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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Nov 03. 2024

33. 미국에서 느낀 한인 사회 '친분'의 벽.

April 2022

(커버 이미지 : 코네티컷 뉴헤이븐 Yale 대학 앞의 카페 입구. 여러 나라 말로 적혀있던 '어서 오십시오'. 모든 사람들을 환영해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곳이 이곳 같지는 않았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 준 미국 사람들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재원들 사이에서 '나머지 사람'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

이곳에 있는 우리 회사 한국 주재원은 총 16명이다. 

본사 연구 팀 인원 비율대로, 두 개의 큰 팀에서 대부분이 선발되고 나머지는 작은 팀에서 일부 선발된다. 나는 그 나머지 파견자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큰 팀 소속 사람들은 새로 오는 사람과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던 관계인데 반해, 나는 파견 동기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으로 올 때 내 마음은, 많지 않은 인원이니까 모르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 같이 어울려 지내지 않을까 했지만 실제론 사람들과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코비드 때문에 오랫동안 출근을 하지 않으니 교류도 없고 누굴 만나자고 연락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회사에서도 감염을 우려해서 사람들이 어울려 다니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전혀 없던 우리 가족은 회사가 눈치까지 주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주재원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정착 노동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파견 동기들도 지금은 각자의 계획, 각자의 인맥을 따라 생활하고 있어서 이제는 아무 때나 연락하거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사람들은 서로 만나는 것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다. 누구와 무엇을 '같이' 했다는 건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숨겨야 하는 비밀 같은 거였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아이를 키우면서 익숙해진 문화, 하지만 약간은 이해하기는 어려운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네만 초대하고 누구는 안 했네.' 같은 구설수가 생기기도 하고 친분이 없는 사람이 눈치 없이 들러붙는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렇다. 미국이라고 해서 한국 문화가 달라질 건 없다.

하지만 여기는 작은 커뮤니티이고 소문이 빠른 곳이라 떠도는 말들을 끼워 맞춰보면 누가 누구와 뭘 하며 지내는지 대충은 알게 된다. 그래도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혼자 다른 부서에서 온 나는 '친분도 없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다른 주재원 가족과 어울리는 것이 순조롭지 않았다. 


아내와 나처럼 어른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상황이지만 세은이는 달랐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세은이는 학교에 친구가 거의 없었고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을 그리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큰 관심 없어 보이는 다른 주재원 가족들에게 부탁하는 입장이 되어야만 했다.

거절당할 줄 알면서 사람들에게 주말 일정을 물어봐야 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내나 세은이에게는 이런 상황을 말할 수도 없으니 말 그대로 나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내는 날이 여러 날 있었다.

그 와중에 헤이니네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었고, 간혹 몇몇 가족들과 식사 자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헤이니네를 제외하면 지속 가능한 만남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조건 없이 환영해 준 미국 사람들보다 16명 있는 한국인 모임이 생각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

도서관이나 미국 동네 이웃들과 있을 때는 항상 내 자리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애써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자리가 나지 않는 느낌이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왜 이리 힘이 들까?


열려있지만 실제로는 닫혀있는 카카오톡 대화방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카카오톡 단체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단체방은 업무 얘기를 하는 곳은 아닌데 분위기가 활발한 것까지는 아니다. 가끔씩 회사/동네 소식이나 여행 정보 같은 것들을 공유한다.

세은이를 위해서라도 이 16명 단체방에서 친분을 좀 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를 끼워줄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아내와 다녀온 맛집, 도서관 수업, 지상파 TV 보는 법, 페이스북에서 찾은 각종 할인 및 시장 정보 같은 것들을 단체방에 공유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동네 또는 주변 이야기보다는 뉴욕시티 또는 보스턴 같은 유명 여행지 정보나 카드 포인트 같은 것들이 더 궁금한 내용인 것 같다.

골프 얘기도 참 많은데 나는 한국에서 골프를 쳐 본 적이 없는 데다 회사일, 도서관 수업, 여행기 작업 등등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가자는 사람도 없었다. 


뭔가를 물어보면 '구글에서 찾아는 봤어요?'같이 무성의한 답변을 들을 때도 있다. 그냥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거나 아무 말 안 해도 될 텐데 무엇에 그리 심통이 난 건지 굳이 이런 식으로 화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구글에 없어서 그래요'라고 되받아치는 것까지는 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렇게 무관심하거나 무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분위기의 대화방에선 말을 아끼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서너 명 모인 별도의 대화방이 있었을 거다. 나는 단체방과 파견 동기들 방 외엔 대화방이 없었는데 유일한 희망 동기들 방은 다들 바빠서인지 몇 달째 아무 대화도 없다. 사실상 망한 방이다.


사람들과 뭔가 좀 어긋나 있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따돌림을 받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굳이 나에게 그렇게 할 이유는 없지 않나? 그냥 관심사가 다르니까, 이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니까 그렇겠지. 다들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거니까. 

솔직히 미국으로 올 때 예상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끼리 의지하고 지낼 줄로만 생각했다. 불리하고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남 탓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혼자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길로 가자. 그러다 보면 새로운 친구가 생기겠지. 미국 사람들과 그랬던 것처럼.


호의는 받지만 마음을 열어주지 않던 사람들

미국에 처음 올 때 하고 싶은 일들은 대부분 멀리 가야 하는 '대단한 것'들이지만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가벼운 것'들이 필요하다. 가는데만 서너 시간 걸리는 뉴욕시티나 보스턴에 주말마다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려면 주변 지역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페이스북이나 라디오 및 TV 지역 뉴스, 도서관 선생님들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고 있기 때문에 다른 주재원들에 비해 알고 있는 게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사소한 것까지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좋은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축제 일정 같은 것들은 대부분 대화방에 공유해 주었다. 혹시 불편해(?)할까 봐 알려줄 때는 같이 가자고는 하지 않았다. 관심 있으면 연락 주시겠지.


하지만 대부분 답이 없었다. 속된 말로 내가 너무 나대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단체방에 정보 알려줄 때는 아무 대답도 없던 사람들을 공연장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개인 톡으로 이것저것 물어봐 놓고는 막상 다녀와선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알려줬으니 나한테 허락받아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고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찾아서 갔겠지. 단지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왜 대화하지 않는 것인가'이다. 

알려준 사람 혹은 같은 공연 보러 가는 사람에게 인사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다녀와서는 '잘 보고 왔어요. 좋았어요/별로였어요.' 이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정보를 받아가기만 하고 그에 대해 응답을 하지 않으니 나도 점점 말 거는 걸 주저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해서인가?

우리 모두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하는 처지인데 서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 시행착오도 줄어들고 좋을 텐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닫혀있는 걸까?


한 번은 주재원 중 한 명이 개인톡을 걸어와서 '부장님이 제일 잘 아시는 것 같아서요'라면서 주말에 근처에서 아이 데리고 볼만한 스포츠를 물어왔다. 

좀 찾아보니 트로이에서 하는 마이너리그 야구(Tri-city Valleycats) 경기가 있었다. 뉴욕시티까지 가는 것보다는 훨씬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개 찾아서 이것저것 알려드렸다.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 잘 다녀오셨는지 궁금한데 통 연락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묻기엔 괜히 캐묻는 것 같고... '일정이 안 맞아서 안 가신 건가'.

그런데 우연히 야구팀 페이스북에 올라온 경기 사진을 보니 그분이 아이들이랑 경기를 보고 온 걸 알게 되었다. 야구팀 사진사가 아이들 웃는 모습이 맘에 들었나 보다.

단톡방에서도 개인톡으로도 다른 얘기는 해도 야구장 얘기는 안 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야구팀 사진사가 가족사진을 예쁘게 찍어서 홈페이지에 업로드해 놓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사진은 알아서 받으셨겠지.

묘한 서운함이 들었다. 나는 이제 신경 끄자.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분이 없으니까 어색해서 그래요"

머지않아 전체 16명 중에 이제 곧 몇 명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순차적으로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니 곧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로 파견 오게 된다. 

Jason은 이번에 새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기존에 있던 주재원들과 1:1 멘토/멘티로 지정해서 적응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나도 멘토가 되어서 신임자에게 도움을 주게 되었다.

내가 신규로 왔을 때도 멘토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코비드가 심할 때라서 멘토에게 도움 받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그 서러움을 잘 기억했다가 새로 오시는 분께는 부족하지 않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 있는 주재원들과는 어색한 면이 없지 않은데, 새로 파견 오는 분들과 새롭게 공감대를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신규 부임자가 미국으로 오기 한 달 전쯤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은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받는 질문들 마다 추억이 떠오르고 그때는 큰일인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별것 아닌 것도 많다. 잘 알려줘야지.


한 달이 금세 지나, 신규 부임자들은 뉴욕에 도착했고 다들 회사 근처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는 멘티가 미국으로 온 다음날 호텔로 찾아가 환영 인사도 하고 당장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도 선물로 주었다. 한국 물건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알려드리고 앞으로 잘 지내기로 하면서.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이 분은 연락을 별로 안 하신다.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내가 먼저 연락을 해봤다. 

내 생각엔 이 시점에는 집을 구하는 게 걱정거리일 거라서 필요하면 우리 집에 와서 미국집 분위기를 느껴보시라고 연락을 했다. 세은이랑 아내와 인사도 하고 나중에 가족이 오시면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잘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집은 이미 많이 봤어요. 부동산에서도 보고 다른 선배들 집도 많이 봐서 더는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다른 일은 다 괜찮으세요? 필요하면 마트도 같이 가도 되고, 도움 필요한 거 편하게 얘기하셔도 괜찮아요."

"네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여기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좀 많아서... 죄송해요. 제가 '친분 없는 분'하고는 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시간 지나면 좋아지겠죠 뭐."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것이지만, 이 분은 일면식도 없는 내가 멘토가 된 것 자체가 불만이었다고 한다. 자기와 친한 사람들 많은데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붙여주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결국 이 분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부러 만날 일도 없었다.)

친분 없는 분. 아... 그렇구나. 나는 주재원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던 거구나. 애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네.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친분 없는 분이라니...


짧은 통화였지만 깨달음이 왔다. 내가 왜 그동안 다른 주재원들과 관계 맺기가 어려웠는지도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발 뻗고 누울 자리가 아니었던 거다. 

기존 친분이 없으니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고, 그래서 비집고 들어갈수록 그 틈은 더욱 좁아졌겠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이것저것 권하니 같이 하기도 어색하고 남들 눈치도 보이고 그랬을 것 같다. 

주말에 뭐 하냐고 물어보면 다들 선약이 있었던 것도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는 점이다.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이미 세워놓은 계획대로 다니고 있는데 친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누굴 원망한다고 달라질 일도 아니다. 누가 나를 괴롭히려고 악한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잘못도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어하는 도서관 얘기 같은 거나 말하고 있었으니 호감이 생겼을 리도 없다. 그러니 어디 다녀와서 피드백 주는 것도 부담이었나 보다. 친해지면 같이 다니자고 할 것 같아서 그랬을까?

아무래도 주재원들은 이곳에 오래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친분이 없는 사람과 굳이 새로 친해져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이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이웃들과도 교류를 안 하는 걸 보면 그런 게 아닐까? 친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고... 그런 처지...

씁쓸하지만 이해는 된다. 각자 살아남기 힘들고 바쁠 텐데 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나 역시도 나름대로 노력하기는 했지만 잘 되지 않았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벽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내가 제외된 것뿐이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잘못은 없다. 단지 내가 밖에 있었고 이 벽은 나에게 너무 높다.


더 이상 가망 없는 곳에 희망을 품을 수는 없다. 이제부터 주재원들 가족에서 세은이의 친구를 찾아주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나는 일을 해야 하니 앞으로도 주재원들과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지만 모든 가족과 친구가 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가능하지도 않고. 좋은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세은이까지 생각하면 함께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인 교회라도 찾아볼까? 한국에서도 한번 가 본 적 없는 교회를 미국에서 외롭다고 다니는 건 너무 민폐 아닌가? 그런데 알바니에 한인교회가 있기는 한가? 교회생각은 하지 말자. 알아보지도 말자. 그 길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서 아내에게 설명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자발적 왕따선언'

"우리는 그냥 우리의 힘만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아.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세은이에겐 미안하지만 애초에 이런 처지라 어쩔 수가 없어. 더 이상 찾거나 기대하지 말자."


아내도 이해하고 공감했다. 어렵겠지만 알겠다고 한다. 자기가 세은이에게 더 신경 쓰겠다고 한다. 그래도 유일하게 우리를 이해해 주고 있는 헤이니네와의 소중한 관계는 잘 유지해야 한다.

주말에 세은이랑 놀아줄 한국 친구를 찾는 건 이제 그만하고 우리 가족끼리 할 수 있는 것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누가 다가온다면 굳이 멀리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미국 온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런 씁쓸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를 지켜봐 주는 미국 이웃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주재원 가족들 앞에 놓인 높다란 친분의 벽은 미국 이웃들 앞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환영받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내에게 도서관 엄마들이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우리 가족이 하나가 되어 잘 헤쳐갈 수 있기만을 바랐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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