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이미지 : Fort Niagara State Park에서 바라본 5대호 중 하나인 Lake Ontario)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에서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라는 휴일이다.
(침략자 콜럼버스로부터 원주민들이 받은 잔인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 내 20여 개 주에서는 이 날을 콜럼버스 데이가 아닌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학교가 쉬는 연휴라서 2박 3일로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모두에게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려고 한다.
어린 시절엔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른 채 친구들과 "나이야~ 가라!" 같은 말장난을 하곤 했었는데 진짜로 가게 될 줄이야...
뉴욕의 서쪽 끝에 있는 나이아가라까지 쉬지 않고 운전하면 4.5시간 정도 걸린다. 이를 먼 곳이라 할 수 없겠지만 지금껏 미국 와서 갔던 곳들 중에 가장 먼 곳이다.
회사 일을 다 마치고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버펄로(City of Buffalo)에서 저녁을 먹고 밤에 나이아가라 숙소에 도착, 둘째 날엔 나이아가라 폭포, 5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를 보고, 마지막 날엔 집으로 오면서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 코넬대학교(Cornell Univ. Ithaca)까지 보고 오는 것으로 동선을 짰다.
첫째 날 : 금요일 저녁, 뉴욕 주를 서쪽으로 가로질러 간다.
금요일 오후, 세은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 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아직은 해가 그렇게 빨리 지지는 않는다.
나이아가라로 가는 고속도 I-90은 대서양의 보스턴과 태평양의 시애틀을 이어주는 미국의 주축 고속도로 중 하나다. (5의 배수로 끝나는 번호를 가진 고속도로들은 미대륙 횡단 혹은 종단 도로이다.)
뉴욕시티나 보스턴 갈 때와는 다르게, 경로의 대부분에 큰 도시가 없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한적한 길을 지나야 한다.
뉴욕 Buffalo엔 Buffalo도 Bison도 살지 않아.
나이아가라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엔 뉴욕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버펄로(Buffalo, NY)를 지나게 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버펄로는 5대호와 뉴욕시티의 뱃길을 이어주는 이리 운하(Erie Cannal)의 시작점으로, 도로가 발달하기 전엔 내륙과 해안의 물류를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무역 거점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이름대로 버펄로 사람들은 아메리칸 들소를 도시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물소(Buffalo)나 들소(Bison)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다.
도시의 이름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지만, 이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했던 프랑스인들이 붙인 이름 "Beau Fleuve (아름다운 강)"가 미국인들에게 알려질 때 비슷한 발음의 Buffalo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심지어 아내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이 도시의 상징,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대표하는 동물인 아메리칸 들소는 실제로는 Buffalo라고 부르면 안 되고 Bison이라 한다.
Buffalo는 아시아/아프리카에 사는 작은 체격의 물소를 말하는 것이고,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털 많고 덩치 큰 들소는 이름이 Bison이라는 것이다. (소고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Bœuf"에서 유래)
우와... 이건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바로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도시 곳곳에 그려진 저 동물 그림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이며, 특히 이곳을 유명하게 해 준 "버펄로 윙"이 바이슨 윙이 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바이슨이 사는 곳도 아니잖아!)
(사진) 뉴욕주 지도. 뉴욕의 서쪽 끝에 있는 버펄로까지는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왼쪽) Anchor Bar 전경. 사진 오른쪽에 있는 매장 바로 앞 주차칸은 창업자인 벨리시모 부인 전용 자리이다. (오른쪽) 포장해서 가져 온 버펄로 윙, 감자/고구마 튀김
Anchor Bar : 버펄로 윙의 원조
우리는 버펄로 윙의 원조 앵커바(Anchor bar)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실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치킨 윙을 전문으로 하는 맥주를 파는 곳으로 1960년대부터 이곳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닭날개를 튀겨 먹는 것이야 특별한 것이 없지만, 여기서 개발한 다양한 소스와 셀러리 및 블루치즈 등을 곁들여 먹는 방식이 미국 전역에 유행하여 지금은 버펄로는 치킨 윙의 대명사가 되었다.
날개 달린 바이슨이 이 가게의 상징인데, 버펄로가 살지 않는 뉴욕 버펄로에서, 버펄로도 아닌 바이슨과 치킨 윙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60년이 넘은 식당이라, 수많은 상패와 유명인의 사진들이 매장에 전시되어 있고, 심지어 한국에 소스를 수출했던 한국 신문 기사도 매장에 걸려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도착해서는 시간이 너무 늦고 숙소까지는 여전히 40분 정도 더 가야 했기 때문에 포장 주문을 했다.
음식을 받고 나이아가리 폭포 앞의 호텔로 이동해서 보니 음식이 아직도 따뜻했다.
미국 음식은 확실히 한국보다 크기가 크고 양이 많다. 치킨 윙의 날개 크기가 한국에서 먹던 것의 1.5배는 되어 보였다. 이건 술안주가 아니고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다.
듣던 대로 버펄로 윙의 기본 소스는 시큼한 향이 있어서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맛이다. 서너 개 먹어보니 '먹을 만 한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해도 한국에 없는 맛인 건 분명했다.
세은이를 생각해서 한국 입맛에 비슷한 "허니 갈릭 BBQ 소스"도 받아 왔는데, 이거 아니었으면 세은이는 아마 하나도 안 먹고 굶었을 것이다.
버펄로 윙의 원조 집이라는 특별함이 있는 앵커바지만, 치킨 윙이라는 음식은 이미 너무나도 보편화되어서 이게 아주 특별한 맛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대표 미국 맛인 버펄로 윙을 다 먹고 나서 비로소 창 밖을 보니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간 조명이 눈에 들어오고 폭포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5시간 운전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내일의 일정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 날 : 나이아가라 폭포와 온타리오 호수
한국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의 5대호인 이리 호수(Lake Erie)와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를 연결하는 나이아가라 강의 중간 지점에 있는 거대한 폭포이다.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이리 호수에서 낮은 곳에 있는 온타리오 호수 쪽으로 물이 흐르게 되는데 엄청난 유량과 낙차에 의한 침식으로 폭포의 모습이 매년 조금씩 변할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이 정도 규모의 폭포인데도 미국에선 국립공원(National Park)이 되지 못하고 그냥 주립공원(State Park)에 불과한데, 그래도 다른 주에서 보러 온 차도 많고 관광버스도 상당히 많다.
우리 호텔엔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가 한 대 있었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더 대단한 일이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쪽의 아메리칸 폭포와 브라이덜 베일(신부 면사포 모양) 폭포 그리고 캐나다 쪽 호스 슈(말발굽 모양) 폭포를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특히 캐나다 영토에 위치한 호스 슈 폭포는 큰 반원 모양이고 높이 50미터, 너비 800미터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나이아가라 폭포의 대표 사진에 주로 등장한다.
미국 쪽 두 폭포에 비해 호스 슈 폭포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나이아가라 여행은 "무지개다리 (Rainbow Bridge)"를 통해 국경을 운전 혹은 걸어서 넘고 캐나다 쪽에서 폭포를 구경한 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일반적 경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코비드 때문에 국경을 넘으면 최소 4일은 자가격리로 호텔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엔 미국 쪽에서만 보기로 했다. 캐나다 쪽은 기회가 된다면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데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도 캐나다 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에 가보자.
유람선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쪽에서 물을 맞으며 구경하는 투어는 여기에 오면 꼭 해봐야 한다. 배를 타면 국경을 넘지 않고도 캐나다 쪽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미국 쪽 유람선의 이름은 "메이드 오 더 미스트 (Maid of the Mist)", 캐나다 쪽에는 "혼 블로워(Hornblower)"가 있는데 출발지만 다르고 완전히 동일한 코스로 운영된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서 아침 일찍 나서야 했고,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배를 타면 승객에게 우비를 나눠준다. 배가 폭포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기 때문에 폭포 물을 맞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사실 물을 맞으려고 타는 배다.
유람선은 아메리칸 폭포를 시작으로 브라이덜 베일 폭포를 지나 호스슈 폭포에서 되돌아오는 30분짜리 코스로 되어있다. 배 2층 야외 자리에 사람이 빽빽이 탄다.
출발해서 폭포를 가까이에서 보니, 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양의 물이 웅장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제일 끝에 있는 호스 슈 폭포는 물이 안쪽으로 모이듯이 떨어지니 마치 거대한 물의 절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위로 쏟아지는 엄청난 물보라로 앞을 쳐다보기도 힘들고 폭포 소리에 옆사람과 대화가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어릴 때 항상 말로만 듣던, "나이야 가라!"같은 말장난으로만 알고 있던, 이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내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폭포 물을 맞는 건 조금 힘들었지만 그 마저도 재미있었고 투어시간 30분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보고 폭포 바로 옆 공원에 한동안 머물렀다.
(왼쪽) 왼쪽이 아메리칸 폭포, 가운데 한 줄기 작은 폭포가 브라이덜 베일, 오른쪽 끝이 호스슈 폭포다. (오른쪽) 유람선을 타고 본 호스슈 폭포. (사진) 미국 쪽 폭포 관람 포인트. 사람들이 서 있는 난간 바로 옆으로 아메리칸 폭포의 물이 흩날리고 있다. 건너편엔 캐나다의 고층건물이 보인다.
폭포를 몸으로 느껴보는 "바람의 동굴"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위엔 섬이 여러 개 있는데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특히 염소가 살았다는 제일 큰 섬인 염소 섬(Goat Island)은 한 시간 정도 산책하면 돌아볼 수 있는 공원으로 되어 있다.
섬의 제일 안쪽에는 "바람의 동굴"(Cave of the Winds)라는 이름의 투어가 있는데, 이름과는 달리 동굴을 구경하는 건 아니다.
나이아가라 세 폭포 중에서 가장 작은 폭포인 브라이덜 베일 폭포 바로 아래까지 걸어가서 구경하는 셀프 투어다.
사람이 꽤 많은데 표를 사고 입장하면 나이아가라 지역의 개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시된 사진과 소품, 동영상 등엔, 작은 나무통 하나에 의지해서 폭포에 뛰어들거나 외줄 타기로 건넜다거나 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 수력 발전과 관련한 테슬라와 에디슨의 이야기, 19세기말 세계 최대 수력 발전소를 둘러싼 미국과 캐나다의 협력과 경쟁 이야기 등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면 실제 투어 입구에서 우비와 샌들을 주는 곳이 나오는데 티켓 가격엔 샌들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투어 마치고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사진) 케이브 오브 더 윈드의 입구. 무조건 젖기 때문에 우비뿐만이 아니고 신발도 갈아 신어야 한다. 신발은 기념품으로 준다. (왼쪽) 브라이덜 베일 폭포와 바로 아래에 투어 하는 사람들. (오른쪽) 허리케인 덱에서 폭포 물을 맞고 있는 모습. 고개를 들고 서 있을 수도 없다.
강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폭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폭포 체험이 시작된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유람선에서 볼 때는 작고 아담해 보였는데 실제로 앞에 가서 보니 높이와 유량이 엄청나고 나무로 된 산책로 계단 밑으로 물이 콸콸 흘러가고 있다.
최종 목적지인 "허리케인 덱(Hurricane Deck)"에 가까워지면 발 밑으로 흐르던 물이 사방으로 흘러넘쳐서 온통 다 젖기 시작하는데, 입장료에 왜 샌들이 포함된 건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허리케인 덱은 폭포 낙하지점에서는 살짝 빗겨서 설치된 곳인데도 쏟아지는 폭포수 때문에 우비가 찢어질듯한 소리가 난다.
친구들끼리 놀러 온 것 같은, 우비가 이미 다 찢어져 있던 젊은 친구들은 그마저도 다 벗어버리고 온몸으로 폭포를 즐기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지만 웃음과 인사가 절로 나왔다. "Awesome, you guys!"
쏟아지는 폭포수를 맞는 것은 세은이도 신기하고 재밌었던지 계속 올라가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한참을 그렇게 폭포 속에서 놀다가 나왔을 때는 이미 우비 속으로 들어온 물에 옷이 많이 젖어있어서 호텔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5대호 중 가장 작은(?) Lake Ontario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나이아가라 강 하류에 있는, 5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로 향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있는 5대호는 사이사이가 서로 강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 나간다.
이리 호수에서 흘러온 물은 나이아가라 강을 통해 온타리오 호수를 거쳐서 쌩 로렌강 (Saint Lawrence River)을 따라 대서양으로 흘러가게 된다.
5대호 중에서 가장 작은 온타리오 호수는 길이 300km, 폭 85km, 최대 깊이 25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다. 이 정도면 바다 아닌가? 심지어 갈매기도 사는 곳이다.
호수 한 개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를 모두 합한 것보다 크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40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오래전 군사 요새였던 포트 나이아가라 주립공원(Fort Niagara State Park)에 닿게 된다.
이곳에 뜬금없이 군사 요새가 있는 이유는,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으로 오면 쌩 로렌강을 거슬러 올 수가 있고, 온타리오 호수의 서쪽 끝인 미국 버펄로나 캐나다 토론토까지도 배를 타고 한 번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리적 특성상, 18세기에 이곳을 선점한 프랑스가 요새를 건설했고 이후 수차례의 전쟁을 통해 프랑스, 영국, 미국 순서로 주인이 바뀌었고 2차 대전 이후로는 공원으로 변모하게 된다.
우리가 요새에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도 관람 시간에 늦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는데 성벽을 따라 걸으며 호수 항구 마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5분 정도 떨어진 공원 내 호수변(Lake Beach)으로 장소를 옮겼다.
흔히 Beach라고 하면 한국에선 바닷가인 "해변"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미국에선 물이 있는 모래사장이라면 호수변이든 해변이든 Beach라고 부른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넓은 잔디밭을 지나고 나니 끝도 없이 펼쳐진 호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아닌데 이렇게 넓고 큰 물은 난생처음이었다. 파도도 없고 짠내도 없고 바다 벌레도 없다.
호수변엔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서 정말 Beach라고 할 만했으며 물을 살짝 찍어서 먹어보니 당연히 짜지 않았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평한 호수 저 멀리엔 큰 컨테이너 선이 지나가고 있다. 거대한 수평선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아무 움직임도 없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절대적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풍경이 내 상식 기준으로는 이질적이다. 아니다. 내 상식은 좁은 세계에서 만들어진 편견일 뿐이고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이 실제 세상이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즐겼다.
(사진) 포트 나이아가라 주립공원에서 본 온타리오 호수의 모습. 호수 건너편을 건너면 캐나다 토론토에 닿는다. 호수 멀리 컨테이너 화물선이 지나고 있었다. (사진)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경. 개발 제한 규정 차이로 캐나다 쪽에만 높은 건물들이 있다.
온타리오 호에서 호텔로 돌아와서 식사 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경을 보러 나섰다.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
폭포엔 물이 밤낮없이 흐르고 있지만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비추고 있어서 낮에 볼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웅장함과 즐거움 그리고 고요함을 단 하루 만에 느낄 수 있었던 나이아가라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셋째 날 : Cornell University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이아가라에서 2시간 정도 동쪽으로 가면 남북으로 길쭉한 호수가 많은 곳이 있다.
온타리오 호에 비하면 세상 모든 호수가 작아 보이겠지만, 그래도 이곳의 호수들도 우리 기준에는 초대형 호수들이다. 개 중에는 길이가 60km에 달하는 것도 있다.
뉴욕에선 이곳을 핑거 레이크(Finger Lakes Region) 지역이라 하고 가장 긴 호수의 이름은 카유가(Cayuga Lake)인데, 이 카유가 호수의 남쪽 끝엔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중 하나인 코넬대학교가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코넬 대학교
점심때쯤 학교 입구 사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작은 마을에 한국 분식집이 무려 세 개나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유학을 많이 오나 보다.
코넬 대학교는 상당히 비탈진 언덕 위에 있었다. 캠퍼스 입구엔 예쁜 폭포(Triphammer Falls)도 있다.
폭포 주변으로 안전망이 약간 유난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설명을 보니,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코넬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일 텐데... 경쟁은 항상 상대적이니 안전망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필요하다.
입구에서 15분쯤 걸어 올라가면 코넬의 대표 건물인 맥그로우 타워(McGraw Tower), 그리고 그 아래엔 넓은 잔디 비탈(Libe Slope)이 있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여기선 겨울에 눈썰매 타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수업 들으러 올 때 땀 좀 흘리겠지만.
맥그로우 타워 뒤편으로는 설립자 Ezra Cornell(에즈라 코넬)과 초대 학장의 동상이 있는 잔디밭(Arts Quad)이 있다. 우리는 하버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상의 찾아가서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미국 대학교들은 일요일엔 교내 서점 및 각종 상점들이 문을 닫는데, 그래서 기념품을 사거나 할 수가 없었고 열려있는 곳은 학생들만 출입가능한 곳이 대부분이라 밖에서만 보게 된 건 좀 아쉬웠다.
학교 성당인 채플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가, 고풍스럽게 지어진 도서관, 학생회관, 음악대학 등, 공원을 다니듯 산책을 했다.
독특하게 생긴 컴퓨터 공학관 건물은 MS 창업자 게이츠 부부였던 사람들의 기부로 지어졌는데, 현재는 이혼했지만 건물의 이름은 여전히 Bill & Mellinda Gates Hall이었다.
차를 타고 학교 기숙사와 풋볼 경기장 등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으로 코넬대학교의 일정을 끝내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게 서둘러서 출발했다.
(사진) 코넬대학교 앞 한인 분식점 외부에 걸린 메뉴판. Part timer를 구하는 공지를 한국어로만 적어 놓았다. (왼쪽) 코넬대의 상징적 건물인 맥그로우 타워와 세이지 채플.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오른쪽) 중앙 잔디밭 Arts Quad와 음악대학 건물 링컨홀
미국 필수 영어 회화 : "I've got a flat tire." (타이어가 터졌어요)
좁은 시골길을 지나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속도를 내려는 순간, 운전석 옆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계기판에 공기압 경고가 뜬다.
운전석 앞쪽 타이어 공기압 숫자가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차가 덜컹거린다. 갓길에 세우고 보니까 타이어가 터져있다. 태어난 지 4개월 밖에 안된 내 인생 첫 새 차가!!!
우선 보험회사의 긴급지원서비스(Roadside Assistance) 연락을 해서 타이어 교체를 접수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진짜 문제는 타이어가 교체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왜냐면 긴급서비스는 터진 타이어를 차에 달려있는 임시 타이어로 바꿔 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고속도로로 한 시간 이상을 운전해서 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사고 위치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인데, 미국의 도시 외곽엔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안 되는 영역이 꽤 많은 편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이다.
한 시간쯤 뒤에야 사람이 왔고 임시타이어로 교체되어 운전은 가능해졌지만, 예상대로 진동이 너무 심해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임시타이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이니 할 수 없다.
고속도로 최저 시속이 40 mile/h이고 다른 차들은 보통 70~80 mile/h (110~130km/h)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곳이다.
가로등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저녁에 임시타이어로 천천히" 달리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게다가 타이어가 어디서 뭣 때문에 터졌는지도 모르는 이 길로 계속 가다가 다른 타이어마저 터진다면 그때는 아예 도로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일단 고속도로 밖으로 나와서 근처 마을로 찾아가 봤다.
일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정비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구글 지도에 영업 중으로 되어있더라도 실제로 가보면 문이 닫혀있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어 가 봤지만 내 차에 맞는 타이어는 찾을 수 없었고 언제 입고될지도 알 수 없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60 mile (=100km),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서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 원래 한 시간 거리지만 지금의 차 상태로는 세 시간이 넘도록 가로등 없는 밤 시골길을 운전해야 한다.
- 여기서 하루 자고 가기엔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내일 새 타이어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
- 가는 동안 인터넷, 전화는 안 되겠지만 다행히도 우리 차엔 인터넷이 없어도 되는 내장 내비게이션이 있다. (내장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구글 지도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해당 지역의 오프라인 지도가 없으면 인터넷이 안될 때 길안내 서비스는 되지 않는다.)
나는 잠시 고민하고 나서, 더 이상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고 바로 집까지 운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운전석 타이어가 터진 나의 4개월짜리 새 차. (왼쪽) 뉴욕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슴. 사진은 우리집 뒷마당에 찾아 온 사슴가족이다. (오른쪽) 고속도로의 사슴 출몰 경고 안내판.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타이어가 비대칭이 되니 속도를 높이면 핸들이 너무 떨린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임시타이어가 터져도 안되고 뒤차가 나를 들이받게 해서도 안된다.
비상등을 켠 상태로 35 mile/h를 넘지 않도록 천천히 살살 운전한다. 밤이 되니 시골길 운전(Country Road = CR로 표기되는 길)은 더욱 위험하게 느껴진다.
차들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길이 좁아서 트럭들이 나를 빠른 속도로 추월할 때마다 굉장한 공포감을 느꼈다.
사람이 밀집해 살지 않는 곳에 도로 관리가 잘 되어있거나 우회로가 있을 리 만무했다.
마을 같은 곳을 통과해 가는 건 그나마 안전했지만, 시골길인 CR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절대 암흑 속에서 지나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불안함이 아내와 세은이에게 느껴지지 않도록 나는 운전도 말도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불빛도 없고 집도 없는 어느 시골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 수풀에서 뭔가 차 높이만큼 펄쩍 뛰어올라 내 앞을 가로지른다. 정신이 번쩍 들어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세은이가 소리를 질렀다.
아빠! 사슴! 사슴!
덩치가 꽤 큰 사슴이 너무나도 날렵하게 내 차 앞을 훌쩍 뛰어 넘어서 길 반대편 수풀로 사라졌다.
나는 침착해야 했다. 이게 한 마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슴이 나온 곳을 계속 쳐다보면서 잠시 정차했다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우와... 이걸 피했다.
무사한 건 다행이지만 사슴이 공중에 떠있는 그 짧은 순간엔 머릿속에서 온갖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와, 저거랑 부딪히면 여기 차를 세워야 하는데, 전화 안되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아침까지 밤새고 있어야 하네. 완전한 어둠인데 지나가는 차가 내차를 들이받을지, 누가 와서 우리를 위협할지, 무슨 동물이 나올지도 모르는 여기서 밤을 새야 하네. 아...... 지금 여기 차가 멈추면 우리 가족은 진짜로 목숨을 잃겠구나.'
뉴욕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곳곳에 사슴 주의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한국 고속도로에서 사슴 경고를 봤다 한들 실제 사슴이 나오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던가.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개나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 정도만 조심하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슴을 도로에서 만나는 건 솔직히 너무나 큰 공포심이 든다. 이런 위험이 미국에선 꽤나 일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뉴욕에 가을 사슴 사냥 기간이 있는 것도, 사슴 고기를 파는 것도 납득이 되고, 사람들이 동물 사냥을 스포츠처럼 생각하는 이유도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지금은 나도 하고 싶을 지경이다.
사슴을 보고 난 뒤, 내 머릿속엔 오로지, 차가 멈추면 가족 모두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생각만 있었다.
남은 길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침착하게 운전해야 했다. 가족들이 동요하지 않게 내가 먼저 평온해야 한다.
그 이후 토끼나 너구리 같은 작은 동물들을 만났지만 사고 없이 잘 피해서 운전했고, 결국 임시타이어를 끼고 무려 3시간 동안 한 밤중에 시골길을 지나 무사히 "살아서"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늑한 우리 집 차고에 주차하자마자 눈물이 날만큼의 안도감이 들었다. 진짜 엄청난 공포였다.
지금껏 살면서 목숨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심지어 가족까지 태우고 이런 일을 겪으니 그 긴장감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타이어가 터진 건 불운이었지만, 차에 내장 내비게이션이 있던 것, 사슴을 치지 않고 피한 것, 임시 타이어로 그 먼 거리를 무사히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다.
며칠 뒤 세은이 영어 과외하는 날에 선생님 DyAnn에게 우리의 행운(?) 가득한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크게 놀라면서 살아 돌아와서 매우 다행이라 해주었다. 그리고 진정한 뉴욕 사람이 된 거라면서...
Welcome to America!
2박 3일 동안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경험했던 우리의 세 번째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사슴고기(Venison)는 한번 사 먹어 봐야겠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