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ray ~ November 2022
** 추억의 기록 & 정보의 공유를 위해 Albany 주변의 공연, 스포츠 경기, 이벤트 등에 대해 4편에 걸쳐 기록을 남기려고 합니다.
뉴욕 오면 맨날 MLB/NBA나 브로드웨이 가게 될 줄 알았지? 아니야!
뉴욕에 살면 허구한 날 뉴욕시티로 가서 브로드웨이의 각종 공연이나 MLB 야구, NBA 농구 같은 스포츠 경기도 많이 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한국에서 생각했던 그런 문화 혜택은 대도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쉽게 접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도시까지는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대부분 저녁 공연이라 호텔까지 잡아야 해서 비용도 많이 든다. 이를테면 뉴욕시티 브로드웨이까지 가는데만 서너 시간 걸리고, 우리 셋이서 저녁 공연 하나 보려면 주유/주차/공연티켓/숙박/식비 등 한 번에 1~200만 원 정도는 우습게 쓰게 된다. 그나마 알바니 사니까 이 정도지 미국 진짜 내륙 지역에 살면 유명한 공연 한 번에 비행기 타고 2박 3일은 다녀와야 할 것이다. 그러니 사실 내가 꿈꾸던 것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것들이다.
우리는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매주 주말이 소중하고 뭔가 하고 싶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몇 시간씩 이동하는 건 체력(특히 세은이)과 비용의 문제가 있다. 그러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로컬 정보의 중요성.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뉴욕주 중소도시인 알바니 근처.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뉴욕의 주도(Capital of NYS)로 세워진지 400년이 넘는, 미국 독립 이전부터 있던 도시이다. 이 정도 역사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자주 가는 극장이나 경기장 같은 게 없을 리 없을 것 같다. 그저 내가 모를 뿐이지.
이럴 때는 구글에 찾아보는 게 먼저다. 'Sports near me', 'Theater near me' 'Family event near me' 같이 'near me'를 넣어 검색하면 웬만한 정보는 다 나온다. 'near me'로 힌트를 얻고 나서, 해당 이벤트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재확인하고, 페이스북 그룹에서 여러 사람들의 리뷰까지 읽고 나면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역 라디오나 TV 뉴스에서도 알바니 주변 이벤트 소식을 들을 수 있고, 도서관의 시민권 수업시간에서 Judy와 Damaris에게 물어서 좋은 공연을 소개받기도 했다.
정말 살아있는 로컬 정보를 얻으려면 현지인들처럼 생각하고 같은 모습으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갖고 있는 정보가 부족하면, 한국에서 외워 온 미국의 이미지만 숙제처럼 쫓아다니게 된다. 한국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곳을 다녀오고 나면 자랑 거리, 소중한 추억은 될 거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경험하고 나면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얘깃거리도 된다. 이런 작은 경험들을 쌓아서 현지 사람들과 공통분모를 만들고 인간관계를 넓힐 수도 있으니 멀리 다니려고만 하면 안 될 것 같다.
뉴욕주 스키넥터디(Schenectady)는 알바니 생활권에 속한 도시 중 하나로 허드슨 강변의 트로이(Troy)와 함께 이리 운하(Erie Canal)가 지나는 곳 이어서 제조업이 크게 번성했다. 트로이처럼 이곳도 지금은 쇠락한 지역으로 되어있어서 주재원들 집을 구할 때 가급적 피하라는 지역이었다.
19세기말에 토마스 에디슨은 교통과 물류 그리고 전기(Cohoes Falls 수력 발전소)까지 이점이 있던 이곳에 전자 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1892)을 세웠는데 그 당시엔 미국 전체에서 손에 꼽을 만큼 번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연구소를 제외한 GE의 사업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해 버려서 지금은 많이 작아진 것이라고 한다. 에디슨 박물관, 오래된 대학인 Union College 그리고 몇몇 역사 문화 시설을 통해서 그때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성장 동력이 사라진 미국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스키넥터디 역시 범죄율이 높고 주택가 분위기도 우리가 사는 곳과는 많이 달라서 선뜻 오게 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에겐 트로이에서 당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스키넥터디에는 유명 극장인 프록터스(Proctors Theater)가 있어서 가끔 찾게 되었다. 2600석 정도의 규모로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장보다 조금 더 큰 100년 가까이 된 오페라 극장이다. 수준 높은 뮤지컬, 클래식 공연이 자주 열리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에 이곳에서 'Hero (1993)'의 뮤직비디오를 찍었을 정도로 뉴욕의 유명한 공연장 중 하나다. 미국은 나라가 워낙 넓으니 좋은 극장이 뉴욕시티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지. 이런 곳이 집에서 가까우니 운이 좋다.
Broadway 뮤지컬 투어 - Cats & Aladdin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다가 정말 우연히 스키넥터디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Cats)가 온다는 광고를 듣게 되었다. 보통 캣츠 수준의 유명한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 있는 전용 극장에서만 공연을 하기 때문에 뉴욕시티까지 가지 않으면 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따로 뉴욕시티에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공연인데 미국 투어로 Proctors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캣츠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브로드웨이 공연은 더 이상 예정이 없고 투어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잇다. '음, 어차피 뉴욕시티에 가도 볼 수 없는 공연이었구먼. 오히려 잘 됐다.'
헤이니네에게도 물어봤는데 캣츠가 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같이 예약해서 함께 토요일 오후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공연날엔 극장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입구에 있는 기념품 매대에도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 있다. 오래된 극장이지만 내부는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서 요즘 극장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1층 복도 구석에 있는 작은 방엔 극장 역사에 관련된 사진과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런 건 보기 좋다.
우리 좌석은 2층 발코니석이다. 실내 장식도 고급스럽고 프로그램 북을 나눠주는 할머니 직원들도 친절하다.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뒷줄이라 아주 비싸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사람당 $85이나 들었다. 아마 브로드웨이에서 같은 자리라면 두 배는 내야 했겠지만.
노래로만 접해봤던 캣츠는 그 명성대로 정말 대단했다. 영어 대사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춤과 노래 위주의 공연인 데다 대강의 내용을 미리 공부해서 갔기 때문에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소외된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캣츠 최고의 인기곡 'Memory', 귀엽고 깜찍한 탭댄스를 추던 검비캣,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의 엄청난 독무 그리고 마지막엔 야성의 고양이 럼 텀 터거의 익살스러운 배웅까지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이었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한 가지 좀 아쉬운 건, 어른들은 어떤 식으로든 캣츠를 알고 있지만 세은이나 헤이니는 반강제로 따라와서 그런지 공연 내내 좀 시큰둥해했다. 캣츠라고 해서 귀여운 고양이인줄 알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커서 관심이 생긴다면 다시 와서 보렴.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에 나오니 몇몇 배우들이 분장을 지우고 나와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서 주인공 그리자벨라 사진을 찍고 돌아올 수 있었다.
캣츠를 보고 온 이후, 프록터스 공연 일정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되었다. 프록터스 극장 홈페이지엔 Mean Girl, West Side Story, Come From Away 같이 좋은 뮤지컬들이 일정에 있다. 세은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이라 아쉽지만 패스한다. 혼자라도 가서 볼 걸 그랬나.
몇 달 뒤, 디즈니 뮤지컬 알라딘(Aladdin)이 일정에 있길래 당연히 세은이를 데려가서 봤다. 알라딘도 우리의 브로드웨이 공연 희망 목록에 있던 건데 제 발로 와 주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알라딘은 투어 중에도 브로드웨이 공연을 중단하지 않는다. 투어팀이 별도로 있음) 알라딘은 세은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영화로도 봐서 캣츠보다는 집중해서 잘 보는 것 같다. 이번엔 1층 오케스트라 석에 앉았는데, 확실히 캣츠 때보다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좁은 무대인데도 시장에서의 추격장면이 굉장히 긴박감 있고, 알라딘이 지니를 만나는 화려한 장식이 있는 동굴도 좋았고, 알라딘이 왕자가 되어 수행원들과 행진하며 부르는 'Prince Ali'는 세은이가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래 'A Whole New World'를 부르면서 알라딘과 재스민이 마법 양탄자를 타는데, 정말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위아래 앞 뒤 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정말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참 신기했다. 드론을 탄 건가?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캣츠 때 같은 배우들과 사진 찍을 기회는 없었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운 뮤지컬이었다. 더구나 뉴욕시티까지 안 가도 되니 시간과 돈도 아낄 수 있던 것은 덤이다.
프록터스 공연 다녀온 얘기를 도서관 선생님 Judy와 세은이 과외 선생님 DyAnn에게도 했다. 선생님들 얘기로는, 프록터스에서는 프로들의 공연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연주나 연극이 무료로 열리기도 한단다. 또한 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열리는 장소라서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장소로 기억된다고 한다. DyAnn도 자기 아들이 졸업식을 프록터스에서 했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의 극장에서 학창 시절의 추억이 만들어진다면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된 70년대생 소년의 WWE 직관기 2/4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