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친구 집에서 밥 한번 먹었다가는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절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엄하게 교육한 엄마의 영향 때문이었다. 엄마는 평상시에 친절하고 온화했지만, 화가 나면 정말 무서웠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사람은 웃을 때 더 잘해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어머니는 오래 참았다. 내가 잘못을 해도 참고 또 참으며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분노가 한계치를 넘으면 그동안 쌓인 분노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손오공이 모든 기를 끌어모아 발사하는 원기옥 한방에 그 어떤 괴물도 소멸하듯, 어머니의 분노가 결집된 원기옥에 나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졌다. 그저 상처받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자식은 부모에게 철없이 따진다. "아니,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조금 성숙해지자 상처받은 나를 보며 훨씬 더 아파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님은 분노하는 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사랑은 절대 내리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치사랑이 유한하다면 내리사랑은 무한하니까.
누구나 세 분의 당신을 모시고 있다
세상을 처음 열어 주신 엄마
세상을 업어 주고 입혀 주신 어머니
세상을 깨닫게 하고 가르침 주신 어머님
엄마의 무릎에서 내려오면
회초리로 사람 가르치는 어머니가 계시고
세상을 얻기 위해 뛰다 보면
부끄러움과 후회로
어머님 영정 앞에 잔 올린다
성모 아닌 어머님이
세상 어디에 있더냐
기도로 일깨우고
눈물로 고통 닦아 주신
엄마, 어머니, 어머님
모두 거룩한 한 분이시다
- 김종철, <엄마, 어머니, 어머님>
우리는 '얼굴'과 관계된 다양한 말을 사용한다. 특히 '주위에 잘 알려져서 얻은 평판이나 명예’라는 의미로도 널리 쓰인다. "부모님 얼굴을 어찌 보려고 이러냐?", "내가 너 때문에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주세요."
얼굴은 관계다.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과의 신뢰다. 학창시절,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의 실망 섞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질풍노도 시기에 어머니의 얼굴은 '삶의 정지신호'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내가 칭찬을 받을 때면 어머니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의 얼굴은 또한 '삶의 출발신호'였다. 5년 전 어머니가 소천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6개월 만에 떠났다. "신앙생활 잘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거라"라는 유언을 남긴 채.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지금도 삶의 정지신호와 출발신호다.
욕망대로만 살고자 질주할 때면 정지신호가 켜진다.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때 다시 출발신호가 켜진다. 세상을 깨닫게 하고 가르침 주신 어머님의 목소리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12월 18일은 어머니 기일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어머니를 추억하며 외가 식구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대구 이모, 분당 외삼촌, 인천 이종사촌 누나, 서울 이모까지 각지에서 한마음으로 모인 뜻깊은 시간이었다.
조카 중에 아주 똘똘한 유치원생이 한 명 있다. 이 녀석이 외삼촌을 보고 '썩은 고구마' 같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다른 이에겐 어떤 별명을 붙여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이종사촌 동생 차례가 왔다.
"이모는, 음…. 따뜻하게 태어난 얼음 같아."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얼음은 당연히 차가움의 대명사인데 '따뜻하게 태어난 얼음'이라니! 조카가 그냥 막 내뱉는 말이라고 하기엔 그 표현이 너무 시적이고 아름다워 여운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눈 내리는 따뜻한 겨울이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마련해준 가족 송년회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우리 집 지붕과 마당에는 따뜻하게 태어난 얼음꽃이 소복히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