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굳이 '신학'이라는 목적지에 닿았을까]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두고 뉴턴은 '중력'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잡아당겼기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힘이 현재의 결과를 만든다는 인과론적 사고다.
하지만 물리학자 해밀턴의 시선은 다르다. 사과는 우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해석한다. 에너지가 가장 낮고 평안한 상태로 가기 위해, 수직이라는 최적의 경로를 선택해 흐른다는 것이다. 결과(목적)가 과정을 결정한다는 관점이다.
우리의 신앙도,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흔히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뉴턴식 인과응보'에 익숙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 이 신비가 해밀턴식 관점으로는 명쾌해진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아프지만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십자가의 길이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흔이 넘어 왜 신학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갔느냐고 묻는다면, 뉴턴식으로는 몇 시간이고 구구절절 이유를 댈 수 있다. 하지만 해밀턴식으로는 단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지금 이 시점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동안의 내 모든 삶이 존재했다."
20년 만에 손에 쥐어본 학생증이 낯설면서도 설렌다. 험난한 시간을 견뎌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이 목적지에 닿기 위해, 그 모진 시간들조차 기꺼이 스쳐 지나온 것이리라.
이제 '신학 공부하면서 책 쓰는 중고차 딜러'라는 길고도 낯선 이름표를 달고, 다시 출발선에 선다. 그동안의 삶이 이 길을 위한 준비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시간은 오직 감사함으로 채워가고 싶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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