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주식 말고 원고지에 미친 중고차 딜러들]
"맨날 차 이야기만 하기엔 너무 건조하잖아.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할 순 없을까, 해서 독서토론을 시작했어."
지난주 독감을 심하게 앓고 겨우 출근한 조나단의 눈이 반짝였다.
"맹반장이랑 둘이서 2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모였지. 그런데 어느 날 오뉴가 합류했고, 글도 한 번 써보자고 하는 거야. 그리고 완전 다른 차원의 모임이 되었어."
목이 아프다던 조나단의 볼륨이 MAX를 향해 치달았다.
"으허허! 내가 투병 중에도 글을 쓰게 만들고, 서로가 독자가 되어 글을 읽어주니 얼마나 좋아!"
조나단의 훤한 얼굴이 노란 조명을 받아 더욱 밝게 빛났다.
"우리 네 명의 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나중에 엮어보시죠. 제가 그건 할 수 있어요."
무진이 팬터마임을 하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시각 디자이너 출신으로 출판계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기에 가능한 제안이었으리라.
"저는 지난해부터 독서대 사업도 잘 안되고, 인생의 깊은 어둠을 지나며 의욕이 사라졌어요. 그러다 브로드카에 왔는데 책도 읽고 글도 쓰자는 거예요."
무진의 목에 걸려있는 줄 달린 안경이 목젖의 움직임과 함께 진동했다.
"사실 오십 대 남자들 모이면 골프, 주식 이야기밖에 안 하잖아요. 고등학교 이후로 글을 처음 써본 것 같아요. 이상하게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흐하하!"
평소 과묵하고 냉소적인 이미지의 무진은 모임에만 오면 입이 터지며 달아오른다.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작은 모임이 누군가의 혈액 순환을 돕다니 신기했다.
"저도 책으로 엮을 생각까진 못했는데, 그럼 출판기념회도 하면 어때요? 브로드카 식구들한테 책도 팔고 그 돈으로 연회도 열고요."
오뉴도 작은 눈을 크게 뜨며 점점 불어나는 대화에 소다를 한 스푼 추가했다. 책을 내고 싶어 했던 맹반장의 작은 눈도 그윽함으로 촉촉이 물들었다. 또 누군가에겐 이 시간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어제 새해 두 번째, 중고차 딜러들의 '독토글'(격주로 진행하는 독서토론 및 글쓰기 모임)이 열렸다. 콜라에 멘토스 한 알만 넣어도 폭발물로 변하듯, 독토에 글을 한 방울 넣으니 아재들의 마음은 청춘의 열정으로 폭발했다.
무진은 지난번 소설에 이은 2편을 써왔다. 남자가 죽어서 전지현으로 환생했다가 배수지로 '환생 A/S'를 받는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특히, 문장 배치를 통한 시각화가 가독성을 높여줬고 흥미를 유발했다. 다만, 발전평을 하면서 남자가 여자로 환생한다는 설정이 남성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무진은 이번 소설을 AI와 함께 브레인스토밍하며 썼는데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했다. 그럼 글에서 무진과 AI의 지분은 몇 대 몇일까? 자연스레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이야기가 나왔다. 조교들을 시켜서 쓴 논문을 교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다른 창작물을 오마주 하는 것, 참고 자료를 통해 영감을 얻는 것 모두 본질은 하나가 아닐까.
"지금 우리 시대에만 겪을 수 있는 과도기가 아닐까? 분명 시간이 지나면 싹 정리가 될 텐데 말이야."
답 없는 토론이 이어지던 중, 조나단의 깔끔한 정리 덕분에 다음 글로 넘어갈 수 있었다.
맹반장은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에피소드를 써왔다. 지난번 독토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나눴었는데, 딱 그런 느낌의 글이었다. 순수했던 20대 시절에 에스페로 안에서 긴 생머리의 그녀와 아무 일 없이(?) 밤을 지새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새벽을 맞이했다."
맹반장의 글은 마무리가 빈약했는데, 이번엔 마지막 문장에서 여운이 남았다. 그녀와 정말 아무 일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맹반장의 내면에서는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은 조나단의 차례였다. 독감을 앓으며 꾼 꿈을 그대로 글로 재현해 냈다. 묘사가 압권이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나단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뉴는 현대시처럼 몽환적이라 트렌디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나단 특유의 "으허허!"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머지 셋도 따라 웃었다. 건조한 차 이야기도 촉촉하다 못해 축축해질 정도로 진하게 나누는 공동체가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