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탄소포인트 Oct 31. 2021

샹치는 상추다

<샹치> 보여주는 거대한 실패는 사랑을 감각하는 방식에 있다. 사랑의 극단,  세상을 파멸시킬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면모를 마블이 재현할리 없다.


그런 측면에서 양조위의 얼굴은 최악의 선택이다. 마블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양조위의 얼굴을 데려와 그가 이루려는 사랑의 방식을 기어코 좌절시킨다. 만년의 사랑을 실현시키려는 그의 일대기는 천년을 끝으로 소멸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끊임없이 문을 치는 양조위를 보면서 나는 그가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또한 할리우드의 경로에 따라 그가 후회하지 않기를 빌었다. 비록 기만일지언정, 사랑이라는 맹목적 목표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저 처연한 아름다움은 샹치로 대변되는 후세대의 메세지, ‘우리 다같이 아름다운 사랑을 나눠보아요’라는 하나마나한 이야기 앞에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도 균열시키지도 못한채 무화된다.


타노스는 되지만(<인피니티 워> 한정), 웬우는 되지 못 한다.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지만, 사랑은 세상을 파멸시킬 수 없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이 이기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가. 디즈니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기만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지킨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