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2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소포인트 Oct 05. 2019

소리와 소리 없음의 경계

변사 (カツベン, 2019)

수오 마사유키의 신작 <변사>는 영화 안의 소리와 소리 없음의 경계와 기점, 그리고 그것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지점에 처해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무성 영화의 스타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성 영화들의 파도 속에 휩쓸리고 만다. 즉, 영화 내적인 소리들이 영화 외적인 소리들을 밀어내고 권좌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감독은 그 시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전의 상황만을 제시한 채 멈춘다. 카메라는 경계선 안에서 어디로 넘어가지 않는 채로 서있다. 그리고, 다시 그 중간에는 ‘변사’가 있다.
 
변사는 아시아 영화 문화 속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위치의 존재다. 이들 덕분에 사실상 무성 영화 시대를 건너뛰었다고 무방한데, 배우보다 인기가 많았던 변사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풍경은 외적인 요소가 내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오히려 영화가 스크린 너머로 어떤 확장성을 주었는가를 시사해주는 점이기도 하다. <변사>의 세계에는 영화가 채 정립되지 않은, 혼잡한 시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들이 나온다.
 
주인공 슌타로는 어렸을 적부터 변사 명인 야마오카를 보며 변사의 꿈을 키운다. 10년 후, 성인이 되어 만난 야마오카는 변사에 대한 생각과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 곳곳에 감독은 무성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특히나 마지막 아오키 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시네마 천국>이 보여줬던 헌사를 재해석한 수오 마사유키식 헌정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변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정말로 무성 영화에 대한 예찬만이 남아있는 것일까? 사실 감독은 갈림길에 놓여 선택을 해야만 했던 모든 ‘영화인’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변사>의 인물들은 그런 선택의 속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자신의 우상 야마오카를 따라 스크린 밖 변사가 되고 싶은 슌타로, 스크린 안 배우가 되고 싶은 우메코, 유명한 변사였지만 경계선 안에 방황하며 괴로워하는 야마오카까지.
 
지금의 우리는 누가 남았는지를 분명히 알지만(그러나 슌타로의 해설이 유튜브 시대의 이른바 ‘병맛 더빙’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그들이 시대를 앞서갔든 도태되었든, 그들은 영화를 사랑한 인물들이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그들의 선택을 조롱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의 속성을 파괴하더라도 그들의 애정에 대해 존경과 예우를 최선을 다해 표하고, 그들 역시 영화에 포함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적어도 감독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경멸하는 불협화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