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과정 없이 부모의 메시지가 내 안에 살아있는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반드시 부모의 가르침에 건강한 의심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오히려 부모에게 받은 메시지의 영향력을 더 크게 만들었다.
부모의 하소연을 듣는 자녀는 보통 한쪽 편에 서게 된다. 자연스레 다른 한쪽은 ‘악’이 되는데 대개 아버지가 희생양인 경우가 많다. ‘선’이라고 믿었던 어머니가 5년 전에 소천하자 어머니는 내 삶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선’이 되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라는 얄궂은 정의감에 어머니 말씀에 순종해서 악으로 규정한 아버지를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똬리를 틀었다. 이 생각 때문에 그동안 아버지에게 해온 선행은 모두 허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 어머니의 선함을 입증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키운 아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장성해서 아버지보다 백배 천배 낫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야 아버지는 부끄럽고 어머니는 뿌듯할 테니까.
아내는 “나한테 시댁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왜 그렇게 민감해해요?”라고 물었다. 내 안에 자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 집안 욕보이면 안 된다. 나는 니 애비가 정말 창피하다.” 내 안에 살아있는 부모의 메시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5월부터 시작된 아버지와의 냉전으로 생애 첫 책을 발간하고도 그 기쁨을 나눌 수 없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아버지 전체주의’ 아래 일제 치하 같았던 36년을 살아온 나라 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너 같은 효자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할지라도 나는 아버지에게 ‘쓰레기’라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었다.
부정(不淨)해서 부정(否定)하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는 부정(父情). 힘겹게 펜을 들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택배로 세 번째 자식과도 같은 책에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에게 보냈다. 정기적으로 아이들 사진과 함께 안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아버지와 대면할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지구 상에서 유일한 냉전 국가에 살면서 부자 지간의 냉전이라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8월이 된 어느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 니가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지 이유나 좀 들어보고 그다음에 오해를 풀든 인연을 끊든 하자.” 3개월 냉전 끝에 어색한 재회가 이뤄졌다. 자식 된 도리로서 죄송한 건 죄송한 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으로 화가 난 건 화가 난 것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8시간 동안 쉴 틈 없이 감정을 쏟아냈다.
나는 아버지에게 책임감을 요구했다. 가장으로서 가정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가 질 때 권위가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었다. 당연히 헛수고였다. 똥 기저귀 갈아가며 키운 자식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내 주장이 강해질수록 아버지의 책임감은 안드로메다로 떠났고 이내 혜성처럼 다시 돌아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욕뿐이었다.
피해망상 판타지를 펼쳐내는 아버지를 향해 나도 모르게 맹수처럼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 아버지도 놀라고 나 자신도 놀랐다. 인간적인 이해로는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했다. 온 우주의 섭섭 마귀들이 전부 아버지 안에 들어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를 보면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서로가 자신을 좀 더 이해해달라며 평행선을 달리던 대화는 결국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을 느끼자 조금씩 간극을 좁힐 수 있었다. 36년 동안 숨겨왔던 진심을 꺼내자 서로를 향한 분노의 원인이 사랑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의도치 않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음을, 그 가운데 정말 애써왔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아버지도 피해자일 뿐이다. 죄가 미운 것이지 사람이 미운 것은 아니니까. 나도, 아버지도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아버지가 차려준 늦은 저녁을 함께 말없이 먹었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오랜만에 먹는 따듯한 집밥이었다.
두 번째 육아휴직 동안 가족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정리한 나의 인생 계명은 다음과 같다.
<김현중의 인생 계명>
1. 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 어딜 가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2. 옳은 감정을 지키기 위한 옳은 행동이 필요하다.
- 나의 모든 감정은 옳다. 그렇지만 나의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다.
3. 나는 완벽하지 않다. 고로 타인에게도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 높은 목표는 방향성이지 판단의 척도가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가 되어 ‘타인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올바른 기준이다. 기대하지 말고 기여한다.
4. 남 탓하는 것만큼 무능한 삶은 없다.
- 남 ‘덕분에’ 고마워하는 자와 남 ‘때문에’ 미워하는 자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현격히 다르다.
5. Being을 지향할 때 Doing이 따라온다. Doing에 집착할 때 Being은 도망간다.
- 절대자 앞에서 내가 올바른 존재(Being)로 서 있어야만 진정으로 선한 행동(Doing)을 할 수 있다. 선한 행동이란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사랑이다.
6. ‘해야 한다’라는 강압적 의무가 아니라 ‘하고 싶다’라는 자발적 사랑이 동력이다.
- 모양은 있지만, 내용이 없으면 빈 껍데기일 뿐이다. 사랑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7. 나의 자존감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결코, 타인에게 나의 자존감을 빼앗기지 마라.
- 선택은 나의 몫이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마라.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라.
8. 절대자 외에는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