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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Aug 11. 2024

성인을 넘어 어른으로

진로와소명연구소 파트너 코치가 되어 첫 교육을 의뢰받았다. 장소는 강원도 하이원. '2024 강원랜드 멘토링 장학 부스팅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 멘토 50명과 고등학생 멘티 70명 중 나는 2시간 동안 멘토를 대상으로 공감과 동기 부여, 마인드셋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색해 보니 하이원까지 차로는 3시간 반, 대중교통으로는 4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왔다. 전날 밤까지 고민하다가 가는 길에 교육 최종 리허설, 오는 길에 휴식을 위해 무궁화호를 택했다. 무궁화호라니 이게 얼마만이야! 고들고들한 쌀밥이 맛난 추억의 기차 도시락, 테트리스를 하듯 차곡차곡 쌓인 군것질 카트가 머리를 스쳤다. 뭐야 뭐야, 기차에서 추억 파티 할 수 있는 거야? 야르~!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무궁화호를 타러 가는데 괜스레 설렜다. 하지만 설렘이 헛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긴 내가 대학생 때 무궁화호를 마지막으로 탔으니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겠지. 무궁화호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말이지.

기차에서 보낸 3시간 반 동안 내가 찾던 그들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라떼는 말이야 양손에 도시락을 몇 판씩 들고 객실 통로를 지나가는 아저씨, 군것질거리를 잔뜩 실은 카트를 밀고 등장하는 아주머니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는데 말이야. 졸지에 내가 옛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야릇함을 느끼던 그때 옛 군대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 고민이 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불쑥 연락했어."

2009년, 전북 김제의 자그마한 예비군 관리 대대에서 동기와 나는 출근도 나란히, 퇴근도 나란히 했었다. 군수과와 인사과의 행정실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나는 군수과장, 동기는 인사과장이었다. 또 영내 간부 숙소에서도 우리는 인접한 방을 썼다. 퇴근 후에 동기와 함께 자주 시켜 먹던 치킨이 있었는데 고무를 씹는 것처럼 턱이 얼얼해지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땐 뭐가 맛있다고 그리 좋아했는지.

부부가 각각 공기업에 다니는 동기는 자기가 혹시 지방 발령이라도 나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걱정이란다. (아니, 주말 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던데 왜 걱정?) 만일에 대비해 1년 반 동안 전문 자격증을 준비해 왔는데 번번이 실패를 맛본 터라 이걸 포기해야 할지, 아니면 끝까지 도전해야 할지 답답하단다. (아니, 아이 하나 키우며 부부 둘 다 공기업에 다니는 놈이 아이 둘 키우며 부부 둘 다 놀고 자빠진 내게 할 소리?)

"돈 걱정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뿌듯하게 사니까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땐 마치 부자가 된 기분이야."

지난해까지 '꿈보다 밥'을 위해 살아오다 올해부터 '밥보다 꿈'을 위해 살기 시작한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흠칫 놀란 동기가 부럽다는 말을 남발하는 게 아닌가. 철밥통을 찬 동기가 깡통을 찬 나를 보며 위로를 받는다는 게 신기했다. 정신적 부가 물질적 부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차 실감하며 나 또한 위로를 얻었다. 내가 예전에 비해 정말 자유로워졌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동기와 9월에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으니 어느덧 기차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무궁화호에는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 기차에서 내리니 마치 15년, 2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나는 택시를 타고 7~8분쯤 이동해 하이원에 도착했다. 오늘 만날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이기에 나를 새벽 5시부터 설레는 발걸음으로 이곳에 오게 했을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전남 화순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120여 명의 멘토와 멘티가 교육장에 있었다. 올해 나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보육원 청소년 코칭을 시작했는데 20대의 앳된 멘토들을 보니 숙연해졌다. 나는 20대에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빴는데 이 친구들은 벌써부터 인생의 후배를 생각하는구나! 존재 자체로 감동인 친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인지 2시간 교육이 짧게 느껴졌다. 그들의 따듯한 마음과 투명한 눈빛을 보며 내가 더 에너지를 얻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귀한 기회를 주신 진로와소명연구소 정은진 소장님, 마인드모스트 박하승 대표님, 살뜰히 챙겨주신 오정묵 코치님께 감사드린다. 밤늦게 귀가한 나는 오늘 만난 친구들이 과연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기대하며 부자가 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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