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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May 05. 2024

12. 뉴욕 운전면허 취득기

September 2021

(커버 이미지 : 자동차 등록 및 면허 관련 업무를 보는, 사라토가 카운티의 DMV 사무소.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쇼핑몰 옆에 있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정착을 위해 최우선 & 필수로 해결해야 하는 운전면허증


미국에서 뉴욕시티 같은 대도시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운전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비교적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우리 동네에서도 운전을 못하면 편의점조차 갈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운전여부와 관계없이 운전 면허증은 미국 내에서 거의 유일한 신분증이기 때문에 꼭 발급받아야 했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계속 맞닥뜨려야 한다.

우선,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면허증은 유효기간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단기 관광객이 아닌 장기 거주자는 3개월 이상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입국 후 3개월 이상이 되면 국제면허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현지 면허증이 없으면 무면허가 된다.

더구나, 미국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차를 살때 면허증으로 자동차 보험을 가입했는데, 정식 미국 면허로 바꾸지 않으면 보험을 종료시키겠다는 협박성 이메일을 1주일에 한 번씩은 받아야만 했다.

(나는 보험사 상담원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는 답장을 꼬박꼬박 했다. 메일을 통해서 해결을 바랐다기보다는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이렇게 노력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단 답장을 보내면 상담원은  "알겠다. 괜찮다. 기다리겠다"라고 회신을 주지만 그 다음주엔 여지없이 시스템에서 발송한 협박성 메일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운전면허증은 SSN과 더불어, 미국에서 어른으로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미국 내 몇몇 주에서는 한국 면허증을 신청만 하면 미국 면허증으로 교환해 준다지만 뉴욕에는 그런 것 없이 초보 운전자가 되어 완전히 새로 따야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과정 : 신청서 접수, 온라인 필기시험, 연습면허

면허증을 신규로 받기 위해선 신청서부터 써야 하고, 신청서엔 각종 신분 및 거주 증명 서류 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류별로 점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비자가 있는 여권은 3점, SSN카드는 2점, 회사 사원증 혹은 각종 고지서는 1점 등으로 인정 점수가 정해져 있고 그걸 다 합해서 6점이 되어야 접수가 가능하다. (뉴욕주 기준)

면허 신청서인 "MV-44"에는 SSN을 필수로 적어야 하기 때문에 SSN을 꼭 먼저 발급받아야 한다.

(참고로, 이 서류는 시민권자에겐 일종의 전입신고로 갈음되는 것이라서 투표 유권자 신청서를 겸하는데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투표 해당 없음"에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인이라 하더라도 다른 주로 이사하게 되면 대개는 30일 이내에 집 근처 DMV를 방문해서 운전 면허증과 차량 번호판을 갱신해야 한다.)

MV-44와 각종 인증 서류를 스캔해서 DMV 홈페이지에 등록하는 것으로 온라인 신청을 완료하면 곧바로 시험 링크가 첨부된 메일을 받게 된다. 신청일 기준으로 1주일 이내에 온라인으로 필기시험을 봐야 한다.

필기시험을 볼 때, 언어를 한국어로 할 수 있지만 마치 번역기로 작성된 것 같다고 주재원들 말로는 오히려 의미파악이 어렵다고들 해서 그냥 영어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문제 은행 방식으로 나오는 50여 개의 문항을 40분 안에 풀어야 했는데, 거리의 단위나 용어 등이 낯설어서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어찌어찌 운 좋게 한 번에 성공했다. (시험 직후 결과를 알 수 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거주지 DMV 사무소에 약속을 잡고, 스캔해서 업로드했던 "6점 서류"의 원본을 가져가야 한다.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서류를 복사해서 사본은 가져가고 원본은 돌려준다.

그러고 나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면허증용 사진을 찍고, 종이에 프린트된 임시 허가증 (Interim Permit)을 발급받게 된다. 연습면허증이 우편으로 오는 며칠간 사용할 수 있는 운전 허가증이다.

며칠 뒤, 면허증과 완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플라스틱 카드로 된 연습면허증(Learner Permit)을 우편으로 받았다. 연습면허증은 적어도 신분증 기능은 한다. 마트에서 여권 없이 술을 있게 되었다. 하하하.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연습면허로는 혼자서 운전할 수 없고 면허증 소지자가 함께 탈 때만 운전이 가능하다.

운전을 배우는 사람이 받는 면허니까 그렇다. 나는 뉴욕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초보운전자 취급을 받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나는 뉴욕 연습면허뿐만 아니라 유효한 한국 국제운전면허 역시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입국 후 3개월까지는 혼자 운전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물론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상당히 촉박하다.

진짜 운전면허(Driver License)를 받으려면, 연습면허받고 나서 5시간짜리 전문학원 교육이수증(MV-278)을 첨부해서 도로주행시험을 신청하고 통과하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다. (장내 기능시험이 없다.)

일단 운전 학원부터 해결해야 했는데, 주재원 선배들이 권하는 대로 뉴저지 한인타운에 있는 한인 운전학원에서 해결했다.

사실 학원에서 새로 배우거나 하는 건 전혀 없다. 주재원들이 운전을 몰라서 배우러 온 게 아니지 않나. 어쨌든 시간을 채우고 MV-278를 무사히 받았다.


(왼쪽) 뉴욕주 운전면허 신청서류 MV-44, (오른쪽) 필기시험 합격 통보 메일, Class D는 승용 운전면허. 다른 Class들은 대부분 상업/운송 면허다.
(사진) 주행시험 등록 확인 메일. 시험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택가 도로에서 본다. "Direction"에 지정된 장소로 예약시간까지 가야 한다.


20년 만의 운전면허 주행시험

준비가 다 되면 DMV 홈페이지에 교육이수증을 스캔해서 업로드하고 거주 지역 근처의 실기시험 장소 목록과 일정을 확인해서 마지막 관문인 도로주행 시험을 신청하면 된다.

날짜를 선택하면 시험장 목록이 나오는데, 20마일 이내 장소 중에 길이 넓어서 주재원들이 많이 봤다고 하는 오래된 주택가 지역(Troy, NY) 예약했다.

다행히도 면허 시험은 회사에서 업무 외출로 인정해 주어서 평일 오전 시간에도 시험을 예약할 수 있었다. 운전면허가 없으면 생존이 아예 불가능하니 회사가 배려해 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감사하게도.


뉴욕의 도로주행 시험은 시험을 보는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준비해서 시험장으로 가야 한다. 감독관을 태우고 지시대로 코스를 이리저리 다니며 10분 정도 평가를 받게 된다.

신호 없는 사거리 통행, 우회전, 비보호 좌회전, 평행주차, 3 point turn(=k turn, 좁은 도로에서의 U turn) 등등 한국 규정과는 다른 것들이 있기 때문 미리미리 주행시험 유튜브 같은 걸 보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처음엔 한인들이 미국 운전면허를 설명해 주는 것들을 많이 봤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만으로는 실제로 시험을 대비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운전 용어를 영어로 알고 있어야 하고 시험 볼 때도 감독관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인 영상은 주로 캘리포니아에 집중되어 있어서 나와는 미묘하게 환경이 다른 것도 느껴졌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 미국인들이 도로주행을 안내하는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시험 방법과 꼭 알아야 할 표현을 따로 적어가면서 집중적으로 외웠다.

시험 장소에도 미리 가서 실제 시험 보는 것처럼 운전도 해보고 주변 분위기도 느껴보았다. 시험장은 정말 그냥 주택가에 있다.

남들 사는 곳에서 운전 연습한다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굉장히 눈치 보인다. 경찰관의 관심(?)을 끌 수도 있어서 너무 오래 할 수는 없었다. 대충 분위기 봤으니 우리 동네에서 맘 편히 연습하는 게 낫겠다.


그리고 시험날에 같이 갈 면허증이 있는 동승자를 구해야 했다. 보통 주재원들끼리 서로 품앗이를 해줬다.

따지고 들자면, 유효한 국제 면허가 있기 때문에 혼자 시험을 보러 가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감독관에게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말한다고 알아듣기는 하려나?) 속 편하게 동승자를 구해서 시험을 본다.

이런 상황을 회사에서도 다 이해하고 있어서 주행 시험 동승자를 하는 것도 업무 외출로 인정을 해 주었다. 하지만 시험에서 떨어지면 계속 같은 부탁을 하게 되니까 민폐가 안되려면 빨리 붙어야 했다.


시험 접수 후 10여 일 정도가 지나고 마침내 주행 시험날이 다가왔다.

시간에 맞춰 동승자를 픽업하고, 시험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서너 대의 차가 기다리고 있다. 대기 줄 제일 뒤에 차를 댔다. 감독관들이 도착 순서대로 시험을 본다. 한 대당 10분 조금 안 되는 것 같다.

마침내 내 순서가 왔다.

"Hi, Good Morning, officer." 감독관은 나를 쓱 보더니 고개만 까딱하고 말은 없다. '음... 괜찮을까?'

감독관은 동승자의 운전면허부터 확인하고 차에 타서는 차량 등록증과 내 연습면허를 확인하고 뭔가를 계속 적는다. 그러더니 동승자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시험을 시작했다. "Let's start. Go straight."

감독관은 계속 짧게 "우회전", "계속 직진", "여기 주차"등 필요한 말만 하고 시험 내내 뭔가 계속 태블릿에 적기만 한다.

시험 중간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긴장되어서 잘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시키는 대로 빙글빙글 돌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주차하고 나니, 감독관은 내가 실수한 것들을 알려주면서 결과는 저녁에 온라인으로 확인하라는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이렇게 시험은 끝났다.

동승자를 해주신 분은 자기도 한번 떨어졌다면서 혹시 잘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해주셨는데... 실망하고 자시고 가 있나. 떨어지면 빨리 다시 해야지.


시험이 끝나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사실 주행시험을 볼 때는 운전자의 차가 아니고 동승자의 차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면허도 없는 사람이 비싼 새 차부터 사서 면허 시험을 보러 온 걸 감독관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16살짜리 고등학생이 가족의 차를 가지고 와서 면허 시험을 보는 게 대부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누가 뭘 물어보든 내가 잘못을 한 게 아니니 당당하게 설명을 하면 되기는 하겠다만...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데, 다시 예약하기 어려운 이 중요한 순간에, 미국에서만 살아와서 이민자 사정은 전혀 모를 수 있는 공무원에게, 변명 같은 설명이 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건, 아직 나에겐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잘 못되면 다시 몇 주를 기다려야 하고 차 보험이 중단될 수도 있고 무면허 딱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것. 억울해도 순응하게 되는 것. 이민 생활의 단면이라 생각이 든다.


시험 결과와 방어 운전 교육

집에 오는 내내 시험을 잘 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제대로 정지선을 지켰는지도 모르겠고 끝날 때쯤엔 그냥 될 대로 돼라 싶었다. 

돌아와서 업무 미팅을 해도 눈과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아내도 내 눈치를 보고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어느덧 저녁이다. 감독관이 말한 결과 나올 시간이 되었다. 아내에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DMV에 로그인한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결과를 확인해 봤는데, 초록색 글씨로 PASS라고 쓰여있다.!!!!!!


뉴욕 운전면허 단 한 번에 합격! 푸하하하!


점수가 턱걸이여서 감점 항목을 찾아보니 실수가 두 번 있었다. 물론 점수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시험이다. 붙었으니까. 이제 면허증 나오니까. 어느새 아내가 세은이를 데려와서 내 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내겐 모든 과정을 성공해 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더 이상 이 문제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기뻤다.

이젠 보험회사의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권과 한국 면허증을 들고 다니지 않고 집 안 안전한 곳에 보관할 수 있다.

마트에서 맥주 살 때 직원에게 여권을 펼쳐서 생년월일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미국에 여행 왔냐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부터는 모든 상황에서 현지인처럼 행동해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게 되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왼쪽) 뉴욕 운전면허증. 발급일 위 "R : B"는 안경 또는 렌즈 착용자 임을 의미하고 운전시 반드시 안경을 써야함. (오른쪽) 뉴욕 방어 운전 교육 등록 사이트.


DMV에서는 운전면허를 따고 나면 "방어 운전 교육(Defensive Driving Course)"이라는 것을 듣도록 권장한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6시간짜리 온라인 수업인데 내 돈 내고 신청해서 듣는 수업이다.

듣지 않고 무시해도 아무 문제없지만, 이 과정을 수료하면 3년 동안 자동차 보험료 10%를 할인해 준다. 6개월에 $800 이상 내고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온라인 강의로만 듣는 가장 저렴한 옵션으로 신청해서, 40분 동안 관련 자료를 보고 나면 짧은 퀴즈를 풀고 ARS로 전화를 걸어서 화면을 제대로 보고 있음을 알려주고... 이렇게 6번 반복했다.

틈틈이 나눠서 한 달 내로만 들으면 되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험료 할인을 받고 싶어서 하루 만에 완료했다.

(방어 운전 교육을 들을 때 이미 교통 벌점이 있는 경우는 수료 후 4점을 삭제해 주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굉장히 필요한 교육이다. 뉴욕에선 18개월 이내 벌점 12점 이상이면 면허 정지인데, 과속 한 번이면 벌점이 최소 3점에서 최대 11점이다. 교통 위반 두세 건이면 충분히 면허 정지 사유가 되고, 운전을 못하게 되면 직장이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서 모두 벌점관리에 엄청 신경 쓴다. 그래서 교통 법규 관련 소송이나 관련 변호사가 많은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벌점 때문이다.)


1주일 뒤 면허증이 집으로 왔다. 연습 면허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는데 "Driver License"라고 적힌 게 너무 뿌듯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엔 방어 운전 수료증도 우편으로 받았다.

보험사에 이메일로 수료증을 보냈더니 다음 달에 할인된 금액만큼을 환불해 준다고 한다. 오... 모든 게 맘에 든다. 정리안 된 것들이 제자리에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이 뿌듯함을 며칠 즐기고 바로 내 옆을 보니, 이제 장롱면허를 갖고 있던 아내가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위기에 노출되고 있었다. 하하... 부부간에는 운전 가르쳐주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아내에게도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우리는 홀가분하게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Let's go to Niagara Falls!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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