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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소포인트 Jul 25. 2019

백승기 유니버스

오늘도 평화로운 (오늘도 평화로운, 2017)

백승기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세 부류로 나뉠 거 같다. 세계에 진입하기도 전에 극장을 나가거나, 세계에 진입해서 마음껏 즐기거나, 즐기다가도 ‘영화’라는 사실 앞에서 난감해하거나 말이다. 사실 3번째 부류는 내가 그런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라, 추가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사실 <오늘도 평화로운>은 영화적 재미는커녕, 무엇 하나 제대로 구성된 것이 없는 이상한 세계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를 당해 사기꾼들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평범한 남성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느샌가 처음의 동기는 온데 간대 없어지고(결국 달성하기는 하지만), 과장된 유머와 액션으로 점철된 채로 막을 내린다. 누구도 영화가 어떤 모양새와 완결성을 가졌는지는 관심도 없고,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버린다.

대학교 영화 동아리 UCC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보다 못한 수준의 촬영 수준, 어색한 연기자들과 CG, 개연성 없는 시나리오, 철 지난 패러디,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백승기의 전작 <시발, 놈 : 인류의 시작>보다 촬영이나 내러티브 수준이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관람 직후에 느낀 당황스러움도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B급 컬트영화를 즐겨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못 만들어서 재미있으면 재밌었지, 재미가 없는데 키득키득 웃고 있으니 말이다.

작정하고 못 만든 영화라는 설정은 그렇게 신선한 설정도 아닐뿐더러, 작중에 나오는 개그 코드, 즉 작정하고 B급 상황이나 리액션으로 웃겨보겠다고 용을 쓰는 장면들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원초적인 개그로 나를 웃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영화적 상황’이라고 우기는 뻔뻔함이지 않았을까. 그 뻔뻔함은 초반의 20여분을 견뎌내면 비로소 등장하는 인천항 씬에서 정점에 달한다. 인천에서 중국으로 밀항하는 과정을 단 원테이크로 구현해내는 이 뻔뻔함이야말로 백승기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엉성하면 엉성할수록 빛을 발한다. <오늘도 평화로운>이 전작보다 퀄리티가 더 떨어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감독은 ‘영화라면 응당 가져야 할 어떤 것들’이라는 일종의 편견을 역이용한다. 오히려 그것을 되돌려 ‘영화니까 해도 괜찮은 어떤 것들’로 바꿔버린다. 적어도 그의 세계로의 진입을 동의한 관객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설정을 잠정적으로 납득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룬 분명한 성취다. 그 성취는 다른 건 몰라도 그가 계속해서 다른 시도를 하기를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이상하고도 복잡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건 분명하다.

이제 누구나 영상을 찍고 그것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시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영화’라는 매체는 대중들에게 창작하기 어려운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것은 영화라는 매체에게 부여된 과도한 특권 혹은 편견 때문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 영화라고 불리는 것들마저 영화의 만듦새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독립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실 오히려 ‘영화’라는 단어가 지니는 편견이 작용한 탓이 아니었을까?

백승기는 ‘누구도 영화를 찍고, 배우를 할 수 있다.’라는 작중의 대사를 실천하려는 것만 같다. 그것이 설령 영화의 허점을 뭉개버리는 용도로서의 뻔뻔함이나 부족한 환경을 탓하는 게으름이라고 해도, 우리는 과감히 개봉관에서 그런 용기를 내지를 수 있는 국내 감독을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게 아니던가. 그렇기에 <오늘도 평화로운>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감상했을 때 더욱 특별해지는 영화다. 그의 세계에 진입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한 번쯤은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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