인 헨리(Hurricane Henry)가 뿌린 것이고 뉴욕시티엔 130년 만에 내린 폭우였으며, 지하철이 침수되었고, 뉴욕뿐만이 아닌 여러 주에 걸쳐 큰 피해를 남긴 사건이었다.


집에 와서 세은이를 일찍 재우고, 아내와 맥주를 한잔하면서 2박 3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으로 우리의 성공적인 첫 여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꿈을 향해 새로운 길로 들어섰어.' @Times Square


그리고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다음 주, 개학 준비를 해야만 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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