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022 ~ August 2022
미국으로 떠나기 전 : 운전 경력이 없는 아내
서울 살던 우리에겐 작은 중고차 한 대가 있었고 별로 많이 타지도 않았다. 1년에 3,000km 정도나 탔나?
코비드 팬데믹으로 잠깐 미뤄진 그녀의 부담감
보통의 미국 가정이라면 성인 한 명당 차가 한대 이상은 되어야 한다.
남편은 픽업트럭, 아내는 SUV 그리고 고등학생 이상 큰 아이들은 오래된 중고차, 이런 식의 조합이 교외지역 보통 가정의 자동차 보유 형태인 것 같다.
그녀의 뉴욕 면허시험 준비 과정
뉴욕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원래 DMV (차량관리국, Department of Motor Vehiecles) 시험장에 가서 봐야 하지만 코비드 때문에 온라인으로 바뀌어 있는 상태였다.
코비드 감염자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서 다시 원래대로 출석 시험으로 바뀔까 봐, 아내의 서류(SSN, 신원 및 거주증명)가 준비되자마자 서둘러 필기시험을 신청했다.
온라인 신청을 하면 즉시 시험을 볼 수 있다. 아내는 내가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끙끙대더니 단번에 합격했다. 역시 내 마누라다.
그 이후 DMV에 가서 면허증 사진 찍고, 연습면허인 러너 퍼밋(Learner's Permit)도 받고 운전학원에서 교습확인증까지 받아서, 최종 단계인 주행시험 접수까지 막힘 없이 달성했다.
이제 막 주행시험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내 경험대로 '유튜브에서 미국 운전면허 동영상을 보되, 한인 많이 사는 LA 쪽 말고 영어 많이 쓰는 뉴욕에서 찍은 영상을 보라고' 알려 주었다.
Left/Right Turn, Go Strait 같은 수준의 말이야 쉽게 알아듣겠지만, Pull over/out, Windshield, Curb, 3 point turn(혹은 K turn)과 같이 한국에서 잘 안 쓰는 운전 표현에도 귀가 익숙해야 한다.
감독관이 뭔가를 지시했을 때 'I don't know.'같이 대답하면 당연히 탈락이다. 운전 시험이 영어 회화시험은 아니지만 영어로 운전/차량 용어를 모르는 건 미국에서 운전할 능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험 볼 때 동작 연기도 잘해야 한다. 좌우 사이드 미러 볼 때 눈만 굴려서 하지 말고 고개를 크게 돌려서 감독관이 보기에 확실히 사이드 미러를 보고 있음을 알도록 과장되게 해야 한다.
후진할 때, 우리 차는 전면 화면에 차 뒤쪽 영상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안 되고 룸미러를 보면서 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잘해야 한다. 물론 해당 아예 기능을 끄면 되지만 굳이 스스로 불리해질 필요가 있나.
나는 계속 조언이라고 해주었지만 듣는 아내는 말이 없고 표정이 없다. 아... 내가 말을 그만해야 하는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도 이 시험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주재원 동기의 아내들이 면허를 땄다는 소식이 하나둘씩 전해지면서 나의 그녀에게도 희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특히 한국 운전 경력이 오래되어 이미 합격한 헤이니 엄마가 아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내는 나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마트, 도서관을 직접 운전해서 다녀오고, 유튜브에서 본 것들을 열심히 외워가며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면허증 도전의 날 : '준비 됐나요?'
드디어 시험날 아침, 마지막 연습으로 시험장까지 그녀가 직접 운전해서 가고 나는 동승자를 한다. 지금 떨어지면 겨울에나 다시 시험 볼 수 있고 그때는 눈 쌓인 길에서 시험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이번에 붙어야 한다.
가는데 브레이크 밟을 때마다 차가 덜컹거려서, 한 며칠 참았던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늘 시험날이다.
"브레이크 여러 번 나눠 밟으라고.", "시험장에서 지금처럼 과속하면 바로 탈락이야."
"저쪽 신호 앞으로 대라고 했... 아... 너 지금 10점 감점됐다."
가는 내내 짧은 대답만 하던 침묵 속의 그녀는, 마침내 시험장 대기장소에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마누라 괜찮아. 니 옆엔 운전면허 한 번에 붙은 남편이 있잖아? 너는 이 기운을 소중히 간직해라."
"아, 님 조용히 좀"
이윽고 감독관이 도착하고 드디어 아내의 순서가 됐다. 얼굴에 웃음기 띤 젊은 남자 감독관이다.
나는 씩 웃으면서 "How are you?" 한 번 날려주고, 내 운전면허증, 아내의 연습 면허, 차량 등록증을 확인시켜 줬다. 그러고 난 뒤 아내에게 "Good Luck"을 날려주고 차에서 먼저 내렸다.
아내는 감독관과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곧 출발했다. '오~ 드디어 가네. Let's Go 마눌.'
시험은 보통 10분 정도다. 그런데 시험 중 과락의 실수를 하면 더 진행하지 않고 바로 출발점으로 회차한다. 다행히 아내는 일찍 오지 않았다. 우리 차는 10분을 다 채우고 저 쪽 모퉁이에서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착하고 나서 바로 끝나지 않는다. 운전이 끝나면 감독관은 실수한 걸 알려주고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얘기하게 되어있다. 근데 지금 뭔가 말하는 게 긴 것 같다... 많이 틀렸나? 불길하다.
감독관이 내리고 나서 내가 차에 얼른 타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운전은 내가 했다.
"어떠셨나요? 다음 주에 뉴욕 면허증 날아오나요?"
"끝나고 한참 뭐라고 했는데 틀린 게 좀 있는 것 같고, 주차하다가 커브(Curb) 밟았는데 그냥 넘어갔어."
잉? 커브는 도로가의 연석인데 이건 밟으면 바로 탈락이 되는 과락항목이다. 연습할 때 내가 아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줬던 건데 이걸 그냥 넘어갔다고? 아... 갑자기 싸하다. 감이 왔다.
"왠지 그냥 불쌍해서, 탈락인데도 그냥 끝까지 해 준 거 같은데..." "에? 나 탈락임? 왜? 끝까지 했는데?"
저녁이 되어 DMV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내 예상대로 역시 탈락이다. 그래도 그녀의 점수가 생각보다 절망적이지는 않아서 희망을 충분히 가져 볼 만했다.
떨어지긴 했지만, 가엾은 한국 아줌마가 10분씩이나 감독관과 함께 연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으니, 그 감독관은 꽤나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좋은 경험 했다.
아쉽긴 헤도 큰 시련까지는 아니다. 주재원 아내들 중엔 아직 시작도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세은이 과외 선생님 DyAnn은 자기도 무려 5번이나 떨어졌다며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아내는 이런 말들에 안심이 된 건지, 첫 시험에 너무 많은 힘을 써 버린 건지 탈락 이후엔 연습도 안 하고 한동안 내리 쉬기만 했다. 나는 아무 말할 수 없었지만 조금씩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도전의 이유 :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미국 이민자의 배우자
내가 이 상황을 초조하게 느끼는 이유는,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빨리 독립해서 자신만의 생활을 하게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왔던 모습으로 여기서도 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미국에 온 이후, 아내는 모든 일을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 뭔가를 사는 것, 무언가를 신청하거나 예약, 학교에 보내는 이메일 그리고 어디에 가는 것 등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지만 아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 내가 해줘야 했다.
'영어를 못하니까, 자격이 없어서, 운전을 못해서' 등등 아내가 뭔가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나는 아내의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
아내가 부족한 사람이거나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나는 준비를 해서 미국으로 왔고 아내는 그저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왔다. 가족을 챙기기 위해 아내는 익숙한 것들을 버려야 했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와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은 아내의 탓이 아니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대체적으로, 이민자를 따라 미국에 온 배우자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온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위치에 있게 된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운전을 못하면 남편 없이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친구도 없고, 영어가 안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아내의 이민으로 남편이 따라온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남편의 협조/동의/허락 없이는 뭔가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들은 성인이지만 남편이라는 보호자가 항상 옆에 있어야만 하는 반쪽짜리 사람이 된다.
남편의 직장이 불안정하거나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경우 아내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남편 입장에선 가족 전체의 목숨 줄이 자신의 직장에 달려있으니 아내의 외로움을 봐줄 여유는 없다.
매우 슬픈 일이고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심지어 미국 사회 전체에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이건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여기 왔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거다.
많은 수의 이민자 가족이 이런 현실에 처해져 있다. 특히 여성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나의 직장이나 아내의 영어 수준이 그 정도까지 절망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아내는 한국에서 살던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
아내는 한국에 있을 때,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적 성향의 사람이었다. 직장생활도 오래 했고 자기 영역이 확실하다. 하지만 미국 와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
혼자 했던 일들을 미국와선 시도하지도 않고, 사소한 일을 일일이 나에게 설명하고, 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다 큰 성인인데 이 상황이 얼마나 답답할까?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 영어를 잘하게 되면 이 상황이 좋아질까? 아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세은이와는 다르게,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는 아내가 영어를 잘하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영어가 안된다면, 운전이라도 잘해서 원하는 곳을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면 어떨까?
마트, 학교, 도서관을 남편 없이 자유롭게 다니고, 나 없이 헤이니 엄마도 만나고, 내 눈치 안 보고 '나는 놀다 올 테니 밥은 알아서 드시오.' 하며 시원하게 나가면 어떤가. 그게 내가 바라던, 한국에서의 아내 아닌가.
아내가 미국의 일상생활을, 한국에서 똑같은 태도와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
아내가 독립해야 나도 부담이 줄어든다. 우리 가족이 더 멀리 내다보고 앞으로 가려면 아내가 운전을 잘하게 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나의 피보호자가 아닌 한 사람의 미국 이민자로 홀로 서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의 자유 활동의 시작이 될 뉴욕 현지 운전면허증에 나는 조바심이 났다. 이게 있으면 우리가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면허를 못 딴 것도 괜찮고 다시 해서 실패해도 괜찮아. 이도 저도 안되면 지금 살던 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이 이걸 해내면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짐이 줄어들어서 우리 가족이 좀 더 멀리, 더 빨리 앞으로 갈 수 있게 돼. 다시 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이걸 이루고 나면 당신도 훨씬 편안해질 거야. 만약 또 실패해도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
진심이 전해져서인지, 아내는 이내 다시 시험 접수를 했고 남편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연습을 열심히 했다.
눈이 조금 왔던 날, 두 번째 시도에서 그녀는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고 우리의 소원이던 뉴욕 운전면허증을 거머쥐게 되었다.
"역시 내 마누라. Good Job, My Love."
하필이면 미국에서 발생한 그녀 인생 첫 사고
운전면허를 따고 나니 아내가 운전에 자신이 생겼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동네 볼일 보러 가는 것 정도는 망설임 없이 운전대를 잡는다.
정식 면허증이 있으니 아내 혼자 운전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불안하지 않다. 매주 두 번, 도서관에 세은이 영어 과외하러 이제는 아내 혼자 간다. 길이 복잡한 곳도 아니다.
마트, 병원, 학교 볼일 등등 아내가 스스로 자기 일을 독립적으로 계획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내 일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아내의 표정이 달라진 것도 좋은 점이다.
그래도 운전은 여전히 초보다. 매일 가는 짧은 길도 내비게이션을 켜야 하고, 차를 멈출 때마다 꿀렁거리고, 주차도 삐딱하고, 우회전이나 비보호 좌회전 같은 건 아직도 헷갈려한다.
잔소리를 할라치면 자기도 다 안다고 하는 생초보의 운전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입이 너무 근질근질 하지만 최대한 훈수를 자제하고 기다려야지. 그녀에게 최대한 기회를 줘야 하는데, 사실 정말 조마조마하다.
세은이 과외시간에 조금 늦었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아이한테 이미 약간 짜증이 났다. DyAnn이 기다리고 있으니 도서관에 얼른 가야 한다.
나는 1층 서재에서 일하고 있다가 세은이의 다녀오겠다는 소리를 듣고 배웅하기 위해 차고 앞으로 나왔다. 아내가 이제 막 후진해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후진이 조금 빠르다. 돌리는 각이 조금 좁다. 아뿔싸, 차가 다 빠지지 않았는데 아내가 너무 빨리 핸들을 돌리는 바람에 차고 모서리를 긁고 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지금 이 장면이 현실인가? 집도 차도 망가지면 안 돼! "어... 안돼! 안돼! 세워!"
아내는 차를 세우긴 했지만 완전히 얼어있었다. 빨리 구해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차를 빼다가 일이 커지는 경우를 많이 봤었다. 정신 차리자.
"핸들을 그대로 두고 전진해서 살살 앞으로 와. 됐어. 반대로 틀면서 더 앞으로. 됐어! 빠졌다."
아내는 위기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반은 울상인 표정이고 세은이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일단 누가 다치거나 집이 망가지지 않았으니 괜찮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나도 생각이 복잡하다.
"빨리 가. 갔다 와서 얘기해"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던 나는 웃으며 배웅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 다녀온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미안해했다. 이제 막 피어나던 그녀의 자신감은 다시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괜찮은 척했다. 아니다 진짜로 괜찮은 거다.
차는 수리하면 되지만 이 일로 아내가 운전에 흥미를 잃고 포기하면 안 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행히 아내는 다음 날부터 아무 일 없던 듯이 마트도 가고 세은이랑 도서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분명 다시 운전대를 잡기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낸 아내의 책임감. 정말 고맙고 존경한다.
미국에서 자동차 수리 하기
사고 났으니 뒤처리는 내 몫이다. 다행히 차고는 괜찮아 보인다. 집주인에게 연락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근데 차 수리는 어떻게 하지? 한국에서도 안 해본 걸 미국에서 해야 되네.'
차 상태를 보니 부위가 넓지만 약간의 흠집 수준인데 한국이라면 수리 안 하고 타도 괜찮을 것 같은 정도다. 그리고 미국 도로 위에는 이것보다 훨씬 심한 상태로 망가진 차들이 다니는 것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차를 타고 미국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는데, 상처 난 차를 타고 다니면 왠지 만만하게 보일 것 같다.
유리창 깨진 집은 쉽게 범죄에 노출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 눈엔 차 상태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누가 차에 함부로 손대는 것도 싫고, 어차피 한국 갈 때 중고로 팔아야 하니 그냥 빨리 고치는 게 낫겠다.
구글에 'Car collision fix near me"를 검색해서 집 주변 수리점 중 별점이 가장 높은 곳에 연락을 했다. 수리 기사 Simon을 매장에서 만나서 내가 가입한 보험이 적용되는지 확인하고 수리를 맡기기로 했다.
이제는 전형적인 미국식 일처리가 또다시 시작된다.
접수한 뒤 바로 진행되지 않았고, 견적서를 보험회사에 보내면 보험회사 직원이 수리점에 직접 나와서 차를 확인한다고 했고, 수리 견적이 적절한지 승인한 뒤에야 실제 수리가 시작된다.
집에 차가 한 대뿐이라 부품이 준비되면 수리점에 보내겠다 했고, 준비가 되었다고 해서 차를 보냈더니, 막상 부품이 없다, 뭐가 안된다... 일정은 늘어지고 언제까지 될지에 대한 확답은 없다.
확정된 일정이 없으니 렌터카를 넉넉하게 빌려놔야 한다.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참 적응 안 되는 일이다.
차를 맡긴 후 정확히 일주일 뒤에 수리가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차는 정말 아무 일 없었던 듯, 아주 깨끗하게 고쳐졌다. 총비용은 $2,757이다. 한국돈으로 350만 원 정도.
보험 처리를 해서 내가 수리점에 내야 할 건 없었지만, 면책금 $800을 보험사에 내야 했고, 수리 기간 동안 렌터카 비용도 내야 한다. 게다가 6개월 뒤에 보험료도 오르겠지.
항상 웃는 얼굴로 날 대해 준 Simon은 문자를 보내서 구글 리뷰 5점과 꼭 자기 이름을 적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곳이 구글 평점이 왜 높았는지 이해가 되는 시점이었다. 큰 불만은 없었으니 5점 주었다.
아무튼 나는 돈을 썼고 문제는 해결 됐다. 우리 가족은 다시 걱정 없이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는, 돈을 써서 해결이 되는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그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불편함과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급행 티켓을 사는 것과 같은 행동일 뿐이다.
당연히 고작 이런 걸로 아내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아내가 주눅 드는 게 더 싫었으니까.
"돈 쓰는 건 아무렇지 않은데, 운전은 작은 실수도 이렇게 큰일이 된다. 더 연습하고 조심해."
"넵 남편님! 감사."
재택근무의 종료와 뉴욕에서 실전 운전으로 내몰리는 그녀
평화로운 일상이 몇 달간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일상 운전에 완전히 적응하여 도서관과 마트는 수시로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중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조만간 재택근무 줄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출근해야 한다는 Jason의 공지가 내려왔다.
미국 전역에서 코비드가 확연한 감소추세라 우리가 파견 와 있는 고객사에서는 재택근무를 서서히 줄인다고 한다. 그에 맞춰 우리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공지의 내용이다.
출근을 시작되니 미뤄둔 결정을 해야 한다. 아내의 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고차로 어느 정도 쓸만한 차를 사려면 못해도 $20,000는 있어야 한다.
근데 미국 오자마자 사는 거라면 몰라도, 파견 기간이 이미 절반 정도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남은 1년, 그것도 1주일에 이틀 출근하는 것 때문에 $20,000을 써야 하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니 출근날과 아내가 차 쓰는 일정을 잘 조율하면 차 한 대 만으로도 생활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음... 아내가 운전을 연습해서 나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올 정도가 되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결국 차를 새로 사지 않되, 출근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내가 운전 연습을 더 많이 하고, 다음 달부터 아내가 나를 출퇴근시켜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평생을 아껴 쓰며 알뜰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결정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 스스로 불러온 고난의 길이라는 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의 결정에 따라, 나는 이제 잔소리를 참아야 하는 남편이 아니라 1개월짜리 속성 운전 선생이다. 아내는 내가 없어도 매일 고속도로를 따라 왕복 20km를 혼자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동네 마실 정도 다니는 수준으로 운전해서는 안된다.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고속도로 경험, 교통 흐름을 읽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출근이 시작되기 전, 한 달의 연습기간 동안 아내에게 두 가지를 하도록 했다. 부탁이 아니다. 그냥 시켰다.
마트나 도서관같이 자주 가는 곳은 내비게이션을 켜지 말 것. 도로를 외워야 하고 상황을 스스로 읽을 수 있어야 함.
말타에 있는 사라토가 레이크(Saratoga Lake)를 매일 아침마다 다녀올 것. 왕복 40분. 이 길이 남편을 출근시키고 혼자서 돌아와야 하는 길임. 혼자 다녀올 때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함.
아내를 마치 군대 갓 들어온 이등병 굴리듯이 계속 다그쳤고, 세은이 스쿨버스 태워 보내고 나서 피곤하다는 둥, 하기 싫다는 둥 볼멘소리를 할 때마다 무시하고 떠밀다시피 차에 집어넣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것이 운전자의 책임이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나를 출근시키고 혼자 돌아오다 사고가 나거나 경찰을 만나게 되면 대신 처리해 주는 남편은 더 이상 없다.
아내의 서운한 표정엔 그런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다. 다그치는 나를 아내가 원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내 혼자 곤경에 처하는 건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 달 정도 운전 훈련(연습이 아니라 훈련이다.) 동안 갈등도, 다툼도 있었지만 이 악물고 하는 게 느껴졌고, 점차 운전이 능숙해졌다. 혼자서 먼 곳까지 갈 수 있고 새로운 곳을 가도 덜 당황하게 되었다.
집에서 40분 정도 거리인 헤이니네 집에 아내가 혼자 찾아가서 엄마들끼리 수다를 떨고 온 날, 비로소 훈련의 결실을 보는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엄마 말고 아빠가 운전해'라고 하던 세은이도 이젠 엄마의 운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독립해서 멀어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는 참 뿌듯했다.
고된 훈련 기간 지나 출근날이 됐지만, 아내의 인내와 노력 덕에 차 한 대로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거칠었던 뉴욕시티 그리고 꺾여버린 그녀의 자신감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나자, 씁쓸했던 사고나 힘겨웠던 훈련의 기억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갔다.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으며, 알바니 다녀오는 것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기고만장한 학생에게 새로운 미션을 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세 시간짜리 장거리 운전. 한국이라면 서울에서 강릉 가는 거리 정도를 맡겨보자.
"이번 주에 뉴욕시티 한번 다녀옵시다. 세 시간짜리 장거리 운전 한번 해봐."
"오올~~ 나의 운전 이제 인정받는 건가."
"장거리는 기술이 아니고 체력전입니다. 며칠짜리 뉴욕, 플로리다 왕복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남편님의 그간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라."
"늬예늬예~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나중에 플로리다 갈 때 잠 안 자고 당신이랑 교대 운전해서 가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럼 플로리다도 하루면 갈 수 있어."
"아주 자신감이 넘쳐흐르시는구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복귀까지 해야 완료예요."
그렇게 기분 좋게 뉴욕시티에 예약해 놓은 주차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거의 다 도착해서 사거리 제일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한 남자가 갑자기 차 앞유리를 닦기 시작한다.
미국 대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강제로 해놓고 돈을 요구하는 구걸이다.
순간 얼어버린 아내를 대신해서 내가 클락션을 울리고, 큰 소리로 또 손짓으로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 놈이 못 들은 척 유리를 몇 번 닦는 시늉을 하더니 손 짓으로 돈을 달라면서 차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이럴 땐 몇 달러 주는 게 낫다고는 하는데, 하필이면 그 정도의 작은 현금이 당장 있지 않았고, 창문을 열고 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싫은 상황이다.
대치중에 신호가 바뀌자 구걸꾼은 어쩔 수 없이 차도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우리 차 옆으로 와서는 온갖 욕설을 하면서 아내가 있는 운전석 유리창을 주먹으로 세게 꽝 치고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 놈을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얼어있던 아내의 눈빛은 그놈의 주먹질에 크게 흔들렸다. 정말 위기였다.
"진정해. 그냥 가면 돼. 우리가 앞으로 가면 저 놈 다시 볼일은 없어. 천천히 앞으로, 사거리를 지나가."
다행히 주차장이 멀지 않아서 금세 차에서 내렸다. 온갖 억울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내는 난데없는 봉변에 완전히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뭐야? 왜 저래?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여자라서? 아니면 그냥 미친놈인가? 차 유리 깨졌으면 어떡해?"
우리가 뉴욕시티에 있는 동안에도 아내의 눈빛은 그 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여행을 마친 저녁, 아내와 맥주를 한잔 했다.
아내는 장거리 포기 선언을 했다. "이제 동네에서만 운전할게. 또 그런 일을 당하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
그녀는 내가 그동안 아무 말 없이 해 온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고 했다. 자신은 그렇게 까지는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 망할 놈, 깜짝 놀랐다. "그래 마누라, 수고 많았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다음 날, 아내는 다시 마트와 도서관을 다니고, 나를 출퇴근시켜 주고, 헤이니 엄마를 만나러 다니는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비록 우리의 모든 도전이 다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부족함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채우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처음 시작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고집쟁이 남편 때문에 한 달간 매일 1시간씩, 강제로 운전을 해야 했던, 그래도 끈기 있게 미션을 끝내 성공한 나의 그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었어. 고마워."
Fol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