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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Sep 15. 2024

27. 재외국민 투표, Boston 나들이

February 2022

(커버이미지 : 대한민국 보스턴 총영사관이 있는 One Gateway Center. 건물 전체를 쓰는 것이 아니고 영사관은 2층 세입자 중 하나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내 휴가, 내 돈, 내 시간 써서 하러 가는 재외국민 투표


한국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하면 해외에 사는 한국 시민권자는 이에 대해 재외국민 투표를 수 있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재외국민 투표를 하려고 한다.

한국처럼 집으로 우편물이 오는 것은 없고 한 달 전에 내가 직접 영사관 홈페이지에서 등록을 하고 직접 영사관을 찾아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 한국의 투표일 기준으로 약 3주 전에 4일 동안 진행된다.

한국에선 투표일이 휴일이고, 투표장소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게 보통이라 투표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선거를 위해 투표를 하러 간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우편 투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영사관까지 직접 가야 하고 재외국민 투표 기간은 미국에서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휴가까지 써야 한다.

미국 내 한국 영사관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큰 도시 10군데에만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지역, 특히 미국 중부에 사는 사람들은 투표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 수도 있다. 운전으로는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없을 거다.


우리는 집에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보스턴 영사관에서 투표하기로 신청을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시간이나 비용을 감수할 만한 정도라고 하겠다.

투표를 하러 가기 위해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야 했고 보스턴 영사관까지 왕복 기름값에 톨비까지 8만 원 정도를 써야 한다. 투표 비용은 생각보다 비싼 편이다.

만약 한국에서 투표하는데 이 정도 시간과 비용,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투표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선 투표를 안 한다고 해도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개표방송 볼 때 '재외국민'으로 표시되는 표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 손해 감수해 가며 만들어진 표들이다. 정말 강한 의지로 만든 한 표인 것이다.

우리도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하기로 했다. 세은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른 아침에 보스턴으로 향했다. 영사관은 보스턴 가기 전에 있는 'Newton'이라는 외곽동네에 있다. 

영사관은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각종 민원서류를 받으러 오는 주민센터 같은 곳이다. 고압적인 분위기의 대사관과는 다른 느낌이다. 아마 '보스턴 동사무소'가 이곳을 설명하는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보스턴 영사관은 세련된 건물의 2층에 아담한 규모로 사무실을 두고 있다. 도착해 보니 입구까지 투표줄이 꽤나 길게 서있었다. 

투표 과정 자체는 한국하고 똑같다. 여권을 보여주고 명단 확인, 투표용지를 받은 뒤, 참관인이 앉아있는 기표에 들어가서 투표하고 밀봉하여 투표함에 넣으면 끝.

여기까지 오기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 좀 허무하게 끝났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런 것도 미국에 왔으니 해보는 경험이다.


돈과 시간을 들여 일부러 여기까지 왔으니 보스턴 시내를 좀 돌아보고 가기로 했다. (참고 : 보스턴 첫 여행 이야기)


보스턴 문화 투어 : 도서관, 미술관


보스턴 공공 도서관

아담한 규모의 보스턴 한인타운(@Allston)에서 점심을 먹고 하버드, MIT 가로질러 찰스강을 남쪽으로 건너서 구시가지에 있는 넓은 광장, 코플리 스퀘어(Copley Square)에 도착했다.

눈이 두껍게 쌓인 이 잔디 광장엔 보스턴의 품격을 상징하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하나는 성공회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이고 다른 하나는 보스턴 공공 도서관(Boston Public Library, McKim Building)이다.

둘 다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며 멀리서 봐도 고풍스럽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트리니티 교회는 코비드로 입장제한이 있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고, 우리는 보스턴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왼쪽) 트리니티 교회에서 바라 본 보스턴 도서관. 건물 정면 외벽엔 'Free to All'이라고 새겨져 있다. (오른쪽) 도서관 계단에 있는 두 마리 사자상
(사진) 보스턴 도서관 열람실인 베이츠 홀

보스턴 도서관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다 (첫 번째는 워싱턴 DC의 의회도서관)1845년에 최초 설립되었고, 우리가 찾아온 본관 McKim Building은 1895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세계 최초의 무료 공공도서관으로 처음부터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는데, 도서관 건물 정면 외벽에 'Free to All'이라는 문구를 크게 새겨놓았다.

이 도서관이 갖고 있는 오래된 역사, 웅장한 건물, 화려한 미술품 보다도 '모두에게 무료'라고 새겨진 이 문구가 이 도서관의 품격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 시대에 책을 무료로 보게 해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단한 발상이다. 나중에 바꾸지 못하도록 건물 벽에 까지 새겨버렸다. 독립한 지 100년도 안된 시점이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당연히 입장료가 없는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 보스턴의 역사적 인물들 조각상들이 있다. 그리고 정면 대리석 계단에 있는 두 마리의 사자상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독립 전쟁에 참전했던 생존자들이 제작해서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복도에는 각종 벽화와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마치 미술관 같은 느낌도 들고, 천장이 높게 설계된 열람실(Bates Hall)은 궁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과거엔 '시민을 위한 궁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서관의 기본 기능인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건 당연히 가능하다. 연령별로 사용할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 청소년 센터도 있다. 

많은 미술 작품과 각종 전시실, 건물 내부의 중정마당, 카페 등등 여러 문화 시설들도 있다. 

홈페이지엔 다른 도서관과 연계된 대여 서비스도 있고, 독서 및 문화 관련 주민 참여 활동도 여러 개가 있다. 

확실히 미국에서도 손에 꼽는 대형 도서관이라 소장 서적도 많고 분위기도 고급스러운 데다가 다양한 활동도 지원되는 것 같다. 보스턴 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거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보스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보통 미국의 도서관은 책을 대여하는 곳만이 아니라 지역주민 대상으로 종합적인 교육과 문화 활동을 담당하는 장소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정보와 학업을 위해서만 도서관을 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업이 끝나면서 더 이상 도서관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도서관은 책을 대여해 주는 곳 & 책 보는 곳이었기 때문에, 책을 직접 사서 집에서 볼 수 있는 경제력이 생기면서 도서관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맘 편히 책을 보기에 도서관은 오히려 불편하다.

그에 반해서 미국 도서관은 책 또는 학업과 관련이 없어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식으로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학업이 끝나도 도서관을 계속 찾게 된다. 

이런 미국의 도서관 문화는 상당히 놀랍고 부러운 것이었다.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Boston Fine Art Museum)은 규모 기준으로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1870년에 설립되었는데 '미술품'만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 박물관에 가까운 곳이다. 

설립 당시엔 보스턴 도서관이 있는 코플리 스퀘어에 있었고 40여 년이 지나 공간이 부족해지자 원래 자리에서 2km쯤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확장하여 옮겨졌다고 한다.

1층엔 이집트 유물, 2층엔 유럽과 미국 작가들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장품이 45만 점이 넘고 그중에 전시 중인 작품은 9,000여 점이나 된다. 하루 만에 모두 다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왼쪽) 보스턴 미술관 입구 (오른쪽) 루벤스의 'Mulay Ahmad (1609)' 당시 아프리카 튀니지 왕의 초상화.
(사진) 에드가 드가의 "14살 어린 무용수"상과 뒤편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도서관과는 달리 미술관은 아쉽게도 무료입장이 아니다. 성인 기본 $25이고 할인 조건에 따라 무료로 입장이 되기도 하니 잘 검색해봐야 한다. 우리는 해당되는 것이 없어서 비용을 다 내었다.

미술책에서 본 것 같은 인상적인 작품도 많다. 모네, 루벤스, 르누아르, 고갱, 고흐, 드가, 피카소 등등 익히 알려진 유럽 화가들 작품이 정말 많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 피카소의 '여인의 초상',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같은 작품들은 교과서에서도 본 굉장히 낯익은 그림들이다. 

특히, 나는 이곳에서 루벤스의 'Mulay Ahmad'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는데, 그 강렬한 이미지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 아프리카 튀니지의 통치자를 그린 초상화. 루벤스는 초상화 주인공을 직접 본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린 초상화만 보고 재해석해서 그린 것이다. 초상화의 원본도 비교하여 볼 수 있는데 루벤스는 한 차원 위의 화가였음이 분명했다.)


세은이에게는 '나중에 미술 시험에 나온다'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다니긴 했지만, 솔직히 10살짜리 아이가 이 수많은 그림과 그것에 얽힌 역사적 지식을 소화하기에 벅찬 건 어쩔 수가 없다.

미술관은 아무래도 어른 취향 여행이라 서로 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학교 교과서에서 다시 이 그림들을 보게 되었을 때라도 오늘의 경험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다행일 것 같다. 

소장품의 절반도 보지 못했고 미술관 중앙의 카페에도 가지 못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런데... 다음이 있을까? 


투표를 핑계 삼아 떠났던 보스턴 문화관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우리 집 근방에도 이런 미술관, 도서관이 있었던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서울로 돌아가면 꼭 찾아봐야겠다. 서울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독립 이후,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예술 수준에 대한 경쟁심이 상당했던 것 같다. 유럽사람들 특히 영국에 대한 열등감 극복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게다가 보스턴은 영국 이민자 출신들이 만든 도시인 동시에 독립의 기점이 된 곳이니 자부심과 자존감이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았을 것이다. 

어렵사리 세계 최강 영국 군대와 싸워서 이기고 나서 온전한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 식민지 사람들은 아마 문화적 승리를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너네가 잘난 척했지만 우리가 훨씬 더 잘해'

그런 관점에서 독립운동의 성지인 보스턴이 일찍부터 세계적인 학교(하버드, MIT), 도서관과 미술관까지 갖추게 된 게 아닐까?


Fonld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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