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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행11-2: 공원, 호수, 농구 그리고 시카고

May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이미지 : 시카고 외곽에 위치한 NBA 농구팀 Chicago Bulls의 홈구장 United Center. 건물 외벽엔 황소 Logo가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시카고까지 하루운전 1,300km'에서 계속


셋째 날 : 윌리스 타워, 밀레니엄 공원, 시카고 불스, 미시간 호수

이번 시카고 여행은 3박 4일이지만 운전해서 올 때 하루, 다시 갈 때 하루를 써야 해서 실제 여행 시간은 딱 이틀뿐이다. 오늘이 그 이틀 중 마지막 날인데 어제 보지 못했던 시내의 일부와 외곽에 있는 몇 군데를 다녀올 생각이다. 다행히도 시내 주차장(Grant Park Garage)은 예약한 시간 동안 차를 자유롭게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주차 걱정을 좀 덜긴 했다. 일단 아침에 호텔을 나오자마자 미시간 호수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루프(The Loop)는 시카고의 중심이지만 일요일 아침이라 거리가 한산하다.


시카고 The Loop 거리 - 지하철 & 금융지구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점은 도로 위를 달리는 지하철이었다. 지하철이 아니고 고가도로를 달리는 지상철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과 비슷하긴 해서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게 없지만 서울 지하철은 콘크리트와 방음벽으로 일반 도로 또는 주변 시설과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반면, 시카고에서는 방음벽도 없고 밑에서 볼 때 철로가 그야말로 개방되어 있다.

철로 바로 아래엔 차들이 다니고 심지어 신호등도 철도 아래에 달려있다. 주변 상가에 열차 소음이 너무 크지는 않을지, 밑으로 지나는 차에 뭐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무려 100년도 넘는 지하철이라고 하니 문제없도록 조치가 되어 있겠지만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면 이 근방에서 일하거나 운전하기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열차 지나는 소리는 꽤 시끄럽다. 그래도 분위기가 좀 묘한 점이 있다고 할까? 시카고의 전철은 영화 배경으로 자주 나오곤 한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다크나이트 등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특히 스파이더맨 2의 전철 액션신은 굉장히 볼만했다.

(이런 형태의 고가전철은 뉴욕시티에는 시카고보다 무려 30여 년이나 앞서서 19세기 중반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뉴욕에선 폭설과 강풍으로 인한 대형 사고가 있어서, 그 이후엔 도심구간을 지하화 하여 1904년에 '지하'철로 재개통하였다고 한다. 현재도 뉴욕시티의 지하철 외곽구간은 고가 철로로 운행하고 있는데, 뉴욕시티의 분위기는 시카고 같이 정돈된 느낌이 아니다.)


우리는 웨스트 잭슨 대로(West Jackson Boulevard) 쪽으로 들어섰다. 이 길에는 시카고가 왜 뉴욕시티 버금가는 금융의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있다. 국세청(IRS)과 시카고 연방준비은행뿐 아니라 전 세계 곡물의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가 있다. 사실 농산물뿐 아니라 각종 선물과, 옵션 등을 파는 곳으로, 뉴욕시티 증권거래소가 주식을 거래하는 곳이라면 시카고는 그 외의 모든 것을 사고파는 곳이다. 세계 경제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시카고 상품거래소는 100년도 넘은 곳이라 그 건물이 한눈에 봐도 눈에 띈다. 워낙 유명한 곳이니 안에 들어가 보고 싶긴 했는데 코비드 때문에 실내 구경이 어렵거니와 세은이한테 설명하기 복잡한 이런 곳은 아무래도 좀 시간 쓰기가 어렵다. 계획된 곳이 아니니, 오징어 게임의 상우가 말하던 '선물(先物)'은 'Gift'가 아니라 'Futures'라는 것 정도만 아내에게 알려주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 길을 따라 시카고 강이 나올 때까지 서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오늘 오전 일정 목적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윌리스 타워가 있다.

20220529_071745.jpg (사진) 고가 철로를 달리는 시카고의 전철 'L'. '들어 올려진(Elevated)'이라는 뜻이다. 방음벽도 없이 도시 중심지를 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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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윌리스 타워 전망대로 가는 엘레베이터. 전망대는 103층에 있다. (오른쪽) 윌리스 타워 전망대 Sky Deck의 Ledge. 건물 밖으로 돌출되어있고 바닥이 투명하다.
윌리스 타워 : Sky Deck of Willis Tower

미국의 유명 항공사 United Airline의 본사가 있는 윌리스 타워는 1998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442m)이었고 불과 10년 전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잠실 롯데타워(555m) 보다도 작지만 시카고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빌딩이다. 건물이 지어진 이후 30여 년 넘게 '시어스 타워(Sears, 시카고 기반의 유통업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5년 전에 건물이 매각되어 현재의 이름인 윌리스 타워로 바뀌었다.

뉴욕시티에서처럼 시카고의 고층 건물들마다 각기 특색 있는 전망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윌리스 타워 103층에 있는 Sky Deck이 그중에서도 유명한 편이다. 우리는 Sky Deck을 아침 첫 시간으로 예약했다. 윌리스 타워의 분위기는 뉴욕시티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사뭇 비슷하다. 아침 첫 시간이라 그런지 유명한 정도에 비해 사람이 많진 않다. Ticket 확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른다. 103층까지 엄청 빠르게 올라오는데 내부 영상으로 건물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전망대에선 시카고 전경을 빙 둘러서 볼 수 있게 되어있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시카고 시내와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봐도 호수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높은 건물에서 경치를 보는 건 아름답지만 우리가 단순히 경치 구경을 하러 Sky deck까지 온건 아니다. Sky deck 전망대에는 Ledge(튀어나온 선반을 뜻함)라고 부르는, 사방과 천장 및 바닥이 모두 통유리로 된 두세 평 정도의 돌출된 부분이 있다. 이게 건물 외부에 나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서면 시카고 상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알고 왔지만 실물을 확인한 아내는 기겁을 하고 세은이는 신이 났다. (약 10년 전 바닥 유리 한 장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유리는 여러 장이기 때문에 안전상 문제는 없었다고.)

너무나 인기가 있는 나머지 Ledge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티켓 하나당 1분으로 정해져 있다. 다시 줄을 서는 것도 받아주지 않는다. 기회는 딱 한 번이다. 줄을 서는 동안 미리 포즈를 연습해 두라고 안내문에 적혀있을 정도로 극도의 효율이 필요한 곳이다. Ledge에 들어서면 티켓을 스캐너로 찍은 뒤 타이머로 1분을 잰다. 바닥에 기대앉고, 폴짝 뛰고, 혼자 찍고, 다 같이 찍고...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다. 이렇게 오기 어려운 곳에 왔는데 고작 1분이라니 너무 야박하다. 시간이 촉박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시카고 하늘 위를 뛰어오르는 듯한 세은이의 점프샷을 찍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다.


전망대를 마저 다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와서 그제야 커피와 도넛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단체 관광을 왔는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일찍 오길 잘한 것 같다.


밀레니엄 파크 : 66번 도로, 크라운 분수, 클라우드 게이트

시카고에 와서 가봐야 할 곳을 딱 한 곳만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라고 할 수 있다. 미시간 호수변에 있는 공원의 일부인데 그리 오래된 곳은 아니다. 새천년인 2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지만 완공은 4년이나 지연되어 2004년에 개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막상 와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큰 공연장, 야외 정원, 독특한 모양의 다리들, 광장 및 조경, 공원 지하 주차장 등등 이 정도의 공사라면 지연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엄 파크 옆으로는 버킹엄 분수가 있는 그랜트 파크, 그 앞으로는 호수변 공원과 미시간 호수가 있어서 이 지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단지 같다. 바로 옆에는 시카고 미술관이 붙어 있어서 예술적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이 공원에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다. 더 빈(The Bean, 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데, 시카고에 오는 사람은 모두 와보지 않았을까?

밀레니엄 파크 조성 시에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품인데 이제는 명실상부 시카고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 독특한 모양은 수은의 둥근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했다고 한다. 전체를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서 반짝이게 했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이고 가까이에 가면 이음새 없이 완전히 매끈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가 지은 이름처럼 구름의 양끝이 땅에 닿아있는 모습의 문이다. 'Gate'이기 때문에 작품 밑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다. 작품의 전체가 스테인리스여서 오목거울, 볼록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에 비쳐 보이는 모습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멀리서, 가까이에서, 이 '콩'의 아래 부분에서 재미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카고를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북적거리기 때문에 우리끼리 사진을 찍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즐거워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사진에 남겨지는 것도 좋은 추억이겠다.

[꾸미기]20220529_112136.jpg (사진) 밀레니엄 파크의 Cloud Gate. 구름보다는 'The Bean', 콩이라는 별명으로 더 익숙한 시카고의 랜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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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크라운 분수대. 사진 양쪽 끝 인물의 입 부분에서 물이 나온다. 평범한 시카고 사람들의 얼굴이다. (오른쪽) Route 66의 시작을 알려주는 표지판

밀레니엄 파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는, 클라우드 게이트에서 아주 가까운 크라운 분수대(Crown Fountain)다. 사실 이름만 '분수대'일 뿐 기존의 분수대 개념과는 상당히 다른 시설이다.

건물 4층 높이 정도의 큰 사각형 구조물 2개가 50미터 정도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각 구조물의 정면엔 커다란 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평범한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이 랜덤 하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얼굴의 입 부분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얼굴도 물을 뿜는 표정을 한다.) LED 전광판 뒷면으로는 폭포처럼 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라면 크라운 분수대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코비드 기간이라 분수가 나오지 않아서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들만 신나게 돈을 벌고 있었다. 오래 걷느라 힘들어하는 우리 어린이 입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물리고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한가롭게 구경하며 쉬는 시간을 좀 가졌다. 공원 참 좋다. 분수대에 물까지 나왔으면 몇 시간도 있었겠다.


밀레니엄 파크를 나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시카고 미술관 쪽으로 걷다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포인트가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66번 도로의 시작 표지판이다.

미국의 66번 도로는 1920년대에 완성된 3,900km에 달하는 미국 최초의 동서방향 대륙 횡단 도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삶을 개척하기 위해 66번 도로를 통해 서부로 길을 떠났다. 가도 가도 황무지인 험난한 길. 말 그대로 '고생길'이었을 것이다. 그 시작점은 시카고 미술관 정문 길 건너편에 있는데, 종점인 산타모니카에서는 꽤나 떠들썩하게 꾸며진 반면 시카고에는 기념품점도 없다. 약간 썰렁한 느낌. 산타모니카는 그 먼 길을 헤치고 도착한 사람들을 축하해 주는 느낌이 있었다면, 시카고는 단순한 사건의 기록(?) 정도의 느낌이다. 우리도 간단히 사진을 찍고 이동한다.

(길이 양방 통행이면 길의 시작과 끝이 같은 곳이기 때문에 시작 표지판 바로 옆에 종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 대도시가 보통 그렇듯이 시카고 시내 도로도 대부분 일방통행 길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시카고에선 66번 도로 시작 표지판과 종점 표지판은 한 블록 떨어져 있다. 산타모니카에서는 두 개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 United Center - "The House that Jordan Built"

밀레니엄 파크에서 차로 15분 정도를 가면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팀, 한때 전 세계의 남자아이들의 시선을 향하게 했던 NBA 농구팀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의 홈구장이 있다. '유나이티드 센터 (United Center)'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농구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그와 동시에 해외 콘텐츠들이 한국으로 조금씩 들어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덕에 초등학교 때 '농구대잔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 '슬램덩크'를 만화책으로 보고, 고등학생 때는 'NBA Final 비디오'를 친구집에 모여서 보곤 했다.

당시 전 세계 최고의 농구 스타는 단연코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다. 농구를 보지 않는 사람도 그 이름을 모를 수는 없을 거다. 아마 지금 초등학생도 알 법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시카고 불스는 팀 창단 이후 현재까지 NBA우승 횟수가 6번인데 그 6번의 우승 모두 마이클 조던이 가져다준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떠난 이래로 시카고는 우승이 없다. 팀 통산 우승 6번은 NBA 전체 30개 팀 중에서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니 마이클 조던이 정말 어마어마한 선수였음에는 분명하다. (우승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무자비하고 교활하게 대했던 모습은 그의 또 다른 면모지만) 그래서 이 홈구장의 별명은 'The House that Jordan Built (조던이 세운 집)'다. 마이클 조던은 사실 아직까지도 시카고 불스의 상징 그 자체다. 소싯적 체육시간에 농구깨나 하고 놀았던 나로서는 시카고까지 와서 '조던이 세운 집'을 안 가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비록 세은이는 큰 관심 없어 보였지만... 지금은 현재의 어린이보다는 30년 전 어린이의 의견이 더 중요해.


경기가 없는 날이라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다. United Center는 NBA의 시카고 불스와 NHL의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함께 쓰는 경기장이다. 우리가 저번에 디즈니 아이스쇼를 봤던 MVP Arena도 이런 식의 다목적 경기장이라 이런 상황이 특별한 건 아니다. 그래서 건물 외벽엔 농구팀과 하키팀의 로고가 크게 붙어있다. 경기장 입구에는 하키 선수들의 동상이 있다.

실내에 들어가면 마이클 조던의 동상이 입구 정면에 있다. 악령처럼 묘사된 수비수들을 특유의 포즈로 뛰어넘는 모습이 예전 경기하던 그 모습 그대로 같다. 아내와 세은이는 내가 가고 싶다니까 그냥 따라온 거겠지만, 나는 이 동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나는 한동안 동상을 쳐다보면서 경기장 로비를 서성이고 있었다. WWE 프로레슬링을 보러 갔을 때처럼 옛날 그 당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다.

경기가 없는 날이니 마이클 조던의 동상을 보는 것 말고 여기서 더 할 일은 없다. 사진을 찍고 나서 기념품점에 가서 모자 같은 거나 하나 사려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조금 비싸 보이는 재킷 하나를 덥석 집어주더니 이걸로 하나 사라고 한다. 동상을 멍하게 쳐다보던 모습이 짠해 보였나 보다.

나는 아내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맙소.

20220529_130745.jpg (사진) 유나이티드 센터 내부에 있는 마이클 조던의 동상. 2년간 은퇴 후 복귀했기 때문에 선수 경력이 두 줄로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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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미시건 호수 옆 링컨 공원 주차장에서 고속도로를 넘어가는 다리에서 본 노스 애비뉴 비치 (오른쪽) 잔잔한 파도가 치는 미시건 호수
바다 같은 Lake Michigan의 호변(湖邊, Lake Beach)

우리의 시카고에서 마지막 일정은 미시간 호수다. 시카고가 접한 미시간 호수는 5대호 중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비행기를 타고 지나도 한참을 가야 그 끝이 보이는 호수다. 호수의 주변엔 모래사장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호수가 많지 않은 한국에선 해변이 아닌 '호변'이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하지만 호수가 많은 미국에선 바다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해변' 즉 Sea shore, Ocean beach 뿐만 아니라 '호변' Lake shore, Lake beach도 많이 쓰이는 말이다.

어제 리버투어를 할 때 미리 봐뒀던 네이비 피어(Navy Pier)를 가 보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사람이 너무 많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경찰이 길에 서서 차를 세우지 말고 계속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유원지처럼 되어있고 호변이 가까이 있어서 좋아 보였는데 남들에게도 다 좋은 곳이라 자리가 없나 보다. 그렇게 하염없이 운전만 하고 있는데 아내가 약간 북쪽에 있는 호변(North Avenue Beach) 하나를 찾았다. 근처에 큰 동물원(Lincoln Park Zoo)이 있어서 주차장도 해결될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동물원까지는 갈 수 없겠지만 주차장이라도 찾아낸 게 다행이다. 물론 주차비는 싸지 않지만 시카고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나서 고속도로를 넘어 호수로 가는 다리 입구엔 주류 반입금지 경고판이 크게 있었다. 위반 시 체포된다는 말도 크게 쓰여있다. 미국에선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야외 공간에서 음주가 금지된다. 여기는 애완동물을 데려올 수도 없는 곳이다.

어제와는 다르게 날이 따뜻하다. 고운 모래가 살짝 뜨겁게 느껴진다. 바다 같은 호수를 즐기는 사람이 매우 많다. 넓디넓은 미국이니 미국인이라고 해도 이런 경험이 흔하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 물에서 짠내만 안 날뿐 바다에 있는지 호수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바다도 아닌데 갈매기도 있다. 한강 유람선에도 갈매기가 있지만 여기는 바다가 2,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인데... 미국 생활은 가끔 나의 상식을 파괴한다.

갈매기 얘기에 낄낄대며 세은이랑 파도치는 호수에서 모래성을 쌓고 추억도 쌓는다. 이런 것도 미국이 아니라면 어디서 해볼까 싶다.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의 명물 Deep Dish Pizza(@Giordano)를 저녁으로 먹는 것으로 우리의 시카고 여행 마지막 일정이 즐거운 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넷째 날 : 돌아가는 날, 대출받은 시간의 대가

쉬는 날 4일 휴가 중에 이틀간의 시카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코비드 때문에 하지 못한 것도 있고 제한도 많아서 아쉽기도 하다. 뉴욕에서 시카고로 올 때는 한 시간을 대출받아 썼는데, 돌아갈 때는 고스란히 갚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이른 시간인 6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동부로 가는 길은 밤이 빨리 오기 때문에 밤 운전을 피하려면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한다.

밀레니엄 파크엔 아무도 없다. 잠깐 들어가서 텅 빈 클라우드 게이트 사진을 찍어보고 싶긴 하지만 출입문은 닫혀있다. 북적대던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 이상하다. 일찍 일어난 탓에 세은이가 매우 피곤해한다. 잠옷 입은 채로 차에 오른다. '얼른 다시 자렴. 좀 불편하겠지만. 뉴욕 우리 집으로 가자.'


다시 13시간 운전에 들어선다. 돌아갈 때 꼭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올 때는 몰라서 놓쳤던 시간 변경선 안내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고 놓고 싶었다. 인디애나 주의 중간쯤을 지나는 지점에 표지판이 있었는데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지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닦달해서 15분 정도 핸드폰을 들고 대기하게 했다. 아내는 툴툴거렸지만 결국 간신히 성공했다. 지금껏 미국 와서 찍은 사진 중에 제일 찍기 어려운 사진이었던 듯하다. 3일 전 무이자로 대출받았던 1시간이 전액 상환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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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새벽, 밀레니엄 공원의 모습. 공원 지하는 주차장이다. (오른쪽) 중부시간(CST)를 지나 동부시간(EST)로 들어갈때 보이는 표지판.

여름이 되어가는 미국의 들길, 숲길을 따라 시간을 앞으로 달려서 13시간 걸려 마침내 돌아온 우리 집.

또다시 성공으로 마친 우리의 로드트립에 늘 그랬듯이 집에 돌아와 차고 앞에서 다 같이 박수를 쳤다.


노동절의 역사 : 시카고 Haymarket

여행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꼭 갔어야 했는데 깜빡 잊고 가지 못한 곳이 있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Haymarket Memorial을 가봤어야 했다. 대단한 관광지는 아니고 길가에 있는 조각상일 뿐이라서 차로 잠깐 들르기만 하면 되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Haymarket Affair'는 1886년 5월에 시카고에서 일어난 노동운동을 말한다. 그 당시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시카고 Haymarket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있을 때, 원인을 알지 못하는 폭발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다. 폭발에 의해 경찰관의 피해가 발생하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서 추가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 것을 빌미로 노동단체 지도부를 대거 구속, 사형에 까지 처했는데, 노동단체와 폭탄 테러를 연관 지을 수 있는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물론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 미국도 그 당시엔 야만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Haymarket 사건은 사람들에게 노동자 탄압의 대표 사례로 인식되어, 정치가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미국 전국의 노동자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많은 시위에 나서게 된다. 그 이후 이 사건은 세계 노동 운동 조직화의 촉매가 되어 많은 나라의 노동조합이 서로 연대하기에 까지 이르게 된다. 당시의 국제 노동운동 조직(Second International, 1889)에서는 전 세계의 노동조합 연대를 기념하는 날을 Haymarket Affair가 발생했던 5월 1일로 정하였다. 그렇다, 그 날이 바로 한국의 직장인들도 휴일로 쉬고 있는 '노동절(International Worker's Day)'이다. 시카고 Haymarket은 전 세계 노동절의 기원이 된 곳이고, 시위가 있던 자리에는 기념 조각상이 있다.


한 가지 씁쓸한 것은, 세계 노동절의 기원이 미국 시카고 시위와 관계된 것인데 정작 미국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고 9월 첫째 월요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노동절을 미국의 공휴일로 정할 당시(클리블랜드 대통령, 1894), 가족 활동 지원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9월 첫 주로 정했는데, 실제론 당연히 노동조합의 결집을 우려해서 그랬던 것이다. 노동계의 반발이 컸지만 솔직히 9월 첫 주 월요일은 날짜가 너무 좋다. 가을이 시작되어 날씨도 좋고 아이들 방학 끝나기 바로 전이기 때문에. 그렇게 미국의 노동절은 9월로 굳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같은 이유로 노동절을 3월 10일로 정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군부통치가 온전히 끝난 이후인 1994년도에 5월 1일로 재 지정되었다.


잠깐이라도 갔어야 했고,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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