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을 전공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유통에 흥미를 느껴 영업 MD로 사회생활을 한 지 10년이다. 한 분야에 10년 동안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전문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거절‘에 있어서는 전문가라는 점이다.
'10년간 온·오프라인 MD로 1,000번 이상의 협상 경험을 통한 B2B 커뮤니케이션 스킬 및 협상력 확보'
이력서에도 위와 같이 당당히 기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거절에 있었다. 영업 MD 특성상 매일 같이 거래처에 협업을 제안했고 수도 없이 거절당했다. 수백 번의 실패로 나는 단단해졌고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낯가림이 심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연락해 미팅을 성사시키는 영업맨으로 변모했다.
나의 첫 책 <서른 넘어 찾아온 다섯 가지 기회>가 나오기까지 지난 2년간 나는 출판사들로부터 최소 1,000번 이상의 거절을 당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어야만 했다면 나는 책 한 권을 꽃피우기 위해 2년 동안 울어야 했다. 10년 동안 다져진 거절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면 절대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사랑과 성원에 힘입어 최근 3쇄에 돌입했다. 너무 감사하다.
그런데 거절의 전문가인 나에게도 정말 견디기 힘든 거절이 있다. “아빠 노우, 시여!(아빠 No, 싫어!)” 미운 세 살 우리 아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특히 잠에서 덜 깨거나 졸릴 때, 아프거나 동생한테 질투할 때 아들은 거머리처럼 엄마한테만 찰싹 달라붙는다. 이때 아들에게 접근하면 여지없이 나는 아들에게 2개 국어로 철저히 거절당한다. 자식에게 부모로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서운하다 못해 괘씸하기까지 하다. (불행 중 다행은 아들이 잠에서 깨어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에너지가 충만해 기분 좋을 때, 신나게 놀 때는 또 아빠만 찾는다.)
2018년 11월, 첫 번째 육아휴직 6개월을 마치고 이직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다. 첫 이직인 데다 오프라인에서 일했던 MD가 온라인 세계에 입성하니 다시 신입 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마치 농구 선수가 축구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바둑판 위의 장기알처럼 낯선 환경에서 표류했다. 문에서 문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에 생소한 환경과 상사의 폭언, 실적 압박의 스트레스 3종 세트를 겪으며 좌절을 맛보았다.
일하다 지칠 때면 당시 11개월 된 아들의 사진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 물론 아내의 사진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여보, 사랑해.) ‘아들아, 아빠가 너를 위해 무엇을 못 하겠니. 보고 싶어. 사랑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화장실에서 아들 사진을 보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드디어 아들을 본다는 생각으로 퇴근길을 서둘렀지만, 잠실에서 일산까지 가는 길이 시베리아 대륙 횡단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 아들을 와락 껴안았다. 그런데 아들이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들아, 나는 온종일 네 생각만 했는데…. 지난 6개월 동안 아빠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거니?’ 평소 아내 앞에서 거친 말을 쓴 적이 없었는데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우와, X나 서운하다!” 안색이 변한 아내는 아들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때로 아빠는 외롭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사진=pixabay)
몇 년 전 회사에서 중요 공지사항이 있어 임직원 전체가 모인 적이 있었다. 시작 전에 시간이 남아 잠시 폰으로 영상을 봤다. 몰입하여 보고 있는 것이 궁금했는지 옆에 앉은 동료가 슬쩍 엿봤나 보다. “아, 뭐예요! 되게 재밌는 거 보는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잔인한 걸 보고 있어요?” 그때 마침 어미 표범이 자기 새끼를 먹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졸지에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동료는 어미 표범에게 혐오가 아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실존했던 영상의 주인공, 표범 '마나나'는 과거에 이미 새끼 두 마리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살아남은 새끼를 더욱 애지중지 키우던 마나나는 여느 날과 같이 새끼를 숨겨놓고 사냥을 떠났다. 그런데 그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구렁이가 새끼를 집어삼켜버렸다. 마나나는 구렁이와 장시간 혈투를 벌여 구렁이가 새끼를 토해내게 했다.
야생에서 죽은 새끼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고 했다. 마나나는 구렁이의 위액으로 범벅이 된 죽은 새끼를 결국 자기 몸속에 묻었다. 죽은 새끼를 집어삼키는 어미의 미어지는 마음을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나나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3일 동안 통곡했다. 하물며 인간의 마음은 어떠하랴. 가슴에 묻을 정도로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의 존재를 거절하면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바라보는 세 살배기 아들과의 전쟁 같은 사랑(사진=pixabay)
세 살은 유아기 중 가장 예민한 시기라고 한다. 미운 세 살, ‘3세병’을 앓는 아들은 물건을 던지고 아빠 엄마의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또한, ‘싫어병’에도 걸려 옷 입거나 신발 신을 때, 밥 먹거나 양치질할 때 등 조금만 도와주려 해도 “노우, 시여!”를 남발한다. 신발은 좌우가 바뀌어있고 엉성한 양치질은 결국 부모의 손을 다시 거쳐야 한다. 초지일관 아들은 고집불통이다. 세 살의 반항이 이 정도인데 ‘중2병’에 걸리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미운 세 살은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발달과정이다. 그동안 부모에게 종속된 의존적 존재에서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발돋움하려는 건강한 저항인 것이다. 역시 알아야 면장도 하고 부모도 되나 보다.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갈등했던 마음이 아주 조금은 편안해졌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는 아들과의 전쟁 같은 사랑 속에서 오늘도 아들에게 건강한 거절을 당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진정한 ‘거절 전문가’로 거듭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이사야 1:2-3, 새번역)
[참고자료]
- 윤지아,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육아법은?”, <베이비뉴스>, 2015.9.10.
- KBS1, “동물의 세계.120420.표범, 특별한 인연을 맺다 2부.”, <유튜브>, 2012.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