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22, 여행 13 (3/6)
(커버 이미지 : Wyoming을 지날 때 흔히 볼 수 있는 퇴적 지층. 지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던 모습을 너무도 깨끗하게 관찰할 수 있다. 로키산맥이 걸쳐있는 이 지역은 평균 고도가 2,000m 이상이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Mt. Rushmore의 미국 대통령들 2/6에서 계속
아. 무. 것. 도. 없. 는. 끝없는 황무지
남북한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미국 와이오밍 주에는 58만 명이 살고 있다. 한반도 전체에 포항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와이오밍은 미국 50개 주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시골 중의 시골이다. 미국 사람들조차도 자기 인생에서 와이오밍 출신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을 거다. 반경 1km 내에 사람이 7명도 안 되는 극도로 낮은 인구 밀도(서울의 0.01%)의 이 지역을 운전으로 지나는 일은 굉장히 특별할 것 같다.
호텔을 떠나 10분 정도를 지나자, 황무지라는 단어는 와이오밍을 위해서 만들어진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달려가도 이곳에는 사람도 없고, 동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강도 없도, 산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로는 이 느낌이 다 담기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태어나서 이런 풍경은 처음 봤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
차도 많지 않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계속 달려간다. 3시간 가까이 달리니 화장실만 있는 어느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라고는 하지만 달랑 화장실 하나 있는 곳이다. 메뚜기 날갯짓 소리가 크게 들릴만큼 너무나도 고요하다. 이런 곳까지 우리가 찾아왔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야말로 황야, 그 절대적인 고요함.
볼 것이 없다는 것이 볼거리가 되는 이 길에 '산'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고원,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산은 우리가 아는 산의 개념이 아니라 그저 거대한 흙,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보통 수풀에 가려져 있어서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퇴적지형이 여기선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곳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우리는 작은 마을이 나타나면 잠시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스쳐가는 관광객을 위한 Pass Through Town - 'Dubios, WY'
하지만 이렇게 외진 길을 갈 때는 잠깐 쉬어가는 것도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띄엄띄엄 주유소 하나에 식당 두어 개 있는 아주 작은 휴게소들은 보이는데 이렇게 사람이 뜸한 곳에는 차 세우기를 주저하게 된다. 안 그래도 우리는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아시아인 가족'인데 게다가 영어가 어색한 외국인이기도 하다. 잘은 몰라도 이런 동네에선 아시아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게 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우니 배가 고파도 너무 작은 마을은 그냥 지나친다.
옆자리에서 열심히 지도를 찾아보던 아내는 '뒤부아(Dubois, WY)'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정해주었다.(미국 도로는 인터넷 안 되는 구간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이동경로에 따라 구글 지도를 오프라인용으로 미리 다운로드했다. 로드트립 다닐 때는 정말 필수로 미리 받아야 한다.) 이 길 위엔 마을다운 마을이 없으니 더 찾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딱 그 마을 하나뿐이다. 점심 약간 늦은 시간에 뒤부아에 도착했다.
길 위에 있는 20여 개의 식당, 상점이 이 마을의 전부인가 보다. 그래도 지금껏 지나온 곳 중에는 가장 큰 '도시'같다. 여기는 Pass Through Town, 말 그대로 차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이다. 정말 아주 전형적인 미국 서부 시골 풍경 같다. 와이오밍은 사람 수보다 소가 2배는 더 많은 곳이라 마을의 전체 콘셉트가 카우보이다. 우리는 일단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 Cowboy Cafe의 바깥 자리에 앉았다. 흙먼지가 조금 날렸지만 이것도 카우보이 기분이다.
주문하고 음식을 받았는데 굉장한 오지라서 신선한 식재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수준의 식사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양상추는 꽤 신선하다. 농사를 안 짓는 이곳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신기하다. 하지만 버거 패티는 냉동이다. 튀긴 양파나 감자도 냉동이다. 사람이 많은 뉴욕에선 보기 힘든 Fried Steak 같은 (소고기를 돈가스처럼 조리한 것)도 있다. 이런 메뉴는 일반 Steak보다 고기가 신선할 필요가 없다. 메뉴 구성을 그렇게 찬찬히 보니 역시 이곳은 식자재 수급이 그다지 풍족하지 못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잘 먹었다. 영수증에 적힌 권장 팁이 뉴욕보다 싼 18%여서 흔쾌히 내고 일어섰다. (이런 동네에서 생선을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식사를 마치고 너무도 아담한 이 카우보이 마을을 잠시 둘러보다가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시 황야를 향해 출발한다. 로드트립 갈 때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차에 기름을 가득 넣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차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화나 인터넷은 당연히 안되니까.
출발한 뒤 무려 6시간을 달려와 오늘의 첫 목적지인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와이오밍 주의 서쪽 끝,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바로 남쪽에 있는 곳이다. 아쉽지만 여기서는 한두 시간밖에 시간 여유가 없고, 옐로우스톤으로 바로 이동해야 한다. 국립공원까지 와서 이렇게 짧게 지나는 건 아깝지만 세은이의 4학년 패스가 있으니 이렇게 다녀도 적어도 입장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더 있다면 좋을 텐데... 히스 레저(Heath Ledger)가 주연한 20년 전 옛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의 배경이 된 장소라는데, 실제 촬영은 모두 캐나다에서 했다고 한다. 그냥 장소에 대한 영감만 여기서 받아간 걸로...
그랜드 티턴 공원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산맥이 장관을 만들고 있다. 때마침 도로 옆에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Turnout(정차공간)이 있어서 잠시 차를 세웠다. 록키 산맥의 일부로,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드리워진 산의 정상엔 만년설이 덮여있다. 지금이 8월이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여전히 더운데,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저 산 위에는 눈과 얼음이 쌓여있다. Turnout에 적혀있는 설명에 따르면 가장 높은 산(Mt. Grand Teton)의 높이는 해발 4,200m에 달한다고 한다. 이 공원 일대의 땅의 높이가 2,000m쯤 되니, 산 높이만 2,000m가 넘는다. 한라산만큼 높은 땅 위에 또다시 한라산이 있는 셈이다.
이 정도로 높은 산이니 나무나 풀이 자라지 않는 건 당연하며 눈은 녹지 않고 쌓인다. 학교에서 배운 당연한 지식이지만 직접 와서 실제로 보는 건 신기하다. Devil's Tower와 마찬가지로 이 산들도 직접 등반할 수 있다고 하니, 이런 험준한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주차하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빽빽한 숲에 둘러싸인 큰 호수가 있다. 이름은 '제니 레이크 (Jenny Lake)'. 호수 이름인 '제니'는 와이오밍 지역을 최초로 여행하고 유럽에서 정착한 탐험가(John Colter)의 아메리카 원주민 아내의 이름이라고 한다. 호수 위로는 독수리가 날아다니고 다람쥐(Chipmunk)가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며 잔잔한 호수 위로는 사람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물이 너무 깨끗해서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인다. 호수 너머엔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들이 있어서 풍경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제니 레이크를 벗어나 옐로우스톤 가는 길인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거대한 호수인 잭슨 레이크(Jackson Lake)를 만날 수 있다. 긴 축의 길이가 26km인데 댐으로 만든 인공 호수라고 한다. 잠시 차를 세우고 댐의 둑에 서서 바라본 호수는 그 끝이 한눈에 보이지 않은 광활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물고기를 낚고 있는 낚시꾼도 이 자연의 일부인 듯하다. 모든 게 그림 같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지나 마침내 숲과 산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그랜드 티턴은 맛만 보고 곧바로 옐로우스톤으로 들어가야 했다. 여기서 너무 지체하면 해가 지고 이런 곳에서 곰이라도 만나면 정말 곤란하다. (과장 없는 100% 진심이다.)
두 공원은 바로 붙어있다. 잭슨 레이크를 지나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옐로우스톤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아내가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 국립공원, Yellowstone 4/6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