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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Oct 08. 2024

나이 마흔에 놀고 자빠진 외벌이 가장

'나'로 살아가는 빠들남

지난해까지는 '물건 잘 파는 매출 1등 MD'로 살다가 올해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다. 인생 2학기부터는 '물건 잘 파는 작가'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6살 아들, 4살 딸을 둔 외벌이 가장이 어떻게 퇴사를 결심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대안도 없이 백수로 놀기까지 할 수 있을까? 최근에 나를 만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퇴사를 종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이 말에 사람들은 한 번 더 크게 놀란다. 전생을 믿지 않지만, 만일 전생이 있다면 아내는 한석봉 어머니였을 것이다.


"당신은 글을 쓰세요. 저는 돈을 벌테니."


아내의 한 마디에 나는 백수가 될 수 있었고 사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아내 또한 백수다. 부부 둘 다 놀고 자빠졌네,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말까지 하면 사람들은 할 말을 잃는다. 금수저도 아니고 부자는 더더욱 아니며 수입원도 없는 상태에서 부부 둘 다 놀고 자빠진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이들 궁금해하므로 공개한다. 


퇴사를 앞두고 우리 부부는 최소 1년 간 버틸 준비를 3단계로 진행했다. 먼저 지출을 분석했다. 안 쓰던 가계부를 부부가 함께 3개월 간 정리했다. 지출을 항목별로 분류했고 네 식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지출을 산출했다. 수입을 늘릴 생각만 하며 허덕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음으로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험만 남겨두고 종신 보험까지 모든 보험을 해지했다. 보험료를 내지 않으니 지출이 확 줄어들었고 갑자기 수입이 늘어난 기분마저 들었다. 또한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외식과 배달 음식의 비중을 확 낮추고 집밥 비중을 확 높였다. 그 외에도 지출 용도별 카드 분리, 경제권 아내에게 이양, 재테크 공부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아끼고 줄인 지출을 기준으로 1년 치 생활비를 모았다. 보험 해지환급금(해지 수수료로 손해는 봤지만), 퇴직금, 그동안 모아둔 돈까지 긁어모아 1년 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부부 둘 다 논 지 5개월이 되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벌이도 없으면서 부부 둘 다 바쁘기는 오지게 바쁘다. 나는 매일 글 쓰고 책 읽고 종합격투기를 배운다. 여기에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물론 가끔 강의나 취업 컨설팅, 코칭 등 소소한 용돈 벌이 정도는 한다.) 아내는 컴퓨터 자수를 배워서 다다다다 소리를 내는 미싱 기계로 파우치를 만드느라 바쁘다다다다. 아내가 온라인 플랫폼에 첫 작품을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광고도 안 했는데 몇 건의 주문이 들어왔다. 하나 팔아도 플랫폼 수수료, 택배비, 인건비, 원자재비를 빼면 남는 걸로 아이들 새우깡 한 봉지도 못 사주지만, 아내는 간헐적 주문에도 뛸 듯이 기뻐한다. 내가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의 기분을 더듬어보면 십분 이해가 간다.


우리 아이들 새우깡 걱정 속에서도 아이같이 기뻐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도 바보 같은 미소를 짓는다. 아내는 손재주가 좋아서 가내수공업에 딱 맞고, 나는 유통맨인데다 글을 쓰니 이 둘의 조합은 엽기 떡볶이와 교촌 허니콤보의 궁합만큼이나 찰떡이다. 아내는 디자인과 제조 관점으로, 나는 유통과 마케팅 관점으로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며 브랜드명부터 섬네일 제작과 상품 스토리텔링, 사은품에 덧붙일 쪽지 내용까지 완성한다. 성경에서는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부부이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우리 부부가 서로의 손과 발이 되는 모습이 딱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면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 아내는 최고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읽고 솔직히 느낀 점을 말해주면 퇴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게다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는 내가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아이디어도 준다. 누가 보면 벌이도 없이 천하태평인 우리 부부가 바보 아닌가 싶겠지만,  '따로 또 같이'의 은혜를 누리며 우리는 더 친밀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과는 또 어떤가. 아빠, 엄마와 번갈아가며 등하원을 함께 하는 아이들의 입가에 우주의 행복을 담은 미소가 번진다.


특히 직장인 아빠와 프리랜서 아빠를 대하는 딸내미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아내는 요즘 부녀 간에 너무 가까워져서 자기가 들어갈 틈이 없다며 도끼눈을 뜬다. 직장인 아빠였을 때는 비교적 돈의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직장인 남편일 때 나는 웃어도 슬퍼 보였고 순살 치킨 같이 말해도 뼈 있는 치킨 같이 느껴졌단다. 그런데 지금은 웃으면 진짜 웃는 것처럼 보이고 뼈 있는 치킨 같이 말해도 순살 치킨 같이 들린단다. 그러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진짜로 넣으면 아프겠지) 딸내미에게는 오죽하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최근에 딸내미가 자진해서 아빠 얼굴도 그려주고 한글도 모르는 애가 '사랑해 축복해'라는 편지도 써줬다.(딸내미가 직접 읽어줘서 해독이 가능했다.)


오늘은 하원할 때 딸내미가 모래 놀이터로 날 끌고 갔다. 모래 속에서 조개껍데기 찾기 놀이를 했다. 딸내미는 다이아몬드라도 되는냥 조개껍데기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옥 쥔 채 집에 왔다. 그게 뭐라고. 돈 없이도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구나. 아들은 요새 계속 아빠랑 자겠다고 난리다. 얼마 전에는 늘 여동생에게 양보만 하느라 속상해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부자간에 단 둘이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맨날 노래를 불렀던 홍천 알파카 월드에 데리고 가니 아들은 사육사가 되어 알파카와 함께 살고 싶다며 집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닐 때 나는 '동물원 호랑이'인 줄 알고 살았다. 따박따박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이 쪘다. 동물원이 점점 좁게 느껴졌다. 넓은 세상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야생에서도 나는 호랑이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춥고 배가 고팠다. 호랑이 대접은커녕 쓰레기통도 기웃거려야 할 신세였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거울 속엔 웬 길고양이 한 마리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내가 호랑이가 아니었음을, 사실 길고양이였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는 누군가가 물었다.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나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지금 길고양이의 자유가 좋아! 전투력으로 따지면 길고양이가 동물원 호랑이보다 훨씬 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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