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도 봄은 온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하였다. 어린이집에는 휴원령이 내려졌고 미운 세 살 첫째는 집에만 있어야 했다. 아내는 둘째 출산을 1달 남겨두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 찬스를 쓸 수 없는 상황이고 또 양가 부모님께 부담을 드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2월 17일, 두 번째 육아휴직 6개월이 시작됐다.


조신한 남편을 꿈꾸는 나는 임신한 아내의 서운함이 평생 간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최선을 다해 출산 준비를 도왔다. 우리 부부는 첫째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으며 17시간 진통을 경험했던 터라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함을 알았다. 장어구이, 오리 백숙 등 보양식으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자연주의 출산을 했던 병원이 사라져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기로 했다. 아이는 아내가 낳지만, 출산 과정에서 아내의 모든 심리 상태를 남편이 세밀하게 보살펴야 하기에 남편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아내는 몸이 가장 무거울 때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막내 처제의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단출하게 진행됐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졸업식이었다. 막내 처제는 허리디스크가 심각해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고 한창 재미있을 나이에 우울증까지 앓았다. 나중에 들었는데 자취방에서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제를 구한 존재는 다름 아닌 첫째 아들 선강이었다. 처제는 칼을 찾다가 문득 세 살배기 조카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막내로 자란 저한테 집안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만약 이모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선강이가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하니 아찔했죠. 조카한테 적어도 부끄러운 이모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선강이가 저를 살렸어요.”


처제의 고백을 들으며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힘에 경탄했다. 아들이 미운 세 살인 줄만 알았는데 처제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세 살이었다. 처제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6년 만에 학사모를 머리에 썼다. 졸업 가운을 입은 처제는 조카를 꼬옥 끌어안은 채 한동안 사진을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코로나 속에서도 봄은 왔다.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길거리에는 연둣빛 생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3월 18일 오후 2시 14분, 죽음의 공포에도 생명의 희망은 피어났다. 둘째 딸내미 예안이는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진통은 2시간밖에 안 걸렸고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 첫째 때 17시간 진통한 거에 비하면 둘째는 정말 순식간에 나온 느낌이었다.


원래는 3월 말이 예정일이었는데 양수가 부족해 유도분만을 했다. 아내는 유도분만을 앞두고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몰라 불안했는데 내가 늘 곁에 있어 안심했다고 한다. 출산 후에도 집에 있는 남편 덕에 마음이 편안했다는 말을 들으니 육아휴직은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둘째와 함께 산후조리원으로 가면서 나는 첫째와 함께 집에 있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산후조리원에는 가족 중 유일하게 남편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그마저도 한 번 들어가면 퇴원할 때까지 감금한다는 조건이었다. 결혼 후 부부의 첫 이별이자 첫째 출산 후 모자의 첫 이별이었다.


아들이 예민한 성격이라 과연 엄마와 떨어져 지낼 수 있을지 불안했다. 기도가 응답된 것일까? 기적같이 아들은 1주일간 엄마를 거의 찾지 않고 잘 지냈다. 온전히 아들과 단둘이 보낸 시간을 잊지 못한다.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고 놀아주고 재우는 모든 과정을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아들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평소와 다르게 매우 협조적이었다. 처제들도 시간 날 때마다 선강이와 놀아줬고 하룻밤을 데리고 있어 준 적도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처제들이 함께 채워줘서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내에게 아들이 잘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려고 영상통화를 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과 떨어져 있어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모성의 섬세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들도 잘 참아오다가 엄마 얼굴을 보자 한동안 엄마를 찾으며 울어댔다. 나도 울고 싶었다.


1달 같았던 1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아내와 둘째가 집에 왔다. 첫째와 둘째의 첫 만남이었다. “여보, 당신 외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나는 둘 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부터 같이 살기로 했어.” 동생을 처음 본 첫째는 이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우리 부부는 첫째의 충격 완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짜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먼저, 아들이 한창 빠져있던 중장비 장난감 세트를 샀다. 동생이 오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아이디어였다. 그다음으로 아빠가 둘째를 안고 첫째에게 보여주면서 “선강아, 동생 이제 엄마한테 안아보라고 해도 될까?”라고 허락을 구할 계획이었다.


동생과의 첫 만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식스센스 뺨치는 반전이 있었으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단 첫째는 선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급기야 처음 보는 동생에게 포옹하고 뽀뽀했다. 동생이 예쁘다면서 분유도 직접 먹여주었다. 막내 처제가 이 광경을 지켜보더니 “우와, 정말 이렇게 행복한 가정 처음 본다.”라면서 감탄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하지만 며칠 후 대반전이 시작됐다. 첫째가 긴급 보육으로 어린이집에 다시 갔는데 교사한테 전화가 왔다. 선강이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는데 한참 동안 드러누워 울고 친구들을 때리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선강이가 보통 남자아이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근심에 빠졌다. 그래, 세 살짜리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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