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빛 조명 아래, '마지막 식사'를 차리다

[오렌지빛 조명 아래, '마지막 식사'를 차리다]

수원의 한구석, 이제는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오렌지 베이글'에 다시 온기가 감돌았다. 무진이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워 맹반장, 조나단, 그리고 오뉴까지 셋이서 단란하게 마주 앉은 오후였다. 문득 5개월 전, 이 조합으로 처음 모였던 날이 스쳤다.

독서 토론에 슬쩍 글쓰기를 한 스푼 얹어보자고 제안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이렇게 글에 진심이 될 줄 알았을까. 에세이를 넘어 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멤버들의 필력을 보고 있자니, 중고차 딜러들 사이에 문학의 꽃이 피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오늘은 특별히 '나의 마지막 식사'라는 공통 주제로 각자의 식탁을 차려왔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눈부신 변화를 보여준 건 단연 조나단이었다. 사실 그는 평소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낯간지럽다”며 퇴고를 무의미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유료 결제까지 감행하며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글을 스스로 분석하고, 내용을 매끄럽게 다듬어 온 것이다. 날것의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승화시키려 노력한 그의 도전과 열정에 멤버들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조나단의 글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시한부의 삶을 예감한 남자가 아내와 평소처럼 잡채를 먹으며 평온한 저녁을 보내는 이야기인데,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맨손으로 설거지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설거지를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예우’라고 표현한 대목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만, 골드미스터인 조나단이 상상력으로만 아내와의 감정선을 전개하다 보니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남자의 시한부 원인이 무엇이었을지 마지막에 반전 요소로 힌트를 더하면 좋겠다는 발전평이 있었다. 조나단 특유의 묘사력과 삶을 관조하는 듯한 절제력이 돋보인 글이었다.



맹반장의 글은 한 편의 강렬한 단편 소설 같았다. 병실 침대 위, 희미한 시야 속에서 가족들을 마주하는 임종의 순간을 그렸다. 아내가 떠먹여 주는 죽 한 숟가락이 생의 마지막 식사임을 깨닫는 찰나의 묘사에 감탄했다. 특히 노안과 난시로 흐릿하던 풍경이 안경을 쓰며 선명해지는 시각적 묘사는 독자를 단숨에 병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용두사미로 그친 마무리가 아쉬웠다는 의견과 함께, 문장 사이의 사소한 오타들이 옥에 티로 꼽혔다. 하지만 투박한 진심이 전하는 울림은 무엇보다 컸다.

마지막으로 오뉴의 글은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조림 인간' 최강록 셰프의 고백에서 시작했다. 평생 타인을 위한 역할에 갇혀 살았던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 순간만큼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정성껏 라면을 끓여 먹고, “참 맛있는 삶이었다”는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다짐을 담았다. 멤버들은 “오늘의 식사를 마지막처럼, 마지막 식사를 오늘처럼”이라는 문장에 담긴 일상의 성찰이 좋았다고 평했다. 특히 맹반장은 아빠, 남편, 아들로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자기답게 살기 위해 비싼 옷도 사보고 복싱도 배우고 있다며 깊이 공감했다.



글 속의 죽음과 마지막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식탁을 다시 보게 했다. 조나단의 잡채와 맹반장의 죽, 그리고 오뉴의 라면까지. 특별할 것 같았던 마지막 식사는 평범한 음식들로 차려졌다. 세 사람은 5개월 전보다 훨씬 깊어진 문장만큼이나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마지막 식사를 주제로 글을 나눠서일까. 아지트에서 나눠 먹은 베이글과 커피가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졌다. 삶이라는 긴 여정 중에 만난 이 소중한 글 동무들과 다음번엔 또 어떤 문장을 맛있게 차려낼까. 삶의 갈증과 허기를 기분 좋게 달랠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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