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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소포인트 Aug 02. 2022

흐릿하고 지워진

그림자들의 섬 (그림자들의 섬, 2014)

모든 장소는 저마다의 역사를 간직한다. 심지어 똑같은 부분을 공유하더라도 누군가에겐 환희와 사랑의 장소로, 누군가에게는 비극과 잔혹의 장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렇듯 장소는 저마다의 역사가 부글거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의하는 현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소는 인간의 기록과 떼래야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있기에 장소는 다르면서도  같게 기능할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  장소로 가보도록 해보자.

 

지도 앱에 들어가 ‘부산광역시 영도구 태종로 233’를 치고 항공 뷰나 위성사진으로 보면, 특정 부분만이 블러나 모자이크 처리되었음을 알게 된다. (비교적 보안에 자유로운 ‘구글 어스’마저도 절묘하게 구름에 가려있다) 지금은 ‘HJ중공업’이라고 불리는, 과거에는 ‘한진중공업’이었고, 더 과거에는 ‘대한조선공사’였던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영도 조선소는 국가 주요 시설로 기밀시설 취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비밀로 뒤덮여있는 공간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영도 조선소를 다니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기록되었던 장소이자 한때는 버스를 타고 온 수많은 시민을 통해 목격되었던 곳이니까. 영도 조선소는 공식적으로는 지워져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기록되고 있는 역설적 공간이다.

 

<그림자들의 섬>(2016)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조선소의 속성과 닮아있다. 그곳에는 화려한 부산의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 역군이었지만, 흐릿하고 지워진 채 조선소 안에 잠겨 버린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선소 외부에서 기록과 말을 통해 ‘한진중공업’으로 표상되는 장소를 재현하려 한다. <그림자들의 섬>은 그들을 ‘이야기’로 엮는다. 마치 구전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각자 다른 기억 혹은 역사를 가지면서도 하나의 구심점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게 지도상에 흐릿하거나 지워진 영도 조선소는 단일한 의미로 연결되고, 담장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으로 전이된다. 이는 앞서 말한 ‘장소’의 새로운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저마다의 역사를 긍정하면서도 현재로 수렴되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들의 섬>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현재에 ‘방점’이 찍혀있는 영화다. 37년 만에 복직한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발언1)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흐릿하고 지워진 그림자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림자들의 섬>을 지금,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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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곽재규가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최강서의 시신에 입혀줬던 그 작업복.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2022.02.25. 해고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복직 행사에서 김진숙 발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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