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역설
선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지상파 방송 5개가 전부였던 90년대와 달리, 요즘 TV를 틀면 수많은 방송 채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전보다 볼만한 방송이 없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요?
우리에겐 선택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 믿습니다. 행동경제학 이론인 '선택의 역설'은 이와 정 반대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한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죠.
실험은 단순합니다. 슈퍼마켓에 두 테이블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24종, 다른 쪽은 6종 잼을 두고 시식회를 연 후 어느 잼이 더 많이 팔리는지 관찰합니다.
관찰 결과 방문객 60%는 24종의 잼이 놓인 테이블로 몰립니다. 예상대로 더 많은 선택지로 사람들이 몰린거죠. 하지만 재미있는 건 매출입니다. 24종 시식대의 잼은 불과 3%의 매출을 올린 반면, 6종 시식대를 방문한 사람들 중 30%가 잼을 구매합니다. 무려 10배에 이르는 차이가 생긴겁니다. 왜 그럴까요?
지나친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어렵게 만듭니다. 사고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선택을 힘들어한다
뇌는 인체의 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25%의 에너지를 사용하죠. 뇌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 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과잉 정보를 차단하는 메커니즘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인간은 여러 동물을 동시에 사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마리만 사냥해도 충분했죠. 대부분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단조로운 삶이였죠.
하지만 현대 사회는 복잡합니다. 매일 수많은 선택을 마주합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급변한 환경 변화죠. 인류는 이 중요한 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단순화입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 채택한 방식입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모든 결정을 할 때, 삼자 택일로 단순화했다고 합니다. '찬성, 반대, 논의' 세 가지로 말이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항상 똑같은 옷을 입는 걸로 유명합니다. 선택을 최소화해서 '결정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하죠.
최상위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선택을 단순화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은 선택입니다.
기회비용이란 착각
선택은 불가역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계약이나 결혼, 이사나 이직처럼, 대부분은 중요한 결정은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련이 남고, 이는 모두 '기회비용'이 됩니다. 그래서 기회비용은 항상 실제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선택이 더 어려운 이유죠.
"연애를 많이 못한 게 아쉽다. 더 많이 만났어야 하는데..."
결혼 후 남녀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 처럼 들리지만 진심일 확률이 높습니다. 천생연분을 만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배필을 정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바로 옆의 친구부터 연예인까지 모두 잠재적 배우자이면서, 결혼하는 순간 모두 '기회비용'이 되는 것이죠.
'최적 정지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의사결정은 초기 37%를 걸러야 최적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이론은 원래 금융공학에서 사용했지만, 연애 시장에서 더 활발히 사용됩니다. 평생 10명(n)과 연애한다면 3.7명(n×0.37)을 만나본 후 결혼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건 모순입니다. n명을 모르는 상황에서 n×0.37을 계산하는 게 불가능하죠. 물론 만남 자체가 수익모델인 결혼정보업체 입장에선 사업에 매우 유용한 이론이겠죠.
하지만 연애 당사자들은 어떨까요? 서로 처음 만난 37%를 거르고, 막연한 기대감을 키우며 가상의 선택지를 늘리다 보면 선택의 역설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중한 만남에서 서로를 인스타그램 사진 넘기듯 다음 선택지, 그다음 선택지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 결과 만족감은 점점 떨어지는 함정에 빠지게 되죠. 스쳐 넘긴 사진 속 자신과 꼭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려진 체 말이죠.
모든 것이 과잉 공급되는 사회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착각일 수 있습니다. TV를 틀어도 볼 게 없고, 사람은 많은데 내 짝은 보이지 않는 건, 어쩌면 선택을 해야 하는데, 고민만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스스로에게 주어신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또는 스스로 원하는 걸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겠죠. 그럴 땐 잠시 멈추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2020-03-26
<참고 문헌>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The paradox of choice | Barry Schwartz
The tyranny of choice: A cross-cultural investigation of maximizing-satisficing effects on well-being
Why Is the Human Brain So Effici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