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토록 미치게 바쁘게 살아가는 진짜 이유

지방 출장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끄집어낸 비효율에 대한 고찰

by 카피츄

2002년, 군대에서 갓 전역한 나는 매월 쏟아져 나오는 잡지를 전국 서점에 뿌리는 배본 회사에 덜컥 취업했다. 친구들이 대학교 복학을 준비하거나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때, 나는 IMF의 직격탄을 맞은 가정 형편과 대학이라는 곳에 대한 막연함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현장을 선택했다.

고등학교 성적도 시원치 않았고, 집안의 대출 이자는 쌓여가는데 거창한 목표도 없이 대학 등록금을 보태달라 할 염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전역과 동시에 '먹고사니즘'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주 업무는 인쇄소나 출판사에서 넘어온 월간지들을 서울역 집하장이나 지방 서점으로 보내고, 서울·수도권 총판에는 그레이스 승합차에 책을 싣고 직접 돌리는 일이었다. 동시에 지난달 판매분을 체크해 반품을 수거하고 파쇄까지 대행했다.

​당시 한국 출판 시장은 그야말로 활황이었다. 사람들이 굳이 읽지 않아도 서점에서 책을 사는 행위 자체를 유희로 즐기던 시절이었다. 특히 잡지는 별책 부록의 가치가 본책 가격을 훌쩍 넘는 경우가 허다해서, 남는 부록을 챙겨 지인들에게 생색을 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는 '운전'이었다. 자유로,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내부순환로는 내게 매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일터의 장판과도 같았다.

​그렇게 대략 1년의 출판사 경력을 뒤로하고 온라인 쇼핑몰과 게임 유통 회사를 거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다시 대학교 교재 출판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주 이른 아침, 지방 대학교 영업을 위해 제2외곽순환도로에 올라섰다. 외곽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하는 루트였다. 하지만 그 새벽부터 외곽순환도로는 이미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정체의 도가니였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다면 이 지옥을 벗어났을 텐데'라는 후회가 머리를 스치는 순간, 역설적으로 도로를 가득 메운 그 압도적인 차량의 스케일에 압도되었다.
​음… 아마도 그 순간, 나의 뇌는 일상의 짜증 대신 어떤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어려서 매일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그저 지겹게 반복되던 일상적 장면이었는데, 한참 나이를 먹은 나에게는 이 거대한 정체가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사유로 다가왔다.

​그것은 이 수많은 차량이, 이 새벽부터, 도대체 '무엇'을 담고 어디로 그토록 바쁘게 떠나느냐는 것이었다. 이 정도 스케일의 무질서한 이동은 매일같이, 한치 오차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떤 차는 심장이 터질 듯 바쁠 테고, 여행을 떠나는 설렘을 담은 차도 있을 테고, 당시의 나처럼 경쟁자가 거의 없는 시장에서 교수님들에게 샘플 도서나 보내주면 되는 느긋한 마음을 담은 차도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 각 차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가득 담아서 돌아다니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곡식이나 식재료 같은 생물학 정보일 수도 있고, 서류나 정보 같은 사회적 데이터일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좁히거나 더 멀어지려는 심리적 목적을 나르는 차들도 있었을 것이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역설적이게 찾아온 이 '한가로움' 덕분에,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었다. 대학교 교재 시장은 브랜딩과 관계 형성이 중요했기에 당장 피를 말리는 경쟁이 없었고, 덕분에 나는 이 지체되는 시간 속에서 철학적 사유의 폭을 넓힐 여유를 얻었다.

​다시, 도로 위의 정체로 돌아와 보자. 이토록 많은 차가 매일같이 꽉 막힌 도로 위를 반복해서 움직이는데, 이 거대한 이동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는 도대체 무엇이 결정하는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먹거리나 식재료의 이동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숙식을 위한 공간을 지으려면 공사 자재와 인부들의 이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물리적 자원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지 체크하려면 서류나 데이터베이스 승인 자료 같은 '정보'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대한민국에 'IT'라는 키워드가 출현한 지 30년이 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이 거대한 물류와 정보의 흐름이 정말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판단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일반 대중은 이런 본질적인 생존 데이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설령 자료를 보여줘도 그 중요도를 확인할 방법을 모른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공직자나 정치인들 역시 수십 년간 비효율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를 최적화할 생각은 고사하고, 인지조차 못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인식 수준에서 출발하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대중의 관심사는 대부분 개인의 자산 증식이나 자본의 흐름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자산 증식을 위해 거짓 정보를 판타지처럼 만들어내는 그룹들도 버젓이 존재한다. 그 폐단의 고리를 끊을 생각은커녕, 우리가 비본질적인 '자본의 운송'에만 미쳐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이 새벽부터 도로 위에서 서로의 시간을 갉아먹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날의 사유는 여기까지였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꺼지고, 내 차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영동고속도로에 올라서며, 다시 그 바쁨의 행렬에 묵묵히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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