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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풍 Dec 10. 2018

민폐의 본질

정중함은 인간성의 꽃이다

민폐(民弊)와 자본


미세먼지와 갑질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처벌이 어려운, 법과 도덕 사이 경계를 민폐(民弊)라 한다. '민간에 끼치는 폐해'란 뜻으로, 백성을 쥐어짜는 탐관오리, 민가를 약탈하는 군인처럼 처벌받지 않는 권력을 비판하는 말이다. 요즘은 그 쓰임이 무뎌져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 속 민폐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지하철 쩍벌남 같은 '진상', 편의점에서 행패 부리는 '손놈', 그 밖에 왕따, 똥 군기, 갑질, 꼰대 모두 민폐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명백한 잘못이지만 처벌받지는 않는다. 인권이나 재산권과 달리, 감정적 피해는 형법상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민법상 원인과 피해 규명이 어렵다. 인종차별과 성범죄를 제외한 대부분의 감정적 권리는 사회 규범 영역에 속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감능력을 갖고 있고 어릴적 부터 사회성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아무 감정이나 죄의식 없이 원주민을 살던 땅에서 내쫏거나, 나라를 통째로 빼앗는 등 역사 속 오랜기간 착취를 일삼았다. 하지만 집단 속 인간의 비 인륜적 행태는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요즘 이런 국가차원의 민폐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기업을 통해 미세먼지를 내뿜고, 우월한 지위를 내세우며 갑질을 시전 한다.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지만, 매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특히 갑질은 유독 한국사회에 만연한 현상으로, 분노장애, 을(乙) 성애 욕, 엽기 행각 등 그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더 심각한 건 이런 폐습(弊習)이 '대물림'되는 현실이다.


갑질 신동(神童)


아저씨가 죽으면 좋겠어.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시키고 이상했던 거야.
돈 벌거면 똑바로 벌어.
- 조선일보 손녀 (10세) -


갑질과 조기교육.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10세 아이는 57세 운전사에게 어른 대접은 커녕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신분제를 넘은 종(種) 차별 수준이다. 자신을 짜증 나게 한 벌레를 향해 해충제를 살포하듯 자신의 힘을 행사한다. 자본이란 칼을 쥔 아이는 사회규범도 모른 체 위험천만한 춤을 춘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부모는 어떤 삶을 살까? 조부모의 행적은 어떨까?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 하지 않던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故 장자연 씨 사건에 이런 '물증'이 나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충격에 빠져야 할까. 어른이 추는 야만스런 칼춤은 우리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을까.


우리 선조는 유독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전쟁과 혼란 속 오랜기간 살았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했다. 사회규범과 예절, 그리고 매너와 에티켓으로 갈등을 극복했다. 가장 현명한 공존법이기 때문이다. 상호 존중하는 문화는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요소다. 정중함은 문명사회에의 기본 덕목이다.


메이와쿠(迷惑) 문화


정중함을 논하면 일본 메이와쿠(迷惑) 문화가 떠오른다. 섬나라인 일본은 화(和)를 중시한다. 고립된 섬의 다툼은 전쟁으로 이어진다. 결국 다 함께 멸망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타닌니 메이와쿠오 가케루나(他人に 迷惑をかけるな)', 즉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가르친다. 무례함은 사회질서를 무너뜨려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메이와쿠는 한자로 '미혹할 미(迷)'와 '미혹할 혹(惑)'을 쓴다. 쉬엄쉬엄 갈 착(辵→辶)과 쌀 미(米)를 쓰는 미(迷)는 갈림길에서 헤맨다는 의미로 미신, 미로, 미아 등에 쓰인다. 유혹할 때 쓰는 혹(惑)과 더해져 미혹(迷惑)이 된다. 사회질서를 혼란스럽게 어지럽힌다는 의미다.


메이와쿠는 어릴 적 몸에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나이가 들면 점점 학습이 어려워진다. 청소년 범죄는 교정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성인 범죄는 엄중히 죄를 묻는 이유다. 그래서 일본 초등학교 사회 과정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사회성과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가르친다.


<2학년> (1) 기분 좋은 인사, 말씨, 동작 등에 유의하고, 항상 밝게 접한다. (2) 어린 사람이나 노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친절히 대한다. (3)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돕는다. (4) 평소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4학년> (1) 예의의 소중함을 알고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한다. (2) 상대를 배려 기꺼이 친절하게 대한다. (3) 친구와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고 돕는다. (4) 생활을 지원하는 사람들과 고령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대한다.

<6학년> (1) 때와 장소를 가리지 하고 정중 성심껏 한다. (2) 모든 사람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친절하게 한다. (3) 서로 신뢰하고 배우고 서로 우정을 깊게, 남녀는 사이좋게 협력하고 돕는다. (4) 겸손한 마음을 갖고, 넓은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입장을 소중히 한다. (5) 일상생활이 사람들의 버팀목의 합이나 돕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에 부응한다.


반면, 우리 바른생활 교육과정은 아이들에게 다소 '진취적인' 모습을 요구한다.

 

가.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의 발달과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나. 기초 능력의 바탕 위에 새로운 발상과 도전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
다.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
라. 세계와 소통하는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의 정신으로 공동체 발전에 참여하는 사람


여기서 '추구하는 인간'은 경쟁력 있는 산업역군이다. 기본적 사회성보다 진로가 우선이다. 이런 인간상은 과도한 경쟁을 조장한다. 낙오자를 걸러내는 교육으로 귀결된다. 올바른 인격체보다 무례한 승자가 선택된다. 아이들에게 법과 도덕을 가르치기 전 함께 살아가는 지혜, 사회성의 개념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자본 동화(同化)


요즘 인공지능이 화두다. 사람들은 미래에 사라질 일자리나, 로봇의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걱정한다. 방안에 코끼리를 둔 체 집 밖에 기르는 고양이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인공지능과 '인간성'이 없는 기업가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로봇과 자본 중 어느 쪽이 우리 사회를 더 빨리 망칠까?


자본주의는 차별이 전재다. 상대를 소외시키고 경쟁하는 착취 시스템이다. 그 모습을 닮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정중함을 잃고 있다. 남을 이겨야 성공하는, 성공할수록 무례해지는 사회에서 우린 과연 행복해질까? 10살 아이 조차 인간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은 그저 공허한 바람이다.


산업혁명과 생을 함께한 프랑스 수필가 조셉 주베르(1754 ∼ 1824)는 "정중함은 인간성의 꽃이다"란 말을 남겼다. 기계에 종속되며 닮아가는 사람들을 본 그가 우려한 건, 자본에 동화된 사람들의 무례함, 그 민폐 속 잃어버린 인간성 아닐까.


자본주의는 추악한 인간의 추악한 동기가
모두를 이롭게 할 거라는 기적의 논리다.*
- 케인스 -


*원문 : Capitalism is the extraordinary belief that the nastiest of men for the nastiest of motives will somehow work together for the benefit of all.


2018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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