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이노무사! 지리산 종주해봤나?”
“네에? 종주고 뭣이고 아직 지리산에 가보지도 못했는데요.”
“그럼 여름휴가 때 정사장하고 같이 가볼래?”
“아...네...뭐. 형님이 산행대장도 하고 경험이 많으니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요?”
지리산 종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던 2007년경에는 창원에 살았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조감독관.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범에 대해 수사권을 갖고 있는 특별사법경찰관으로 고용노동부의 공무원이다. 조감독관이 동행자로 지목한 사람은 당시 조그만 안전컨설팅 회사의 대표이다. 두 사람은 트리비앙(매우 좋다는 뜻의 프랑스어)이라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주말마다 산행을 한다고 했다. 조감독관은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서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으로 근무 중이었고, 관할 구역 내 사업장의 안전담당자들로 구성된 안전사랑 산악회의 산행대장도 역임하고 있던 중이었다. 조감독관은 산청에서 태어나 지리산이 친숙했고 종주도 여러 번 순탄하게 했다. 정사장은 의령이 고향인데 덩치나 뚱뚱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도 산행을 즐겼다.
나는 종주가 무엇인지, 산장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두 사람이 하자는 대로 계획한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각각 20만 원을 갹출했고, 지리산 산장에서 하룻밤 묵을 때 먹고 마실 거리를 샀다. 홈플러스 쇼핑 카트가 가득 찼는데, 언뜻 보아도 팩소주와 캔맥주가 절반을 넘게 차지했지 싶다. 김치찌개용 삼겹살과 술안주용 목살도 사고, 초코파이도 몇 박스나 구입했다.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를 믿고 자신만만했다. 여름 중에서도 한여름인 7월의 마지막 날. 마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려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불과 몇 분 전에 출발한 버스의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택시를 탔다. 거기까지는 모든 게 즐겁고 순탄한 듯 보였다. 드디어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인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걸어가는 길. 우리의 배낭은 너무 무거웠고 한여름의 무더위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후회와 탄식을 불러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디 캠핑이나 야유회를 가는 것도 아닌데 먹고 마실 것에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이다.
그날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세석산장까지 가야만 했다. 사전에 예약된 사람만 산장에서 하룻밤 잠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고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때 정사장이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우리들 배낭이 너무 무거운 건 맥주 때문이니, 이걸 좀 마시고 비우면 좀 더 가벼워질 것이다. 각자 배낭에서 한 세 캔 정도씩 마시고 줄이자!”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 여름에 맥주가 시원했던지 뜨거웠던지 기억은 분명하지 않은데,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던 땀방울을 식혀주기에는 충분했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약 33.4㎞. 천왕봉에서 또 중산리 버스 정류소까지 가야 하니까 우리가 1박 2일간 걸어야 하는 거리는 40㎞가 족히 넘었다. 종주는 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것이니 일단 한 고지를 오르면 그때부터는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노고단을 지나 몇 개의 봉우리가 나오는데, 그 봉우리는 여기 양산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천성산이나 금정산과 비교할 수 없는, 대부분 1,500 고지를 넘어서는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고봉준령이었다. 걷고 오르면서 힘들 때마다 맥주를 마셨다.
반야봉으로 기억되는 깔딱 고개를 넘어설 때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조감독관은 이러다 우리가 예약한 세석산장까지 가기는 걸렀다고 말했다. 걸음을 재촉하여 다다른 곳은 연화천 산장. 이미 어둠은 깔렸고 산장 앞 공터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은 저녁을 준비하거나 먹고 있었다. 조감독관이 산장지기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나중에 눈치껏 잠자리를 잡고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산행대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정사장은 옆에서 지글지글 목살을 구웠고, 나는 채소를 씻고 상차림을 했다. 셋이서 둘러앉아 소맥 폭탄주 건배를 외치던 그때, 주위의 뭇시선들이 우리에게 향하고 있었는데. 왜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볼까 생각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이유는 분명하고 빠르게 전달되었다.
“한 잔 드릴까요?”
“아이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난 엉겁결에 바로 옆에 앉아 침을 흘리고 있는 어느 중년 남자에게 잔을 건넸고, 소맥 폭탄주를 채워주었다. 구운 돼지고기도 안주하라고 몇 점 집어서 종이컵에 담아 주었다. 순간 더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진작 몰랐을까. 비지땀을 쏟으면서도 무거운 짐을 견디고 버텨냈던 것은 이 시간을 위한 것이었는데.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과 권한으로 혼자 잘난 사람처럼 인심을 베풀고 지랄이냐는 비난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도 내일 아침까지 먹어야 해서 넉넉하지 않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조금 떨어진 곳의 무리들도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차단막을 쳤다. 술맛과 밥맛은 정말로 꿀맛이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시선을 느끼면서 먹고 마시는 일은 신났다.
다음 날 새벽부터 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군대 내무반 같은 긴 철재 바닥으로 이루어진 2층 침상에서, 침낭을 베고 누웠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코 고는 소리가 75 데시벨(집시법상 주간 소음의 기준)은 넘었을 것이다. 그냥 잠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맥주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 해 뜰 때까지 술이나 마셔야지 생각하며 야외 목재 테이블에 누웠다. 순간 아찔했다. 언제부턴가 볼 수 없었던 그래서 보지 못했던 은하수와 별똥별의 잔치가 벌어진 순간. 말이나 글로써 그때 밤하늘의 풍경과 내 마음의 감동을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다. 순간이 영원으로 바뀌는 듯했다. 이대로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과 오늘 힘들었던 하루와 지리산 종주에 대한 후회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한여름에도 연화천 산장은 추웠다. 오들오들 떨다 보니 해가 떴다.
지리산 종주 2일 차.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에 조용히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