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와 산업재해)
지난밤 세찬 바람에 낙동강이 얼어붙은 남도의 겨울이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박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정문 초소에서 근무교대를 했습니다. 전 근무자로부터 특이사항 유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고, 믹스 커피 한 잔에 한 모금 연기를 내뿜으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5년 전 회사에서 정년퇴직 후 여행이나 하며 실컷 놀아야겠다던 다짐은 1년도 못가 심심해 죽겠다로 바뀌었고, 전기 계통의 자격과 경험을 살려 뭐라도 다시 해보고자 했지만, 어느 한 곳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갈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재취업한 곳은 천 세대가 조금 안 되는 아파트의 경비원이었습니다.
최저임금. 24시간 격일제 근무. 감시적 근로자로서 주휴수당이나 연장근로수당 없음. 필요한 경우 미화원 업무 보조와 택배 보관 및 전달 등 입주민의 편의를 위한 업무 수행에 동의.
그는 3년 동안 한 번의 결근 없이 성실히 근무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아파트 단지 내외부를 순찰하고 초소로 돌아와 몸을 녹였습니다. 얼마 후 택배를 찾으러 온 입주민이 그를 수차례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곧이어 도착한 119 구조대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하였으나 이미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1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일로 고인이 된 박 씨의 유족이 찾아왔습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다투는 일은 가능하면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자체적인 사전 조사뿐만 아니라 몇 군데 노무법인의 상담을 거쳐온 터라, 정중하게 거절할 시간과 방법을 놓쳐버렸습니다. 이런 사건의 대리인이 되면 유족의 슬픔과 아픔을 공유할 수밖에 없고, 유족급여의 금액이 상당하여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좌절감도 크기 때문입니다.
산재법에서는 과로사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기준에 대해, 급성 과로, 단기 과로, 만성 과로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급성 과로는 사망 전 24시간 이내에 보통의 평균인이 감내하기 힘든 공포나 흥분이 발생할 수 있는 특이한 사건이나 상황이 있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아파트 경비원이라면 도둑이나 강도를 뒤쫓은 사건이나 입주민으로부터의 갑질 같은 상황을 그려볼 수 있겠습니다. 단기 과로는 사망 전 일주일 동안 평소에 하던 업무량이나 책임이 30% 이상 증가한 상황을 말합니다. 근로시간 기준으로는 1주 평균 64시간 이상 근로한 것을 말합니다. 아파트 하자보수공사나 대단위 단지 정비 행사 때문에 평소보다 업무량이 늘어난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성 과로는 사망 전 12주 동안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상태를 의미하는데,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2주를 평균했을 때 1주 60시간 이상 일했다면 인정되는 것입니다. 심야 시간에 빛과 소음이 차단된 상태에서 5시간 이상 연속적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나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근무초소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는 가수면 상태는 업무상 과로를 평가할 때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로사는 주로 뇌혈관이나 심장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말합니다. 뇌출혈, 뇌경색, 급성심근경색이 대표적인 질병입니다. 이러한 질병이 원인이 되어 사망한 것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더라도 회사가 입는 불이익은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과로를 유발했다는 사정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유족은 고인의 사망이 회사 탓이라 생각합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회사 대표의 멱살을 잡는 일도 있고, 욕설은 다반사며 아예 조문을 허락하지 않기도 합니다. 회사를 찾아가 근로계약서 내놔라, 근무표가 이게 사실대로 맞는 것이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이제 이쯤 되면 회사는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사건을 은폐하고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보험가입자인 회사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은 일이 더 어렵고 힘들게 바뀌는 순간입니다.
과로사는 개인적인 질병의 악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령이거나,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지병이 있었다거나, 음주나 흡연과 같은 나쁜 습관이 개재되었다면 그 책임은 주로 고인의 몫입니다. 평소에 건강했고 지병도 없었고 자기 관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 사망의 원인이 회사의 잘못된 노무관리나 업무지시에 있었다 하더라도 형사 책임을 묻기는 어렵고, 산업재해 보험급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위자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느 경비원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첫 단추는 사업주가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자료와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단추를 끼울 수 있는 사람은 유족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