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누리는 자유여행의 삶이란

관찰을 주업으로 삼는 인지과학 박사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11명의 관찰 전문가와 함께 산책을 떠났다. 지질학자와 의사, 음향 엔지니어와 타이포그라퍼를 비롯한 아들과 반려견에 이르기까지 11명의 전문 가이드를 대동한 여행이었다. 특이한 점은 같은 산책길을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다양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을 담은 <관찰의 인문학>을 집필했다.


저자의 11개의 산책 이야기 중 아들과의 여행이 인상 깊었다. 저자의 19개월 된 아들이 산책길의 가이드가 된 내용이었다. 아들에게 산책의 모든 주도권을 맡긴 저자는 아들의 시선을 통해 산책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 문득 나도 아들에게 관찰력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안내하는 동네 여행을 떠났다. 나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아들에게 ‘안 돼!’라는 말 금지
2. 아들보다 앞서가지 않기
3. 아들에게 내 뜻대로 제안하지 않기


“선강아, 나가자. 아빠랑 놀러 가자!”라는 말에 아들의 동공이 확장됐다. 당시 18개월 된 아들이 먼저 현관문으로 달려가 문 말굽을 쓰다듬었다. 문 말굽은 현관문에서 유일하게 아들의 키보다 아래에 있는 만만한 놀잇감이다. 문을 열자 아들은 복도에 있는 자전거 바퀴를 한번 만진 후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아들은 웃으며 나를 기다렸다. 잔뜩 들떠 보였다.


아들은 놀이터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오른쪽 검지를 왼손으로 움켜쥔 채 아들은 “웰컴 투 선강’s 투어!”를 외치는 듯 괴성을 질러댔다. 김선강 가이드는 시소를 향해 갔다. 아들을 시소에 앉히고 나는 반대편에서 서서 팔로 시소를 움직이자 아들이 낑낑대며 불만을 토해냈다. 나도 시소에 앉으라는 뜻 같았다. 아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시소 놀이를 하자 아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지런히 난 이빨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들은 잠시 고민 후 분수대로 향했다. 아직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아들은 난간에 올라서서 고여 있는 물을 가만히 관찰하였다. 이따금 물을 가리키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설명하기도 했다. 아들은 분수대를 한참 바라보다 ‘안녕!’ 손을 흔들었다. 아들이 분수대에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눈에는 분수대도 생명을 가진 좋은 친구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들이 분수대에 생명력을 공급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분수대와 잠시 작별을 고한 아들은 지나쳐왔던 미끄럼틀을 향해 갔다. 그때 휠체어 두 대가 잇따라 지나갔다.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휠체어가 지나가고 미끄럼틀에 도착한 아들. 그런데 웬일인지 내려오지 않고 한참을 앉아서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분수대 앞에 좀 전에 보았던 휠체어 두 대가 보였다. 아마 요양원에서 할머니들의 산책을 돕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은 한동안 미끄럼틀 위에 앉은 채 휠체어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미끄럼틀은 아이들이 스피드를 즐기기 위한 놀이기구라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아들에게 미끄럼틀은 무서운 휠체어를 감시하는 관측소이자 대피소였다. 휠체어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자 아들은 스피드를 즐기며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옆 동 놀이터로 향했다. 그곳 바닥에는 고무 우레탄이 아닌 모래가 깔려 있다.


아들은 근엄한 표정의 지질학자가 되어 모랫바닥에 입장했다. 그런데 샌들 사이로 들어온 모래의 촉감이 이상했는지 지질학자는 한쪽 발을 들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발에 들어간 모래를 빼내라는 신호였다. 모래를 털어주니 다시 모래를 향해 돌진하고 또 모래를 빼내라고 낑낑거렸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나는 슬리퍼 안에 잔뜩 모래를 집어넣고 걸어 다녔다.


무엇이든 따라 하는 아들은 금방 내 행동을 흉내 냈고 모래를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았다. 따라쟁이는 작은 돌멩이, 나뭇가지, 조개껍데기를 차례로 관찰하더니 이내 친숙한 물건을 발견하곤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냈다. 플라스틱 병뚜껑이었다. 병뚜껑으로 모래를 파면서 놀더니 곧 싫증이 났다는 듯 병뚜껑을 모랫바닥에 던졌다.


변덕쟁이는 이번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구불구불한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아침이었지만 햇볕이 강해 모자를 씌웠었는데 아들이 미끄럼틀에 앉으며 모자가 벗겨졌다. 자연스레 모자가 구불구불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자 아들이 다시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이에게는 사소한 소품조차 박장대소할 수 있는 훌륭한 놀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창조력과 종잡을 수 없는 웃음 포인트는 정말 놀랍다.


미소 천사는 다시 가이드로 변신하여 내 손을 끌고 갔다.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이드는 난간에 올라서서 힘차게 솟구치는 물줄기를 감상했다. 공중에 흩어지는 물방울의 시원한 촉감을 피부로 느끼며 우리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물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경비아저씨의 빗자루 소리, 나무 위의 참새 소리가 어우러져 상쾌한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행을 인도하느라 수고한 아들에게 답례로 ‘핑크퐁’ 음료를 선물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총 1시간 16분 동안 난생처음 겪는 관찰의 신비함을 체험했다.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새로운 관점의 사진 156장이 남아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아들과의 산책을 통해 내가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전엔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벌써 ‘데리고 간다’라는 표현부터 주도권이 내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저비용(최소 시간), 고효율(최다 놀이기구 체험)’로 아들을 유도했다. “우와! 여기 봐. 이리 와봐. 이건 뭐지?”라는 말들도 끊임없이 아들의 정신을 빼앗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놀이기구를 타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의 첫 자유여행’을 관찰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세상에 물든 내 관점에서 아들의 행동은 고비용(많은 시간), 저효율(적은 놀이기구 체험)로 보이지만, 효용성의 관점으론 측량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올바른 관점으로 세상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부모는 효율을 주입 시키는 가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저자는 순수한 관찰과 집중력을 통해 주목받지 못한 것들에 주목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유여행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관찰자로서, 지원자로서, 삶의 모본으로서 함께 걷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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