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날, 2016년식 투싼 출고

[2025년 마지막 날, 2016년식 투싼 출고]

근래에 계약하겠다며 시승만 잔뜩해보고 나몰라라 하는 고객을 연속으로 겪었다. 물론 변수가 발생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국을 뒤져 어렵게 찾은 클래식 카를 수차례 비교 시승도 해보고 리프트도 띄웠는데, 다음날부터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건 도대체 뭘까?

아! 전날까지만 해도 구두 계약을 해놓고, 당일 아침에 없던 일로 하자는 이도 있었다. 구두 계약까지 간 것도 며칠간 애쓴 결과였는데 말이다. '허위 딜러'와 '허위 매물'이 문제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허위 고객'이 있을 줄이야.

딜러는 프리랜서라 월급이 없다. 최적의 매물을 찾아 검차하고, 시운전 후 정비소에서 하부 리프트 점검까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한의 일당은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객이 변심하면 말 그대로 공치는 거니까.

기운이 빠진 나는 올해는 이렇게 마감하겠구나 싶었다. 20년 된 선배도 이렇게 힘든 12월은 처음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늦깍이 치고는 올해 비대면으로 알선 판매, 수출 업자 거래, 경매 낙찰 매입 등 알차게 경험한 셈이었다.



오늘은 매입한 차를 광택집에 맡기려고 출근했다. 마지막 날이라 퇴근이 늦어지면 차가 막힐까봐 사무실을 일찍 나서려고 했다. 그때였다.

"현중 팀장, 지금 고객 응대 가능한가?"

대표님이었다. 고객 응대 중에 다른 고객 의뢰가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대표님에게 정보를 받아 고객이 원하는 차량을 컨택했고, 시운전하며 테스트했다. 하부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없었고, 급가속과 급정거 모두 문제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비소에서 리프트를 띄워 전문가에게 최종 점검까지 마쳤다.

고객님의 말투가 어딘가 어색했다. 다행히(?) 조선족이라 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분명 고객님은 이체 한도 제한이 없다고 했는데, 입금이 안 되는 것이었다. 보통은 계약 전날까지 이체 한도 확인을 마치는데, 오늘 갑자기 만난 고객님인데다 외국인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객님은 29만km 탄 구형 스포티지가 계속 말썽을 일으켜서 오늘 검사를 했단다. 수리비가 200만원 넘게 나와서 바로 폐차하기로 마음 먹고, 당장 차를 바꾸고 싶어 연락한 거라고 했다. 이미 은행 문은 닫았고, 모바일 뱅킹이 안 되는 고객님은 ATM기를 찾아다녔다. 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형제들을 동원해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입금 문제만 없었으면 금방 마무리될 계약이 하염없이 늘어졌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야 마침내 고객님은 해냈다. 나는 대표님과 상의해 오일류와 브레이크 패드 교체 서비스를 해드렸다. 2016년식이지만, 9만km 밖에 안 뛴 투싼은 29만km를 달려온 고객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미소짓는 고객님을 보니 뿌듯했다.

이렇게 해드리면 뭐가 남냐고? 돈은 남는 게 거의 없지만, 사람은 남지 않을까. 돈 버는 거 쉽지 않다. 세상에 정말 공짜는 없다.



2025년에 중고차 딜러가 되어서 중고차와 함께 보낸 마지막 날. 뭔가 모를 여운이 남아 지금까지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불꺼진 상사들을 보니 단지에서도 나만 남아있는 것 같다. 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온다.

새로운 차로 2026년을 새롭게 시작하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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