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2, 여행 12 (1/2)
(커버 이미지 : Fort Willam Park에서 저녁으로 먹은 Maine 주의 대표 특산품 블루베리 소다와 랍스터 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여행을 통해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아주 다양하다. 화려한 도시, 거대한 자연, 미국 문화와 역사 등 여러 주제를 꼽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가장 큰 축이 되는 건 그들 스스로가 'America's Lagest Classroom'이라고 부르는 '국립공원 탐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150여 년 전에 이 세상에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국립공원의 시초가 된 미국의 국립공원
1872년에 미국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우스톤(Yellowstone National Park)은 단지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었다. 그 당시 옐로우스톤이 있는 미국 서부 지역은 그야말로 무법지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지역이었는데, 상업적 개발 가치가 너무나 눈에 보이는 땅을 민간이 아닌 국가가 소유하여 대중에게 개방한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혁신적이라고 생각한다. 경이로운 자연 풍경, 역사/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다 함께 소유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의 장소로 한다는 미국 국립공원의 개념은 현재 모든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정말 100년 앞을 내다본 대단한 혜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역시 1967년, 지리산을 시작으로 하여 현재까지 22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공원이라고 하면 자연 경치 위주로 한정되어 있지만 미국의 국립공원청인 NPS (National Park Service)는 자연, 문화, 역사유산 등을 모두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NPS 산하의 공원들은 성격과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National Park, National Monument, National Seashore, National Lakeshore, National River 등 자연유산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National Histroric Site, National Historical Park, National Battle Field, National Memorial 같은 역사유산에 관한 것들도 국립공원 범주 안에 속해 있다. 물론 여타 다른 공원들에 비해 미국 내에서 'National Park'으로 표기되는 63개의 '국립공원'이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대개 엄청 넓기 때문에 걸어서 다니는 건 어림도 없고 차를 타고 이동해도 며칠씩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죽기 전에 한 번은 가야 하는 관광지'에 꼭 뽑히는 나이아가라 폭포조차도 국립공원은커녕, 그 아래급인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도 되지 못하고 '주립공원 (State Park)'에 머물러 있을 정도니까 미국에서 국립공원이라 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곳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미국 국립공원 중 상당 수가 미대륙의 서쪽에 위치해 있고 특히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옐로우스톤, 그랜드캐년, 데쓰벨리, 요세미티 국립공원 같은 곳들은 미국 중서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뉴욕에 사는 우리에겐 큰 맘먹고 가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미국 국립공원을 처음 가는 것이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서부의 유명한 곳을 당장에 가기보다는 비교적 수월해 보이는 동북부의 유일한 국립공원,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카디아는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아담하고 집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거리(7시간)에 있어서 부담이 좀 덜하다. 세은이도 방학이니 주말에 휴가 하루 붙여서 부담 없이 다녀와야겠다. 서부에 있는 국립공원은 다음 기회에...
Acadia 국립공원 가는 길 : 고속도로 State Welcome Center는 꼭 들르자.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미국의 동북쪽 끝에서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메인(Maine, ME) 주에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메인주에는 특별히 알려진 큰 도시가 없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시골동네라는 이미지가 있다. 랍스터와 블루베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메인주의 중부 해안가에 있는데, 뉴욕에서 가려면 절반은 고속도로, 나머지 절반 구간은 국도로 가야 한다. 메인주는 매우 넓은 곳이지만 시골 동네라 Interstate Highway가 두 개뿐이라 그렇다. 이번 여행 운전 거리는 왕복 900마일, 약 1,500km이다. 우리는 많이 적응되어서 이 정도 거리의 로드트립은 익숙하다. 미국 처음 와서 고작 3시간 거리 있는 뉴욕시티에 처음 갈 때 벌벌 떨었던 걸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꼬박 이틀을 운전해야 했던 플로리다도 두 번이나 다녀왔고, 차를 산 지 1년 만에 운행거리가 45,000km를 넘었을 정도이니 이제 걱정할 건 없을 것 같다.
우리 차를 가져가니 필요한 건 다 가져가고 세은이가 방학이라 일정도 자유로우니 이래저래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긴 운전은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아내는 새로운 주의 경계를 지날 때마다 Welcome Sign 사진 찍기와 Welcome Center 방문하기를 해야 한다며 재미를 주고 싶어 했다. (참고 : 미국에서 운전할 때 알아야 할 것)
아내는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몇 개의 주를 거쳐 왔는지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한다. 각 주의 도로 경계에 세워져 있는 State Welcome Sign은 주 별로 특색 있는 디자인과 문구가 담겨있다. 빠르게 달리면서 찍어야 하니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지 십상이다. 나 보고는 운전을 좀 천천히 잘하란다. 주 경계를 지날 땐 미리 좀 말하라고... '네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 Welcome Center는 로드트립으로 오는 다른 주 사람들에게 관광정보를 요약해서 홍보하는 조금은 특별한 휴게소다. 깨끗하고 친절한 분위기인데 공짜 지도와 팸플릿 또는 쿠폰 같은 것이 많아서 미처 알지 못했던 여행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Welcome Center 마다 방문 사진을 남기는 것도 우리 가족 로드트립 루틴이 되었다.
뉴욕에서 I-90을 타고 매사추세츠에 와서 I-95를 따라가다 보면 뉴햄프셔(New Hanpshire)에 닿게 된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Welcome Center에 들렀다. 뉴햄프셔는 미국에서 복권 사업을 처음 시작한 복권의 고향인데 그래서인지 Welcome Center에 복권자판기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뉴햄프셔에 온 기념으로 당첨금이 무려 1조에 달했던 Mega Million을 한 장($2) 사 봤다. (물론 되지 않았다. 1등에 당첨되었다면 아마 이런 글이 아닌 전혀 다른 주제의 글을 쓰고 있었을 거다.)
소중한 복권에 큰 기대를 하며 다시 출발한다. 뉴햄프셔를 지나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메인 Welcome Center는 그 명성에 걸맞게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입구에는 'Smokey'라는 명찰을 한 다람쥐 소방관이 그 이름처럼 오늘의 산불 지수를 알려주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역시나' 블루베리를 무료로 시식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역시나' 랍스터 인형과 어부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랍스터 통발도 볼 수 있어서 어떻게 잡는지 나름 공부도 된다. 무료 지도와 고래 관광 안내 팸플릿 몇 장을 챙겨서 나왔다.
Maine의 '작은' 도시 Portland : 오래된 등대와 시인 - Fort Williams Park
늦은 오후에 고속도로의 끝에 있는 비교적 큰 도시인 포틀랜드(Portland, ME)에 도착했다. 포틀랜드가 메인 주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 2개 동(洞) 정도의 인구 수준(65,000명)이라 아담 분위기다. 그리고 미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에 접한 오레건에는 같은 이름의 10배 정도 큰 포틀랜드(Portland, OR)가 있기 때문에 메인 포틀랜드는 미국인들에게도 그다지 존재감이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도시 크기는 작지만 굉장히 오래된 도시이고 건물이나 도로 풍경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포틀랜드엔 미국 초기 해군기지가 있었는데, 도시 외곽 바닷가에는 예전 군사 요새로 쓰였던 Fort Williams Park가 있다. 공원 입장료는 따로 없고 주차비 $5만 내면 된다. 오후 느지막이 도착해 보니 사람이 그리 많진 않다. 잘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넓고 야트막한 잔디 언덕을 올라가면 제일 안쪽에 바다 닿은 곳에 메인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가 보인다. 무려 1791년에 지어진 'Portland Head Light'.
하얀색의 등대 건물과 등대지기를 위한 빨간 지붕의 집이 바닷가 바위 언덕 위에 서 있다. 북대서양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등대 옆에는 작은 안내문이 적혀있는데, 19세기 포틀랜드 출신으로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교수로 유명했던 작가 헨리 롱펠로우가 자주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 등대는 그의 시 'The Lighthouse'의 배경이 된 곳이다.)
공원을 다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 입구에 있는 푸드트럭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블루베리 소다와 랍스터 롤을 팔고 있었는데 메인에 여행 와서 먹기에 아주 적절한 메뉴다. '왜 랍스터 롤은 샌드위치라고 안 하고 롤이라고 하지?' 같은 얘기를 나누면서(처음 발명했을 때, 랍스터 내용물을 빵으로 완전히 감싸는 롤의 모양이었기 때문) 공원에서 한가롭게 이른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본격적인 미국 국립공원 여행을 하게 된다.
숙소에서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거리상 그리 멀지 않지만 좁은 국도로 가야 해서 여유 있게 천천히 가야 한다. 지나면서 보이는 시골마을의 풍경을 정겹게 보면서 지나간다. 세은이는 우리가 진짜 뉴욕(세은이의 진짜 뉴욕 = NYC)이 아닌 시골에 살고 있다며 아빠한테 속았다고 말하곤 했다. 어허... 이 어린이 뭘 잘 모르는구먼.
"세은아, 이런 곳이 진짜 미국 시골 동네야. 집에 저런 농장정도는 바로 붙어 있어야 시골이지."
뒷자리 우리 어린이가 '어처구니없음 + 묘한 반발심 + 딱히 할 말 없음'이 묘하게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다.
미국 초등학교 4학년은 모든 국립공원이 무료!
우리는 세은이의 방학이 끝나기 전에 국립공원을 와야 했던 이유가 하나 있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4학년은 국립공원이 무료이다. 아이가 4학년인 기간, 즉 4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그다음 해 8월까지 무료로 국립공원을 갈 수 있다. 홈페이지(https://everykidoutdoors.gov/index.htm)에서 미리 신청하고 신청서를 출력해서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로 가져가면 4학년 Pass를 발급해준다고 한다. 세은이는 미국에 오자마자 4학년이었지만 우리가 국립공원까지 다닐만한 내공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야 오게 되었다. 지금 Pass를 받으면 8월 말까지 두 달 정도 쓸 수 있다. 입장료가 보통 차 한대당 $30 정도는 하기 때문에 나름 쏠쏠하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게이트 바로 밖 초입에 있는 방문자 센터부터 찾아갔다. 안내소에 가서 4학년 Pass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직원이 "4학년 어린이 어디 있나요?"라며 묻는다.
직원은 우리에게 세은이만 두고 한두 발짝 떨어져 있으라고 하면서, 아이에게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학년을 묻는다. 순간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세은이가 정답을 잘 말해주었고 직원이 "Ok, Good"이라고 하면서 패스 카드를 준비해 준다. 이런 식으로 확인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평소에 세은이에게 미국 나이를 주입시켜 놓은 게 도움이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대부분 차를 타고 구경하는 곳이라서 Pass를 차 앞유리에 걸어두게 되어있다. 밖에서도 잘 보이게 룸미러 지지대에 걸 수 있도록 홀더도 같이 준다. 자 이제 미션도 완수되었고 방문자 센터에서 기념품까지 샀으니 즐기러 가면 된다.
방문자 센터를 지나 아카디아 국립공원 케이트에 들어서니 가장 기본요금인 '7일간 유효한 차량 한 대당 요금'이 $30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4학년 어린이가 있으니 걱정이 없다. 매표소 직원은 차 앞에 달린 Pass를 보더니 "Where's Your 4th Grader?"라고 묻는다. 창문을 내린 세은이가 수줍게 "Hi"하니 그제야 좋은 여행 되라며 보내준다. 나름 꼼꼼한데?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 국립공원에 들어간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 아카디아를 돌아보려고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짧은 일정이 벌써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