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변신』, 노동을 말하다.

‘딱 하나의 환상적 설정 : 벌레의 프리퀄’

by 짱구노무사

Prologue :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야?

최근 유행하는 바퀴벌레 밈이다.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야?’라는 물음에 여러 유형의 답변이 존재한다. ‘난 엄마바퀴가 되어야지. 같이 바퀴벌레로 살자.’라는 답변이 [감동편]이다.


[절망편]은 어떨까.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통해 확인해 보자.


“(하루아침 벌레가 된) 그는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엎드리게 되었는데,(중략)

어머니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손가락을 쫙 편 채

두 팔을 내뻗으며 외쳐대는 것이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정반대로 마구 뒷걸음질 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벌레로 변신한 ‘잠자’를 보자마자 ‘사람 살려’라며 달아난다. 이렇듯 「변신」에서 주인공 '잠자‘는 하루아침 벌레로 변하고, 사회와 가족 사이 갈등과 노동관계의 역설을 경험한다. 노동력을 잃은 그는 인간적 가치마저 상실했고, 가족들은 그를 불쾌하게 여기고 외면하는 지경에 이른다.


‘잠자’는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돈을 벌었지만, 이제 그의 노동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은 노동하지 않아도 인간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실존주의 철학은 가족 사이 온데간데없다.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잠자’의 변신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노동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노동자의 존엄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비판을 투영한다.


그런데 카프카의 단편선 제목들을 보다 보니, 「가장의 근심」, 「공동체」, 「돌연한 출발」, 「판결」, 「법 앞에서」, 「튀기」 등이 눈에 띈다. 그래, 이 제목들을 엮어서 뭔가 쓸 수 없을까. 가장의 근심이 된 벌레를 제거하고 돌연한 출발을 한 공동체으로 엮어 튀기라는 변종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변신」은 주인공 ‘잠자’가 하루아침 벌레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게 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다. 벌레가 된 채 눈뜬 잠자는 가족에게 직장에서 일벌레였건만, 이제 가정에서 밥벌레가 된 신세다. 빠른 속도로 ‘잠자’는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데, 아버지가 ‘잠자’의 등에 던진 사과는 박힌 채 그대로 썩어 가고, 여동생은 ‘잠자’를 ‘저것’, 급기야 ‘괴물’로까지 부르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잠자’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빗자루에 쓸려 버려진다. ‘잠자’의 노동력에 의지하던 가족은 그 과정에서 저마다 직업을 가지며 생기가 돌고 ‘잠자’가 죽자 홀가분한 기분으로 소풍 떠나며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이다.


서글프다. 앞서 카프카의 「변신」 밈에서 말한 [절망편]이다. 이 소설은 카프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고, 여동생에 대한 사랑이 컸다. ‘잠자’와 마찬가지로 직장과 집을 떠난 적도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아버지가 강요한 법학을 공부했고 노동자재해공사에서 취업했다. ‘잠자’가 벌레가 되면서까지 왜 그 집에 틀어박혀 있었는지 몰랐는데 카프카의 생애를 알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된다. 카프카의 단편 소설 대부분이 카프카의 이야기여서 더욱 흥미롭다. 이 글이 부디 「변신」뿐만 아니라 다른 카프카 단편선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왜 ‘잠자’는 하루아침 벌레로 변했을까. 카프카의 「변신」은 노동과 사회관계의 불평등 및 갈등을 비유적으로 그려내며, 현실 세계 노동자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변신」의 ‘프리퀄(Prequel)’을 준비했다. 직장에서 ‘잠자’의 이야기를 「변신」 속 단서를 통해 ‘공인노무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반영하여 원인을 찾아보자. ‘잠자의 변신’이라는 환상적 설정 이후 ‘가족의 변심’이라는 현실적 전개에서는 ‘잠자’와 가족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단순히 못된 가족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가족의 변신 아닌 변심을 중심으로 조직이론(경영학)을 통해 ‘잠자’와 헤어질 결심의 이유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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