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직장인이라면 한 번은 겪어보았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을 수도 있는 직장 갑질(법적 개념은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굳이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학교나 군대에서,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장소에서도 갑질은 있습니다만, 오늘은 직장 갑질만으로 한정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직장(職場)은 우리가 일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은유적으로는 일거리나 밥줄로 표현되기도 하지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서로 만나지 않고도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짐으로써 고정된 장소의 필요성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재택근무나 원격근무가 장려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날의 직장은 장소적 개념보다는 돈벌이의 수단으로써 관계적 개념이 중요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갑질(甲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여기서 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 즉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강자를 의미합니다. 질은 순우리말로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는 뜻 입니다만, 주로 그 행위를 나쁘게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갑질은 강자가 약자에게 특정한 수단을 이용하여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고, 직장 갑질은 직장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직장에서 관계를 이용하여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 신설 2019. 1. 15. / 2019. 7. 16. 시행]
직장 갑질을 규제하는 법률은 2019. 7. 16.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30% 정도가 속해 있는 5인 미만의 소규모 회사에는 이 법률의 적용이 없습니다. 직원이 적은 회사일수록 관계성은 더 복잡하고 촘촘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만큼 갑질은 더 쉽게 더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실제 통계의 수치도 이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갑질을 원인으로 자살한 사람도 있고 퇴사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여간한 사회적 문제가 아닌 셈입니다.
이제 위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규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갑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법 규정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개념을 정의하기보다는 성립 요건 또는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행위 주체여야 하고,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야 하고,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그 행위가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켜야 합니다.
아래 그림을 같이 보겠습니다. 주로 직장 상사가 갑질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그다음이 임원이나 경영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갑질 행위자에 대해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거나 어떠한 것을 강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해 행위자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징계 등의 인사상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용자나 사용자의 배우자, 사용자와 4촌 이내의 혈족이나 인척 관계에 있는 근로자가 직장 갑질을 한 경우 당해 사용자에게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직장 갑질의 모습에 따라서는 형법상의 폭행이나 상해, 모욕, 명예훼손죄 등을 구성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의 규제와 별도로 형사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주로 어떠한 것들이 직장 갑질에 해당할까요. 이는 업무상 적정한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어렵고도 난감한 문제입니다. 적정하다는 것과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업무상의 지시나 감독이라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아무렇지 않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적정한 범위를 넘었는가 아닌가는 사안별로, 상황별로, 행위자와 피해자 사이 관계까지 고려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분기별 실적 달성도에서 팀 내에서 꼴찌를 한 직원이 있습니다. 팀장이 이 직원을 조용히 불러 다음과 같이 질책을 합니다.
“이 대리! 너 때문에 우리 팀도 전사에서 꼴찌 먹게 생겼어. 이게 뭐야? 정신 안 차릴래! 생각 좀 해라 생각 좀.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옆 팀 신입사원도 너보다는 점수가 높아. 다음 분기에도 이렇게 해봐. 내가 책임지고 땅끝마을로 보내주지.”
팀장이 이 대리에게 한 질책성 발언은 직장 갑질에 해당할까요? 언뜻 보기에는 조금 심했다거나 인격 비하성 표현이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 공감한다면 팀장의 질책은 직장 갑질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 팀장은 이 대리를 끔찍이도 아끼고 있었고, 이 대리의 평소 실적은 평균 수준 이상이었고, 인격 비하성 질책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한 발언이었고, 팀장의 질책에 이 대리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최근에 복잡했던 속내를 터놓으면서 우리 팀 전체에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외부세계의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이 대리를 바라볼 때 직장 갑질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직장 갑질의 피해자가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고 합니다.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지도 않았고, 그 일로 제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왕따를 당했고,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여러 사람들은 입을 모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문제가 많고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성토를 합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그래서 피해자의 주관적인 사정과 당시 피해자의 입장과 정서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직장 갑질은 현상이나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건 정도를 넘었다고 인식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굳이 법의 개념에 피해자의 상황을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한 현상과 사실조차도 당연시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법률로써 엄격히 금지되는 직장 갑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