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부모의 세계관과 자녀의 꿈
by 책 쓰는 중고차 딜러 Jul 9. 2020
(커버 사진=영화 <신의 한 수> 중에서)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
인생을 관통하는 명대사.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진정한 '신의 한 수'는 이 한마디였다. 분명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는 희극이고 누구에게는 비극이다. 수저론이 통용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찌 감히 '같은' 세상이라니! 마뜩잖다면 무대를 옮겨보자.
유대인 수용소에서는 수저론도 운동장론도 무의미하다.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와 '같은' 대접을 받으며 '같은' 생지옥을 경험한다. 하지만 애매히 고난 받는 환경에서도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아름답다!"
요즘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 세 살짜리 아들과 세 단어 이상으로 소통하는 황홀한 경험을 한다. 쫑알쫑알 대는 모습이 신비롭고 사랑스럽다. 동시에 사랑스러운만큼 미운 세 살이기도 하다. 아빠가 되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주인공 귀도와 그의 다섯 살짜리 아들 조수아가 나누는 대화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린 자녀에게 부모는 곧 세상 전부요 우주다. 생애 처음 맞닥뜨리는 권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세계관이 어린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캐비닛에 숨은 조수아의 시선으로 본 귀도의 마지막 모습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중에서
귀도의 세계관은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재미있는 놀이로 치환한다. 포로라는 수동적 존재가 게임 참여자라는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자 조수아에게 수용소는 놀이터가 되었다. 그들이 처한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세계관 속에서 아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귀도는 조수아에게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상품이 진짜 탱크라는 꿈을 심어줬고 그 꿈이 아들을 구원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목숨을 다해 아들의 꿈을 지켜냈다. 처형을 앞두고 죽음을 향해 장난스럽게 걸어가는 귀도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상황을 놀이로 즐기는 조수아. 죽음에 맞서는 처절한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었다.
며칠 전에 아들이 폐렴으로 고생했다. 여름만 되면 치르는 연례행사다. 잠시 아들의 병력을 소개하면 태어난 해인 2018년 여름, 열경련으로 잠시 의식을 잃었었다. 눈이 돌아가는 아이를 119구급차에 태워 응급실로 직행. 조금만 늦었으면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처음 겪는 일에 오열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새끼 대머리 독수리. 지난해 수족구병으로 못 먹어서 고생했던 아들이 연상된다. (사진=pixabay)
2019년 여름, 수족구병으로 심한 탈수와 폐렴으로 아들은 또다시 입원했다. 머리숱이 적은 아들의 비쩍 곯은 몰골이 마치 못 먹은 새끼 대머리 독수리 같았다. 그때 사진을 보면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죽어가는 기아 소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올해 여름도 아들은 폐렴으로 수액을 맞고 왔다. 입맛을 잃어 통 먹지를 않았다. 온갖 회유와 협박, 애교와 위협에도 넘어오지 않고 초콜릿 과자, 젤리, 음료수 등을 병아리 모이만큼 겨우 먹을 뿐이었다. 1년 전 못 먹은 새끼 대머리 독수리 몰골이 떠올라 어떻게 해서든 밥을 먹이고 싶었다. ‘아들아, 제발 밥 한 숟가락만 먹자!’
순간 번뜩이는 생각. 어린 아들에게는 영웅과 같은 존재인 아빠의 특권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선강아, 과자랑 젤리만 먹으면 아빠처럼 키가 커지고 힘이 세질 수가 없어. 맘마를 먹어야 아빠처럼 될 수 있는데 맘마 먹어볼까?" 어떤 대답을 할지 아들의 입술을 주시했다. 조그마한 입술이 씰룩거렸다. "음…. 맘마!"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아빠의 존재가 이 정도일 줄이야. 물가까지 데려간 소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지만, 황소고집 아들에게 아빠는 맘마를 먹일 수 있다. 동경의 대상처럼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들이 드디어 밥을 먹었다. 그것도 골고루 꽤 많이 먹은 아들이 내 앞으로 다가와 자기 키가 얼마나 컸는지 힘이 얼마나 세졌는지 보라고 했다. 눈이 하트로 변한 나는 폭풍 리액션으로 화답했다. 아이고, 예쁜 것!
마침내 조수아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중에서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마침내 조수아는 살아남고 꿈을 이룬다. 전쟁이 종식되고 연합군의 진짜 탱크가 눈앞에 나타나자 동공이 확장된 조수아가 토해낸 한마디, “와, 진짜였어!” 아버지가 생명을 다해 지켜준 소중한 꿈을 누리는 아들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영화를 보며 인생을 대할 때 진지하되 심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에는 다큐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으니까. 놀이에 담긴 해학이 철학보다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성애와 모성애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선택과 노력은 나의 몫이다. 아이에게는 놀이만 한 것이 없다. 특히 부모의 건강한 세계관 안에서 함께 노는 자녀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다.
우리는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부모의 얕은 입이 아닌 깊은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자녀에게 남길 수 있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진정한 어른의 삶을 통해 자녀에게 세상이 놀이터라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알려줄 수 있다면 훗날 자녀는 고백할 것이다. "와, 진짜였어!"
"19_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_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_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2: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