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사랑과 200만 원어치 미미인형
"엄마 잘못했어요!"
그날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스펙터클 하게 두들겨 맞은 날이었다. 옆에서는 이모가 눈을 부릅뜨고 어머니의 매질을 거들고 있었고, 내 옆에는 여동생이 꿇어앉아 나와 함께 엉엉 울며 맞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10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여동생에게 동네 서점에서 도둑질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옷 안에 감추고 몰래 가지고 나오는 거야."
이미 수차례 책을 훔치며 단련된 나의 고급 노하우를 전수하고는, 나 먼저 보란 듯이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유유히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나오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쭈뼛거리며 다시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저 구석에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벌을 서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도 그 옆에서 오랫동안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다행히 서점 주인은 벌을 세우는 선에서 우리를 돌려보내 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후 벌어질 거대한 횡령극의 완벽한 약점이 되었다. 나는 서점 절도 미수 사건을 빌미로 동생 위에서 완벽한 권력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어머니와 이모는 시장 입구에서 제법 장사가 잘되는 분식집을 하고 있었다. 만두를 빚는 직원을 따로 둘 정도였다. 내 초미의 관심사는 어머니가 가게 한쪽에 무심하게 던져둔 '돈통'이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돈 관리에 철저한 편이 아니었고, 그 돈통에는 늘 동전과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기서 푼돈을 슬쩍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당시 200원만 있으면 오락실에서 4시간은 거뜬히 놀 수 있었다. 원코인으로 엔딩을 볼 수 있는 게임이 수두룩했고, 보글보글 같은 건 운수 좋은 날엔 끝도 없이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돈통에서 몇백 원 비는 것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눈치 빠른 이모의 시선만 교묘히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 소소한 도벽은 내 유년기의 중요한 유희 수단이었다.
서점 사건으로 약점이 잡힌 동생에게 이 '돈통 털기'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의 배포가 나보다 훨씬 컸다. 처음엔 500원, 1,000원으로 시작된 동생의 횡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무슨 악덕 일수꾼마냥 매일 동생에게 5,000원 이상을 상납받았다. 하루에 만 원을 넘게 뜯어내는 날도 허다했다. 나는 돈통에서 1,000원짜리 한 장도 떨려 꺼낸 적이 없었는데, 내 협박이 무서웠던 건지 아니면 도둑질의 도파민에 중독되었던 건지 녀석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뜯어낸 돈으로 나는 신정동 람보오락실부터 목동 일대의 오락실 10여 곳을 순회하며 동네 꼬마들을 끌고 다니는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도 참 골 때리는 개구쟁이였다.
그렇게 우리의 꼬리가 잡히기까지 대략 10개월이 걸렸다.
스스로 계산해 보고도 믿기지 않지만, 그 10개월 동안 열 살 남짓한 내가 오락실과 슈퍼에서 탕진한 돈만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복날 개 패듯 맞는다'는 속담이 현실로 구현되던 날.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어머니와 이모의 발밑에서 처절하게 짓밟혔다.
내가 횡령한 돈이 총액이 아니었다. 집 안 작은 다락방 구석에, 보자기로 싸인 '미미인형'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빼돌린 돈 중 나에게 상납하고 남은 돈으로 인형을 사 모은 흔적이었다. 며칠 뒤 어머니와 이모는 어린아이가 200만 원어치 인형을 사 가도록 묵인한 문방구 사장과 대판 싸움을 벌인 끝에 그 산더미 같은 인형들을 전부 반품하고 돌아왔다. 나는 감히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이 엄청난 범죄 행각(?)은 내 유년기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와 딱 스무 살 차이인 나의 어머니는 그 사고뭉치 녀석을 여전히, 그리고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마흔여덟의 중년이 되어, 예순여덟의 어머니와 마주 앉아 평화롭게 갈비탕을 먹었다.
나는 어머니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사랑'이라는 단어의 진짜 질감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스물한 살의 아들과 열여덟 살의 딸을 둔 아버지가 되어 내 삶의 장부를 써 내려가다 보니, 어머니가 내게 보여준 삶의 방식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비합리적인 행위인지 매 순간 깨닫는다.
TV를 틀면 나오는 《솔로지옥》이나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인들은 철저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오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성에게, 혹은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의 99%는 사실 '사랑'이 아니라, 내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와 계산된 '호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하고, 투자한 만큼 돌려받기를 원한다. 그것은 감정의 거래이자 아주 합리적인 비즈니스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무엇일까?
나의 결론은, 사랑이란 '어떤 반대급부도 기대하지 않는, 완벽하고도 자발적인 적자(Deficit)'라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계산하도록 세팅된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시간과 체력, 심지어 감정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며 오직 타인을 위해 조건 없는 희생을 감내하는 것. 대차대조표상으로는 철저히 파산에 이르는 그 맹목적인 희생만이 유일하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니 내 욕심과 통제욕이 결합된 애정을 함부로 사랑이라 포장하는 것은 얄팍한 기만이다.
물론,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명확히 가르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아닐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200만 원어치 돈통을 털어간 웬수 같은 자식을 마주 앉혀 놓고 기어이 따뜻한 갈비탕 고기를 발라주는 그 '압도적인 희생'을 내 삶의 궤적 안에서도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완벽한 적자 덕분에, 이 차가운 세상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숨을 쉰다.